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심사 후(8)
순간 좌중이 술렁거렸다.
??????
쟤 결혼이 너무 하고 싶었던 나머지 미쳐버린 것 아냐?
잘못 들은 건 아니지...?
서로의 귀를 파기 시작하는 마수 사냥꾼들.
"아닌데. 귀가 막힌 건 아닌데."
"이 새끼. 귀 청소 안 하냐? 건더기가 이따만한 게 나오냐?"
"귀지에 밥 준다. 이 새끼야. 니가 뭔데 내 사랑스러운 귀지에 난리법석이냐?"
시끄러워 죽겠네.
건물 안은 순식간에 시장판이 되어갔다.
아. 아니지.
지금 화제 전환이 될 때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어제 자신들이 한 일은 심사장 안에서 마수를 잡았고.
오늘은 아침에 생을 달리한 자신들의 동료들을 고이 보내주었고.
그리고 여기에 있는 것 밖에는 없는데.
그때 그녀가 외쳤던 말이 보자...
여보. 그래 여보였지. 확실하다.
그 말을 한 후에 전투가 끝이 나자마자 그 후에는 그 녀석을 안고 냅다 뛰었지.
분명히 그것 밖에 없었지 않나?
그런 다이내믹한 하루였는데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그녀가 사랑을 느꼈단 말인가.
아니. 그럴 시간 자체가 없었는데.
꿀꺽-
누군가 침을 삼켰다.
"이제 내 목표는 그 분 밖에 없어. 얼굴이야 좀 못 생기면 어때~ 나보다 연상에다가 그 힘... 그 동안 내가 기다렸던 낭군님이 바로 여기에 계셨어... 내가 그러려고 지금껏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것이었나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런 것이었구나.
"축하한다."
잠자코 있던 기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마리안느에게 말을 건넸다.
여전히 홍조를 띈 얼굴을 하고 있던 그녀가 기스를 보며 생긋 웃었다.
"고마워~ 기스. 물론 너도 참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이제는 네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게 되어 버렸어. 그리고 하나 더. 난 그 이와 결혼하게 되면 이 직업을 그만둘까 해."
"아...뭐...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그 남자도 확실히 동의를 한 거지...?"
아벤이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혹여나 마리안느가 협박을 했다거나 뭐 그런 불법적인 뭔가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려였다.
왜 그런 것들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보쌈을 한다던가 기절을 시켜서 뭘 한다던가...
마리안느야 별로 걱정을 할 게 없지.
오히려 그 남자가 되레 걱정되는 아벤이었다.
그래도 뭐.
입버릇처럼 자신보다 강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노라 외치던 마리안느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꿈이자 행복을 찾았으니.
저 표정이며 저 말투.
분명히 지금껏 본 적 없는 것이긴 했다.
하긴 허튼 말은 하지 않는 그녀였지.
그런 그녀가 저렇게까지 말을 한다니...
남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리안느의 마음은 확실한 듯 보였다.
"그래... 뭐 축하해~ 부디 좋은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다야... 근데 너 밥은 할 줄 아냐?"
"밥이야 이제부터 배우면 되지~ 그깟 밥 못할까봐?"
그녀는 지금 자신 만의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었다.
그를 위해 밥을 하고,
그를 위해 집안일을 하고,
그의 아이를 만들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바로 그 상상.
배시시-
마리안느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섬뜩할 정도로.
와하하하하하-
의뢰소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축하한다!"
"드디어 시집을 가는구나!"
그 인사가 시발점이었다.
모두는 저마다 한 마디씩 마리안느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 게 진정으로 축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행복하다는데 다른 게 무에 대수랴.
잘 살면 그만이지.
"아이참~ 고마워~ 모두들~ 잘 살게~"
얼굴이 발그레해진 마리안느가 몸을 배배 꼬며 모기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벌컥-
순간 의뢰소의 문이 열렸다.
그 소리를 들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다.
눈부신 햇살이 건물 안을 쫘악 비치며.
그 햇살을 온 몸으로 안은 남자 하나가 서있었다.
후광을 등으로 품은 채 건물 안을 둘러보는 남자.
마리안느의 그 남자 체스였다.
옆에는 헬캣을 다시 안은 채.
****
일순 의뢰소가 조용해졌다.
"뭐야?"
갑작스레 조용해진 의뢰소가 적응이 안 되는 듯 그는 주위를 훑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제 전투에 참여한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물론 모르는 사람들도 몇몇 섞여 있긴 했지만.
'그런데 수가 좀 줄긴 줄었네.'
하지만 딱히 그들과 교류를 하는 건 아니니.
체스는 그저 건성으로 주변을 한 번 쑤욱 훑은 후 엘리나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 왔어요?"
이게 누구야?
어제 화제의 주인공이 아닌가.
엘리나가 자신에게 성큼 다가오는 체스를 반겼다.
어제 처음 본 사이지만 어느 새 친한 듯 그를 반기는 엘리나였다.
그녀도 어제 벌어진 일에 대해 이미 자세히 알고 있었다.
비록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안쪽에서 심사 장면을 보며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물론 어스아시시가 난입한 이후에는 재빨리 도망을 치긴 했지만.
"올~ 어제 꽤나 잘 하던데? 소문도 이미 쫙 퍼졌다고."
체스의 실력.
흔한 주변에 널리고 널린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무시무시한 S급의 마수를 끌어 당겨버렸다고 하던데.
그 정도면 솔직히 뭐 거의 골드 등급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엘리나는 체스의 기대 이상의 활약에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체스에게 가볍게 눈을 흘겼다.
"무슨 소문이 났다는 거에요?"
"그런 게 있지. 후후후."
소문이라...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지금 체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뿐이었다.
방금 추심조 때문이었다.
"그런데 좀 쉬지 않고 왜 바로 온 거야? 몸은 괜찮은 거야?"
"아. 심사 결과 때문에 왔어요. 심사에 합격을 해야 더 높은 등급의 의뢰를 할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건 뭐 당연한 것이고. 보자. 안 그래도 위에서부터 서류를 하나 받기는 했는데..."
드르륵-
그녀가 서랍을 열고는 서류가 잔뜩 섞여 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마구 뒤적였다.
"아침에 분명히 내가 여기에 뒀는데..."
그렇게 한참을 헤매던 그녀.
초조한 건 체스의 몫이지.
슬슬 하품이 나오려는 찰나.
"아~ 찾았다. 자 여기."
그녀가 체스에게 서류를 건넸다.
[승급 심사 결과] 라 적힌 한 장의 서류였다.
체스는 그걸 건네받아 표지를 한 장 스윽 넘겼다.
그 곳에 써진 글자는 단 두 글자.
[보류]
"엥?????? 뭐야. 보류라니. 보류가 어딨어.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지 또 보류는 뭐야?"
어이없다는 듯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체스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