#80
심사 후(10)
그런데...
헬캣이 저기에 있는 이유가 뭐지?
아는 사이도 아닐 건데.
사정은 이러했다.
체스가 엘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헬캣은 의뢰소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체스도 기다릴 겸 햇볕 좋은 창가에 누워 빈둥거릴 셈이었다.
"뭐야? 저거 누구 고양이야?"
"아이고야. 뭘 얻어먹으러 왔냐?"
여기저기서 헬캣을 본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다행히 그가 마수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하긴 저 모습만 보면 누가 봐도 고양이지.
만약에 알았어봐라.
지금쯤 이 곳은 이미 난장판이다.
여하튼 여자며 남자며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난리였다.
저마다 헬캣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볼 양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때마다 헬캣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그 손들을 피해나갔다.
'흥. 인간 녀석들. 내가 그 손에 잡힐 줄 아느냐? 느려터져선.'
혀를 끌끌 찬 체스는 냉큼 창가 쪽으로 폴짝 뛰어 올랐다.
체스를 찾아보니 그는 아직 이야기 중이다.
뭐 저리 할 이야기가 많은 건지 원.
하지만 곧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헬캣은 자신의 짧은 혀를 내밀어 자신의 앞발을 핥아댔다.
이 우아하고도 탐스러운 외양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세수를 해야 한다.
자고로 아름다움은 타고 나는 것 반 노력 반이랬지 않나.
낼름- 낼름-
"아아..."
"하악..."
그의 조그만 동작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탄식이 터져 나왔다.
다시 헬캣에게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려는 그 때.
찰나의 순간이었다.
헬캣은 자신의 몸을 갑자기 누군가 덥석 껴안는 느낌이 들었다.
-뭐냐?
그가 고개를 들어올린 시선의 끝에는 마르안느가 두 눈에 하트를 가득 담은 채 서있었다.
"하아... 이걸 어쩌면 좋아? 너는 어쩌다 이 곳에 왔니? 네 주인은 누구니? 왜 여기에 혼자 온 거야?"
그녀는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은 채 연거푸 질문을 쏟아냈다.
애옹-
놓으라는 헬캣의 울음소리였지만 그녀는 그걸 재롱이라 생각했다.
그저 마냥 귀여울 뿐인걸.
'아아... 녹아버릴 것만 같아.'
마리안느는 강하게 헬캣을 끌어 안으며 자신의 볼을 마구 비볐다.
"야야. 네 팔로 그렇게 고양이를 끌어안으면 어떡하냐?'
"...저 고양이는 하루를 못 버틴다에 내 다음 의뢰금을 걸지."
그녀의 동료들은 차마 헬캣의 최후를 보지 못하겠다는 듯 그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것들이..."
동료들의 말에 발끈하는 마리안느.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어느 새 헬캣을 일행들의 테이블에 곱게 내려주는 그녀였다.
"아유. 이름이 뭐니?"
테이블에 턱을 괸 채 헬캣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마리안느가 입을 열었다.
헬캣은 그 시선이 불편할 법도 하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다지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은 듯 테이블에 쭈그리고 앉아 식빵을 굽는 자세로 꼬리를 탕탕 흔드는 헬캣.
'흐음. 뭐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군.'
다시 사르르 눈이 감겨온다.
헬캣은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
그리고 체스가 헬캣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 고양이. 제가 키우는 아이입니다만."
****
헉-!!!
아벤이 깜짝 놀랐다.
"에? 그 쪽의 고양이라고요?"
"네. 제 아이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죠?"
"뭐 이름이야 모를 리가 없죠. 심사 때도 봤고."
"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심사장에도 자신의 이름이 울려퍼졌을 것이고 어차피 여기의 마수 사냥꾼들끼리 모를 일은 없으니.
"그 얘기는 들었겠죠?"
"뭘요?"
아벤의 질문에 다시 질문으로 되받아치는 체스였다.
왜 이렇게 까칠하지?
생각보다 까칠한 체스의 목소리에 일순 당황한 아벤이다.
하지만 뭐 원래 성격이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아벤이 대답을 했다.
"그 우리와 함께 의뢰를 하라는 거요."
"아. 들었소. 보류가 뜨는 바람에."
"우리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일단은 잘 부탁하오. 안 그래도 심사장에서의 활약에 깜짝 놀랐소. 마수를 그런 식으로 당기는 건 처음 봤으니."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오."
???
무슨 소리야.
이 두 눈으로 뻔히 봤는데.
'아~ 겸손한 것이군. 나름 가정 교육을 잘 받았구만.'
처음에는 좀 까칠한 것 같더니 그래도 나쁘지 않은 녀석인 것 같았다.
게다가 원래부터 같이 움직여 보고 싶었더니.
"대충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말은 좀 편하게 해도 되겠죠?"
"나 어린데요. 뭐 딱 봐도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는데 편하게 할 거면 서로 편하게 하고."
크크크크크크-
"재미있는 녀석이네. 형씨는 몇 살이오?"
"나 스물이오."
엑??????
"...거짓말이 수준급이군."
침묵을 지키던 기스가 입을 뗐다.
믿을 수 없었다.
어딜 봐서 저게 스무 살이란 말인가?
****
체스가 다가올 때 마리안느의 심장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서방님...'
어느 새 얼굴이 발그레해진 그녀.
그 사이 체스는 테이블로 다가와 헬캣을 데려가려했다.
"우리..."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로 겨우 입을 떼는 마리안느.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벤의 목소리에 그대로 묻혀 버렸다.
아벤과 체스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어떻게든 대화에 참여하려 한 마리안느였지만 어찌나 부끄러운지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체스의 말.
"나 스물이오."
엥??????
순간 왁자지껄 시끄러워진 테이블.
하...하...하...
개그가 참 찰지다.
그리고 여기 그들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이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당황을 금치 못한 마리안느가 살짝 체스의 옷을 잡으며 물었다.
"거...짓말이죠?"
"진짠데요."
대답을 하는 체스의 표정에는 약간 씁쓸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 장면.
뫼비우스의 띠 마냥 돌고 도는 과거의 장면.
많이 익숙한 상황이다.
이미 이런 반응은 충분히 겪어본 체스였다.
그 썩을 놈들과 똑같은 반응에 아주 흡사한 상황이 아닌가.
괜히 거지 같은 추억이 떠올라 입이 까끌해지는 듯했다.
"그래서 여튼 스무 살이오."
"...서방님."
"누가 서방님이죠? 설마 저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체스가 반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
확실히 자신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하긴 했었다.
무슨 착각을 단단히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이 여자의 서방이라니.
"저 여자친구 없어요. 그리고 서방님이라뇨. 언제 봤다고."
다소 무례하다고 느낄 수 있는 체스의 말이었다.
아~
마리안느는 갑자기 자신의 눈앞이 팽그르르 도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그녀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는 그대로 바닥에 쿠웅 쓰러져버렸다.
"야야야!!!"
"마리안느!!!"
"얘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야. 빨리 어딘가 눕혀. 의사 불러!"
갑자기 시장 마냥 의뢰소 안이 몹시도 시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