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79화 (79/249)

#79

심사 후(9)

"보류라는 게 있어요...?"

"있지. 오호호호."

엘리나가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보통은 존재하지 않는 심사결과 중 하나인 보류였다.

하지만 문서 상에는 보류라는 항목이 존재했다.

그 결과가 실질적으로 사용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그녀도 이런 경우는 솔직히 처음 봤다.

난입을 하거나 이런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류라면 어떻게 되는 거에요? 다시 심사를 또 해야 하는 건가요?"

"실은 말이지. 네 심사 결과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말이 좀 많았어. 무슨 말인지 알지?"

"아뇨?"

'말을 해줘야 알지!'

알 턱이 있나.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바로 밑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체스도 나름 사회 생활을 수 년 동안 하지 않았는가.

그는 말을 잇는 대신 입을 닫았다.

엘리나는 그의 대답을 잠시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설명을 해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원래 네 승급 마수는 B급이었는데 갑자기 A급 마수가 난입을 하는 바람에 말이야. 그렇다고 네가 승급에 실패했다고 볼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기도 하고."

그녀의 말인즉슨 이러했다.

체스가 보인 실력은 도저히 아이언 등급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승급 심사 중에서 처음에는 밀리는 듯 했지만 딱히 밀리는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게다가 S급 마수가 난입을 한 상황에서도 그가 보여준 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더욱 길어졌을 법한 난입이 꽤나 쉽게 끝이 났으니.

승급심사를 지켜보던 심사위원들 및 상급 마수 사냥꾼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과연 심사를 합격으로 해야할 것인가?

더 나아가 그의 등급은 또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 것인가?

탁상을 둘러싼 그들 사이에서는 지리한 말다툼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황은 마리안느에 의해 한 방에 정리가 되었다.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라면 발언권 또한 꽤나 높은 지분을 가지고 있었으니.

탁상을 탁 치며 일어난 마리안느의 말은 간단했다.

참석한 이들 중 누구라도 S급 마수를 힘으로 당길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자신이 깨끗이 물러서겠다는 말이었다.

그녀의 단 한 마디에 좌중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녀가 던진 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었으니.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마수를 완벽히 쓰러뜨리지 못했기에 결론은 보류였다.

대신 최종 결과에 대한 판단은 아벤의 팀에게 넘어왔다.

그들과 의뢰를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기로 한 것이었다.

그 말에 분기탱천한 마리안느가 그게 다 무슨 말이냐며 핏대까지 세우며 목청을 높였지만 더 이상의 합의점은 없었다.

그때 마리안느가 회의실을 빠져나가며 했던 말이 걸작이었지.

'하여간 책상머리에서 펜대만 굴리는 것들은 현장을 모르지.' 라나.

뭐 여하튼 그렇게 해서 나머지는 상급 마수 사냥꾼들에게 맡겨진 심사였다.

"그렇게 된 것이었군요."

"응. 그래서 보류야. 아마 다음 의뢰에서 결정이 날 거야. 뭐 일석이조 아냐? 너 정도면 충분히 합격도 할 것이고 돈도 벌고 말이지. 아마 정식 등급은 아니라서 돈은 좀 적게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네요. 이해했어요. 귀찮게 되었네요."

"귀찮다니! 아벤의 팀은 여기 라이손 성에서 최고라고! 골드 등급이 흔한 등급도 아닌데 말이야."

그녀는 체스의 지금 상황을 전혀 모른다.

그러니 저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겠지.

체스의 심정은 지금 아주 복잡했다.

기껏 새빠지게 심사를 봤더니 보류라니...

계획이 또 늘어지게 되었다.

그 망할 무책임한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그놈에 빚.

추심조가 자신을 찾아온 마당에 당장 이번 달의 빚부터 까야 하는구만 지금.

"그 팀의 다음 의뢰는 언제죠? 그 팀은 어디에 있죠?"

"글쎄. 잘 모르겠네. 여기에서 안 받으면 그들이 따로 받는 의뢰가 있긴 하지만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걔네들 보자. 저~기에 있네."

그녀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몇 명이 모여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있는 혼성 팀이었다.

'어제 그 여자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신 만한 덩치를 가진 여자가 어디 흔한가.

'...저 이상한 여자도 한 팀...이었나?'

물어는 봐야 하는데 왠지 저 여자를 보니 부담감이 팍 생겼다.

왠지 모르게 더 가까워지면 피곤해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있잖은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안되겠다. 내일 다시 와서 물어봐야겠다.'

"전 그럼 이만."

일단은 잠시 벗어나서 생각을 정리해보고 올 생각에 빠르게 몸을 돌리는 체스.

"저기요~"

****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니.

체스는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는 생각도 않은 채 의뢰소를 나가려 했다.

"체스!!!"

다시 한 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체스라면 자신의 이름이 아닌가.

체스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에 소개를 받은 아벤의 팀이었다.

'나?'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본 체스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체스의 동작에 따라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는 테이블의 인물들.

'왜 부르는 거야? 저 여자가 없을 때 오고 싶었는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는 체스의 눈빛.

그런 체스의 눈에 뭔가 그들이 있는 테이블 위의 익숙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는 체스.

역시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아...'

체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의뢰소를 나가려던 몸을 돌려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의뢰소를 나가려던 체스가 깜빡하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헬캣.

들어오며 자신의 품을 스륵 빠져나간 헬캣이었다.

그리고 체스는 자신의 일을 처리하느라 함께 온 헬캣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저기서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미친 거 아냐? 진짜 자신이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체스는 어이가 없었다.

저 꼴을 보라.

눈도 게슴츠레하게 감겨 있고 저 살랑이는 기다란 꼬리.

연신 좌우로 꼬리를 탕탕거리며 사람들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그르릉거리고 있지 않은가.

'저게 아마 헬캣이라는 걸 알면 모두 기겁을 하겠지?'

헬캣의 몸을 점령한 건 마수 사냥꾼들의 거친 손.

그들의 손가락은 헬캣의 목이며 머리며 등을 긁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르릉- 그르릉-

헬캣은 쾌락이 잔뜩 섞인 울음소리를 그의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단 1의 여과도 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온몸을 그들에게 맡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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