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어스아시시(9)
아벤이 달려나가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마리안느를 쳐다보았다.
기스를 쳐다보니 그 웬만하면 표정을 안 드러내는 녀석도 저런 무식한 방법이 통하냐며 입만 쩍 벌린 중이었다.
'하여간 저 녀석도 물건은 물건이야. 저거 저래서 누가 데려가려나...'
"야!!! 뭐하냐!!! 얼른 끝내!"
터져 나오는 마리안느의 고함.
이것들이 지금 온 몸을 바쳐 공격을 하는 게 안 보이나?
기껏 기회를 만드는 중인데.
이크-
마리안느의 외침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수는 이미 지척.
아벤이 쌍검을 마수의 몸통에 연달아 푹푹 찌르며 몸통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투덜거리는 마리안느.
체스에게 달려가는 마수의 전진을 멈추기 위해 쉴 새 없이 한 곳만 집중적으로 후들겨 팬 그녀였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모았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힘껏 두 손을 뻗는 그녀.
콰앙-
커다란 타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려가던 어스아시시의 거대한 몸통이 일순 휘청거렸다.
마리안느의 주먹에 마수의 몸통을 타던 아벤마저 떨어질 뻔했다.
"야이씨~!!!"
그 모습에 얼이 빠져있던 몇몇의 마수 사냥꾼들도 그제야 무기를 다시 고쳐잡았다.
고함이 더 터져 나오기 전에 그들은 얼른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마수에게 달려들었다.
위에서는 아벤이.
아래에서는 기스가 벤토르가.
많은 수의 마수 사냥꾼들이 있었지만 역시 가장 눈에 돋보이는 자들은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하지만 어스아시시는 실컷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이내 다시 자세를 잡았다.
괴성을 지르며 다시 체스에게로 달려가는 어스아시시.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아직 체스는 몸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
-됐다!!!
어스아시시가 자신의 다리 몇 개를 쫘악 뻗었다.
그 다리들은 정확하게 체스의 몸통을 노리고 있었다.
단숨에 몸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늘어나는 어스아시시의 다리.
-쯧쯧. 애쓴다 진짜.
위에서 그걸 내려다 보던 헬캣이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까지 해서 그걸 또 얻으면 어떻게 도망을 치려고 하는 거지?
자신이 있는데 그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래도 저 다리는 좀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저 녀석.
바로 골로 가겠지.
-에휴.
한숨을 푹 쉰 헬캣이 자신의 발톱을 살짝 튕겼다.
파바바바밧-
허업-
체스의 몸 주위로 뺴곡하게 정확하게 박히는 어스아시시의 다리.
죽을 뻔했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체스였다.
****
-이런 개 같은!!! 절대 안 끼어든다고 했지 않나!!!
어스아시시가 분노의 고함을 터뜨렸다.
그러나 콧방귀를 뀌는 헬캣.
-흥. 상황이 바뀌면 그럴 수도 있지. 뭘 새삼스레 그리도 난리냐?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살려줬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헬캣은 다시 만신창이가 된 심사장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아마 체스는 모를 것이다.
헬캣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것을.
읏차-
체스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재빨리 주변에 박혀있는 어스아시시의 다리를 한 품에 끌어 안았다.
뭘 하려는 심산이지?
체스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마수 사냥꾼들의 눈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심지어 어스아시시마저도.
어스아시시는 붙잡혀 있는 다리를 빼기 위해 기운을 썼다.
응???
얼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본래라면 당연히 돌아와야 할 다리가 돌아오질 않았다.
영문을 모르는 어스아시시가 더욱 기운을 끌어올리려는 찰나.
으랴아아압-!!!
체스의 힘찬 기합 소리가 들렸다.
-뭐...뭐냐? 어? 어? 어?
별 생각 없이 다리를 끌어 당기려던 어스아시시의 몸이 체스에 의해 그대로 끌려갔다.
완전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이 느낌.
콰아아아앙-!!!
체스가 처박힐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어스아시시의 몸이 그대로 관중석 쪽에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쳐박혔다.
-크흡.
충격 때문에 머리를 흔드는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하는 어스아시시.
그리고 또 한 명 어이가 없어하는 남자가 있었으니.
체스였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는 그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잔뜩 깔려 있었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긴 했는데 좀전까지는 안 되던 게 어떻게 한 거지?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마수 사냥꾼들이 공격에 더욱 열을 올렸다.
퍽- 퍽- 퍼억-
촤악- 촤악-
마수 사냥꾼들의 무기가 꽂히고 피가 마구 튀기며 마수 사냥꾼들의 몸이며 땅을 적셔갔다.
고통이 느껴지는 듯 상처 입은 마수의 입에서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스걱-
그 와중에 기스의 대검이 어스아시시의 환석 근처에 모아둔 독 기운을 스치고 지나갔다.
뭉쳐 있던 독 기운이 사악 퍼져 나가며 다시 어스아시시의 몸을 둔하게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어스아시시의 두 눈에 어린 낭패의 기색.
이렇게 된다면 결정을 해야 했다.
다음 기회를 노릴 지.
이대로 여기에서 끝장을 볼 지.
마수 사냥꾼들까지는 괜찮은데 다시 온 몸에 퍼지는 독도 신경에 거슬렸다.
-안 되겠다. 다음에 헬캣이 없을 때 다시 와야겠다.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지금은 아쉽지만 과감히 물어나야 할 때.
어스아시시가 크게 몸을 튕기며 땅 속으로 재빨리 물러날 준비를 했다.
위에서 내려보던 헬캣도 어스아시시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저렇게 뻔하게 움직이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저 녀석. 지금 가면 또 오겠지? 어차피 위험한 녀석이기도 하고.
헬캣이 눈을 매섭게 뜨고 어스아시시를 노려보았다.
-좋아.
헬캣이 자신의 발톱에 기운을 양껏 모아 응축시켰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쏘아내는 헬캣.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기운이었다.
-사사건건 방해질이냐!!!
어스아시시가 그것을 못 느낄 리가 없지.
그는 헬캣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분노의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젠장맞을.
어스아시시가 헬캣의 공격을 막기 위해 온 기운을 한 곳에 모았다.
순간.
인간 중에 하나가 몸 속에 심어둔 독 때문일까 갑자기 자신의 기운이 확 흩어졌다.
퍼억-
헬캣의 공격은 정확하게 어스아시시의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그것을 알아차린 건 기스 뿐.
"뭐냐?!!!"
팟-
재빨리 기스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하지만 그 공격을 알아차릴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그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 사이 어스아시시의 몸이 쿠웅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졌다.
일단 마수의 머리 부근으로 다가간 기스는 생각을 멈춘 채 자신의 무지막지하게 생긴 대검을 힘껏 치켜들었다.
슈왁-
기스의 검이 힘껏 허공을 갈랐다.
푸우욱- 뿌드득-
촤아악-
어스아시시의 머리뼈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마수의 머리 안쪽으로 기스의 대검이 사정없이 파고 들었다.
마수는 고통을 느끼는 듯 몇 번 더 발버둥치는가 싶더니 고개를 완전히 땅에 떨구었다.
심사장 안에는 마수의 피가 줄줄 새어나와 강을 이루고 있었다.
"허억. 헉. 다들 괜찮나?"
마수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것을 확인한 아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벤은 마수의 머리를 밟고 올라가 사냥이 끝이 났음을 알리는 손을 힘껏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마수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드디어 마수를 쓰러뜨린 줄 알고 환호를 질러댔다.
와아아아아아-!!!
"우리가 드디어 S급 마수를 잡았다!!!"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