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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67화 (67/249)

#67

어스아시시(6)

...약간 수줍은 듯한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

기분 탓이겠지...?

뭔가 솜털이 곤두서는 듯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어느 새 체스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체스.

부릅-

체스가 두 눈을 양껏 치켜떴다.

그리고 엄청난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흐야아아압-!!!

그게 신호였나.

그와 동시에 체스의 두 팔에 힘줄이 두두둑 솟아 오르는가 싶더니.

앞에 있는 마리안느의 몸이 힘껏 당겨졌다.

멈칫-

겨우 버티기에 급급하던 마리안느의 몸이었다.

그 와중에 힘이 딸려 조금씩 어스아시시 쪽으로 딸려가던 마리안느의 몸이 멈췄다.

'...이 정도의 힘이라니...!'

그녀의 눈이 튀오나올 듯이 커졌다.

그리고 그에 따라 더욱 홍조를 띄기 시작하는 마리안느의 얼굴.

'아아~ 이런 남자의 박력. 그간 기다려 온 보람이 있었구나. 안긴다라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전투 중인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온통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다.

실은 그녀는 지금껏 이성과 사귀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지.

가끔 주변의 동료들이 연애 좀 하라며 남자를 소개시켜주기도 했지만 그녀의 이상형은 확고했다.

그녀의 이상형은 자신보다 힘이 센 남자.

늘 자신보다 힘이 센 남자에게 시집을 갈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던 그녀였다.

그리하여 항상 남자를 만나면 팔씨름을 하는 마리안느.

그리고 그렇게 승부를 볼 때마다 실망하는 건 덤으로 따라 붙었다.

어째 사지가 멀쩡한 남자들 중에 자신을 이기는 남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인지.

어디를 가더라도 말이다.

하긴 그런 남자를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 정도의 난이도는 되겠다.

마리안느가 보통 여자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런 남자를 운명처럼 만나버렸다.

마리안느는 자신의 허리를 감싼 채 힘껏 힘을 주고 있는 체스를 향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잉-

딱 봐도 자신이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기도 하고.

오...빠려나?

얼굴이야 먹다 만 찐빵처럼 생겼지만 얼굴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저런 얼굴이 미래를 위해서라도 안심이 된다.

적어도 바람은 안 필 것 아냐.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드디어 이상형을 만났다는 기쁨에 심장이 쉴 새 없이 벌렁벌렁거리는 걸 느꼈다.

그렇게 마리안느가 발칙한 상상에 잠겨있을 그 때.

"당깁니다!!! 당겨요!!!"

마냥 행복한 상상에 젖어있던 그녀의 고막을 체스의 목소리가 마구 때린다.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체스의 손에서부터 힘이 들어오자마자 그녀의 몸이 일순 자석이 당기는 것마냥 뒤로 당겨졌다.

'왁!!! 무슨 힘이...'

그녀가 느끼는 체스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으로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힘은 자신도 처음 겪어 보는 엄청난 힘이었다.

기스도 불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그걸 고작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인 체스가 해낼 줄이야.

이렇게나 가볍게 자신을 뒤로 당기다니 말이다.

그녀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심스레 체스를 부르는 마리안느.

'여보...'

****

한편 체스는 죽을 맛이었다.

어스아시시의 탓인지 마리안느의 몸이 무거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똥 싸는 기운까지 모조리 집어넣은 체스였다.

'뭔 놈에 여자가 이렇게 무거워!'

힘을 과하게 준 탓인지 벌써 팔 전체에 쥐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마리안느도 힘을 주고 있지 않은 게아니다.

하지만 어스아시시가 어디 보통 마수이던가.

꽤나 한참을 대치했건만 어스아시시는 별반 이동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의 공격 탓이기도 했지만.

정확하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스아시시의 위치는 변동이 없었다.

한편 체스는 그녀를 당기는 팔의 감각이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체스의 힘.

이런 식으로라는 필경 패배지.

'안되겠다.'

체스는 한순간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내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자신의 뒤로 재빨리 넘기는 체스.

아마도 그녀를 보호하기 위함 때문인 것 같았다.

'어머. 이런 박력이라니...'

마리안느의 볼이 더욱 빨개졌다.

하지만 체스에게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그는 뭔가 말을 하는 대신 재빨리 그녀의 팔에서부터 어스아시시에게로 연결된 쇠사슬을 꽉 쥐었다.

"어? 어? 뭐하는 거야?"

마리안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체스는 대답을 않은 채 그저 두 팔로 한 쪽의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길 뿐이었다.

으랴아아아아아압-!!!

체스의 힘찬 기합이 터져 나오고 그의 두 팔 가득 힘이 실렸다.

슈아아-

갑자기 그의 몸 사타구니 부근에서 기운이 끓어올랐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화끈한 열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힘이다.

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찌개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체스에게 자신감이 붙었다.

지금이라면 저 커다란 덩치의 어스아시시마저도 충분히 끌어당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원래 가진 힘에 비해 몇 갑절의 힘이 생겨난 듯했다.

'좋아. 다시 한 번 해본다.'

으드드드득-!!!

체스가 이를 꽉 깨물었다.

온 몸에 혈관이 두두둑 올라온다.

'끌려와라~ 제발!!!'

체스가 몸에 쌓인 힘을 일순 폭발시켰다.

완전히 팽팽해진 쇠사슬.

일순 체스가 당기는 쪽의 쇠사슬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겠지만 어스아시시는 자신의 몸이 일순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은 당연히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예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힘에 휘청거리는 어스아시시의 몸.

'맙소사...'

뒤로 밀려난 채 체스가 무엇을 하나 보고 있던 마리안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저런 남자는 본 적이 없다.

A급 마수 중에서도 몸집이 아주 큰 편인 어스아시시를 이렇게 힘으로 당겨버 정도라니.

'이건 기적이야... 신이시여~'

그녀는 할말을 잃은 채 평소에는 찾지도 않던 신의 이름을 남발하며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신을 불렀제꼈다.

****

어스아시시는 이미 반쯤 분노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하찮은 인간들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넣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의 수많은 다리가 화가 잔뜩 난 채 쉴 틈 없이 꿈틀거렸다.

하긴 그가 알 도리가 없지.

이 곳에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마수 사냥꾼이 있다는 사실을.

'어디냐! 도대체! 젠장 눈이 하나가 안 보이니 감각이 돌아오질 않네.'

독이 바짝 오른 어스아시시가 포효를 시작했다.

크롸라라라라락-!!!

-인간 놈들!!! 다 죽여버리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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