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어스아시시(5)
체스는 그저 마정석을 주으려고 달려가던 몸을 멈췄다.
대신 그의 눈동자 속 시선은 마수 사냥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와......
절로 탄성이 흘러 나왔다.
S급의 마수인 어스아시시 앞에서도 전혀 겁을 먹지 않은 채 공격을 계속하는 마수 사냥꾼들.
새삼 자신이 방금까지 보였던 전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체스였다.
"어...엄청 나네..."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이다.
그 이전에 엘윈 마을에서 봤던 디오스 같은 것들도 비교가 안 될 것 같다.
저 정도라면.
모든 이들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벤이나 마리안느.
절로 혀가 내둘러지는 실력이었다.
힘이며 기술 면에서 정말...
저들의 합격술을 보자니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그저 멍 하니 전투 장면을 보고 있는 체스.
그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어이. 애송이. 승급 심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기스였다.
한참을 견제만 하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스는 그 말을 끝으로 대검을 꾸욱 쥔 채 어스아시시에게로 몸을 날렸다.
한편 기스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체스.
'아... 그렇지. 승급 심사...'
하지만 무엇을 해야할 지 몰랐다.
이미 자신의 목표였던 도르도라는 시체가 되었지 않나.
그렇다고 저 싸움에 끼어들자니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고.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스아시시에게 달라붙어서 피땀을 흘리는 중인데...
'난... 뭘 하지?'
할 일이 없었다.
****
그 사이 어스아시시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4개의 눈 중 하나가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이 정도 부상이야 뭐.
신경쓸 정도는 아니다.
단지 자신의 몸을 옭아맨 이 쇠사슬이 거추장스럽고 자꾸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 다람쥐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인간들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특히나 저 날렵해 보이는 쥐새끼 같은 것.
자신의 목적만 달성하면 바로 사라지려는 생각이거늘 왜 이렇게 방해를 하는지.
열이 뻗칠 대로 뻗친 어스아시시.
순간 자신의 왼편을 돌아가는 마수 사냥꾼 한 명이 보였다.
퍼억-
재빨리 자신의 수많은 발 중 하나를 길게 늘여뜨려 그대로 그 인간을 찍어버린 어스아시시.
발을 떼자 그 인간은 이미 곤죽이 되어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어떠냐!!!
마치 너희 인간들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큰 굉소를 터뜨리는 어스아시시.
그를 공격하는 것들은 이렇게 밟아버려야 눈의 상처에 대한 복수가 되지.
일순 화악 늘어나는 어스아시시의 수많은 발.
"피햇!!!"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여기저기서 마수 사냥꾼들이 나자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이 낮은 마수 사냥꾼들이 처리하기에는 확실히 난이도가 너무 높은 어스아시시였다.
치잇-
아벤이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몇 명의 마수 사냥꾼들이 죽었다.
낮은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들도 동료가 아닌가.
기분이 마냥 썩 좋을 리는 없었다.
"발이 늘어나면 모두 피해!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챙겨라!"
아벤이 말을 하는 사이 또 하나의 발이 쑤욱 늘어나더니 격한 회전과 함께 아벤을 덮쳐왔다.
이크-
스샥-
말을 하느라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아벤의 팔 부분의 옷이 그대로 잘려져 나갔다.
'휴우. 다행이네. 까딱 잘못했으면 팔 자체가 날아갈 뻔했네.'
"크크크. 야. 아벤. 벌써 상처냐?"
같은 파티의 포드다.
그는 자신의 상체 만한 도끼를 휘두르며 아벤의 저 부상 입은 모습을 양껏 비웃는 중이었다.
도끼의 넓은 면적을 이용해 어스아시시의 공격을 막아내는 와중에도 아벤이 밀리는 건 또 언제 본 건지.
"야! 실수한 거거든?!!"
"실수도 실력이지 자식아~ 흐흐흐흐."
"쳇, 확실히 실수란 걸 보여줄게."
아벤이 자신의 검을 다시 고쳐쥐었다.
순간 그의 몸이 옅은 빛에 휩싸인다.
마침 그 사이 자신에게 격하게 원을 그리며 내리쳐지는 어스아시시의 발.
동시에 아벤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난무!"
스와아아아악-
아벤의 쌍검을 쥔 두 손이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원은 점점 속도를 더해가고.
점점 격해지는 아벤의 두 팔의 움직임.
오로지 들리는 건 아벤의 두 팔에서부터 일으키는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
그리고 거기에 어스아시시의 발이 그대로 직격했다.
응?
응당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들려온 건 양파 썰리듯이 무언가가 서걱서걱 잘려나가는 소리.
어스아시시의 발이 잔 조각이 되어 마구 잘려나가고 있었다.
후두두둑-
땅에 투두둑 떨어지는 어스아시시의 수많은 발 중 하나.
하지만 보통 인긴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걸 지금 아벤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만.
후욱-
"봤냐?"
자신이 만들어 놓은 흔적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는 아벤.
저거다!
체스의 두 눈이 반짝였다.
꼭 다시 보고 싶었던 그 기술.
'와... 진짜 저런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지?'
기술을 끝낸 아벤은 딱히 힘들어 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진심 반하겠는데..."
체스의 중얼거림이었다.
****
"야 임마! 뭘 멍 때리냐? 얼른 와서 안 돕냐?"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어스아시시의 괴성을 뚫고 체스의 귀에 들려왔다.
이번에는 마리안느의 목소리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사정없이 체스를 때린다.
그제야 상념에서 벗어나는 체스.
"아. 네네네."
그녀의 목소리에 기가 죽은 체스였다.
가뜩이나 기가 잔뜩 죽었는데...
하지만 체스는 그녀의 부름에 엉겁결에 벌떡 일어나 대검을 움켜쥔 채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여전히 이를 악문 채 양팔을 쇠사슬로 고정한 채 버티는 중인 그녀.
"내 몸을 잡아!"
"아. 네네네. 하지만... 남녀가 유별한데..."
"야이 자식아. 놀고 있네. 진짜! 빨리 잡으라고!!!"
"아. 네네..."
체스는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힘껏 감았다.
'윽... 단단하다.'
체스가 느낀 신체 접촉에 대한 첫 감정이었다.
그렇게 체스가 느끼는 그때.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마리안느의 얼굴이 꽤나 붉게 달아올랐다.
일순 자신의 몸에 밀착된 남자의 팔뚝에서 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욱 붉게 달아오르는 마리안느.
하지만 이 쯤에서 체스가 느낀 감정도 존중을 해줘야 한다.
마치 굵디 굵은 나무와도 같은 그녀의 몸.
게다가 저 힘...
하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가.
그녀의 저 덩치.
체스와 맞먹을 정도니...
"당겨...!!!!!!"
마리안느의 수줍어하면서도 낮고도 강한 목소리가 체스의 두 귀를 똑똑히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