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심사 후(7)
...누구지?
처음 보는 사내들이었다.
분명히 본 적이 없는 자들인데...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이상하다.
하나는 지나치게 길쭉하고 하나는 지나치게 땅딸막하다.
희한한 조합일세.
무슨 음악을 하는 사람들인가?
듀엣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데 검은 색으로 옷을 맞춰입은 게 영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누...구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체스 님 맞으시죠? 엘윈 마을에서 오신."
"아... 네. 맞아요. 절 어떻게 아시죠?"
자신의 인적사항마저 알고 있고 확실히 자신을 알고 있는 자들이긴 하다.
체스가 입을 더 뗄려는 찰나.
-누구냐? 아는 사람들이냐?
"모르겠어요. 저도 처음 봐요.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거 대충 정리하고 빨리 들어가자. 너 바쁘다고 안 했냐?
"그렇죠. 뭐 별로 용건이 없으시면 전 그만 가볼게요."
체스는 다시 의뢰소의 손잡이를 잡으려 했다.
"에헤이~ 성급하시네. 왜 이러실까? 잠시만요."
길쭉한 사람이 다시 체스를 멈춰세웠다.
"...?"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자신을 이 곳에서 찾는 사람이라...
-그런데 야.
"네?"
-저 녀석들. 너보다 훨씬 강하다야.
"에이~ 그럴 리가요."
체스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보았다.
저 치들이 그렇게나 강하단 말이야?
둘다 힘도 못 쓰게 생겼는데.
땅딸막한 쪽은 그나마 힘은 좀 쓰게 생기긴 했네.
"잘못 보신 거에요. 저런 몸에 무슨."
-내가 너한테 뭣하러 거짓말을 하겠냐? 붙어볼래?
다시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체스가 헬캣의 말을 듣고는 놀란 얼굴로 둘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보이는 건 영 후즐그레한데...
"호오~ 고양이와 대화가 통하시나 봐요?"
몸이 길쭉한 한 남자가 신기하다는 듯 허리를 살짝 구부리며 말을 했다.
아차.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겠네.
"...아. 제가 키우고 있는 애완동물입니다. 대충 뭘 원하는지 정도는 이해하죠. 그나저나 누구...?"
"이거 참. 저희 소개가 늦었군요. 이거 명함 하나 받으시고."
체스는 길쭉한 남자가 품 안에서 꺼내서 건네는 명함 하나를 받았다.
<마수 조합>
[마수는 마수 사냥꾼들을 먹여 살리고,
마수 사냥꾼들은 마수 조합을 먹여 살리고,
마수 조합은 추심조들을 먹여 살린다."]
"친절과 감동으로 모시겠습니다."
...추...심...조...?
화들짝 놀란 체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하하. 저희는 거기 명함에 적혔다시피 마수 조합에서 나온 추심조입니다. 들어는 보셨죠? 저는 C1이라고 하고 옆에 이 녀석은 C2라고 합니다. 저희 조가 이번에 체스 님의 변제를 담당하게 되었구요. 미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추심조가 오다니.
악명이 자자한 그들이 아닌가.
마수 사냥꾼들 중에는 가끔 마수 조합에서 돈을 빌리는 자들이 있었다.
체스의 경우처럼 억울한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만 전담으로 처리를 하는 부서가 따로 존재했다.
그래서 체스도 가끔 추심조에 관한 소문을 듣곤 했다.
하긴 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이 곳에서 자신에게 이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추심조가 악명이 자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딱 잘라 말해서 지독히도 괴롭히는 탓이었다.
완전 사람을 구석까지 몰고 가는 듯한 그 집요함.
그래서인지 개중에는 이들의 지나친 추심으로 인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자 또한 나타나곤 했다.
"그런데 왜... 아직 날짜는 남은 걸로 아는데?"
"아~ 미리 왔습니다. 처음 채무를 변제하실 때에 날짜를 잊어버리셔서 간혹 제때 못 갚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제야 이들이 온 이유를 알았다.
한 마디로 빚 갚을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어서 돈을 갚으란 얘기가 아닌가.
"갚을 거에요!"
"네네. 저희도 당연히 고객님이 그러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고객님께서 잊어버리셨을까봐 혹여나 해서 온 것입니다. 그렇지?"
"맞아. 맞아."
속칭 길쭉이가 땅딸이에게 말을 건넸다.
'벙어리는 또 아니네.'
그나저나 빚.
이렇게 추심조가 올 줄은 몰랐다.
체스의 얼굴에는 짜증 반 당황 반이 떠올라 있었다.
하긴 빚 갚으라는 말 만큼 짜증나는 것도 없으니.
"갚을 거에요. 그렇게 안 찾아와도 돼요. 어디 도망 안 가니까."
"고객님. 그건 어디까지나 고객님의 생각이시죠. 그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신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희는 조합에 소속되어 있지만 조합에서도 별도로 움직이는 조직이라 고객님들의 편의를 일일이 봐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대로 기한을 제대로 지켜주세요."
"아. 네네."
"그럼 변제일에 오겠습니다. 부디 그 날까지 건강하시길."
그들은 그리고는 그대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쟤네 뭐냐? 너도 참 힘들게 산다.
"그렇죠? 내가 이놈에 빚 진짜 징글징글하네요. 쟤네들 그 날짜만 되면 어디에 있어도 찾아온다고 유명해요."
-그래? 신기한 놈들이네. 그건 또 어떻게 찾는대?
"저야 모르죠. 쟤네가 어떻게 일하는지 그까지는 알 수가 없죠."
-말투 봐라. 싸가지 없게. 내가 돈 받으러 왔냐? 왜 나한테 짜증이냐?
"아 뭐 그렇다는 거죠. 짜증은 누가 냈다고 그래요."
-확마. 어디 어른한테 버릇없이. 빨리 문이나 열어라.
이런 썩을.
그래.
연다 열어.
진짜.
짜증이 확 난 체스는 그대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
"야. 마리안느. 말해봐~"
"뭘 임마. 뭐 또 시비를 걸려고 개수작이야?"
"어제 일 있잖아~ 그거~"
갑자기 마리안느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
그 모습을 본 아벤이 갑자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뭔가 혐오스러운 걸 마주한 듯한 느낌도 약간 섞여 있었다.
지금껏 마리안느와 함께 마수를 잡으러 돌아다닌 이래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있었던가?
마리안느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었네.
"야! 너 왜 이래! 우리의 건장하고도 튼튼한 마리안느는 어디로 간 거야!"
아벤이 마리안느의 어깨를 잡은 채 힘껏 흔들었다.
"이게 미쳤나. 놔~ 이 자식아."
마리안느가 아벤의 팔을 가볍게 뿌리쳤다.
어어?
일순 휘청거리는 아벤의 몸.
마리안느의 힘을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팔랑거리는 아벤의 육체였다.
하지만 아벤이 어떻게 되든 말든 전혀 아랑곳않는 그녀는 발그레해진 자신의 볼을 감쌌다.
"나는 말이지..."
저 부드러운 말투.
그녀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모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 몹시도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녀의 살짝 벌려진 입에 집중된 모두의 시선.
"어제... 나는 사랑을 느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