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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65화 (65/249)

#65

어스아시시(4)

그리고 그것을 헬캣이 멸시가 가득찬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병신새끼.'

그만큼 말렸는데도 저걸 또 가지려고 한다.

에휴...

-그래. 니 삶이지. 내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뒤지든지 말든지.

헬캣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저 빤히 밑을 내려다보았다.

****

한편 정작 체스는 어스아시시가 자신을 쳐다보건 말건 아직 거기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쳐박히고 정신을 추스리자마자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게다가 갑자기 난입한 마수...

그 마수가 도르도라를 휘감더니 터뜨려버리는 것을 본 순간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것 하나도 제대로 못 잡아서 헤매고 있었는데.

순간,

자신을 현실로 되돌리는 어떤 물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닥에 툭 떨어지더니 이내 또르르 움직이는 것.

데구르르-

도르도라의 등껍질만 남은 사체에서 굴러나온 마정석이었다.

그 마정석은 심사장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가 싶더니 체스의 앞에 멈춰섰다.

넘어져 있는 와중에도 눈이 동그래진 체스.

자신의 눈앞에는 휘황찬란한 빛을 내는 도르도라의 마정석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간다.

'저...저게 얼마짜리야...?'

B급의 마정석.

디아고스트를 잡았을 때 보고 처음 보는 B급의 마정석이다.

'일단 저걸 주워야 해! 무조건 저건!'

체스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아프고 자시고 그걸 느낄 새도 없다.

아픔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으니.

어느 새 가시에 찔렸던 발의 상처는 모두 아물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깨닫지 못한 듯했다.

그는 그저 마정석을 취하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땅바닥에 떡 하니 떨어져 있는 마정석 쪽으로 손을 뻗는 체스.

틱-

순간 어스아시시의 몸통의 다리 하나가 마정석을 스쳤다.

"아. 이런 미친 놈! 다 왔는데!"

버럭 고함을 질러대는 체스.

마정석은 점점 자신의 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또르르르 움직이는 마정석을 따라 체스의 시선도 따라 움직이고.

체스의 시선은 여전히 굴러가는 마정석과 함께였다.

마정석이 툭 멈추자마자 냅다 뜀박질을 하는 그.

오로지 마정석 마정석 마정석.

그의 머릿속은 마정석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스아시시에 다다른 마수 사냥꾼들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

"마리안느! 묶어!"

아벤이 체스의 덩치 정도 되어보이는 한 여자에게 외쳤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안느.

뒷모습만 보면 머리가 긴 것만 빼면은 누가 봐도 남자다.

아벤과 같은 파티인 그녀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었다.

그녀의 주 역할은 쇠사슬을 뿌려 마수의 움직임을 봉하는 데 있었다.

저기 팔에 달린 것들 있지 않은가.

두 팔에 감긴 쇠사슬들.

마수를 묶는 데에는 최적인 그녀였다.

그렇다고 전투력이 낮다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쇠사슬이 허공을 마구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낮은 등급의 환수들은 아주 그냥 온몸이 으깨지는 게 다반사였다.

지금 아벤이 마리안느를 부른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의 전투방식 때문이었다.

그들의 어스아시시를 잡는 계획은 지극히 단순했다.

선공은 언제나 마리안느.

마리안느가 쇠사슬을 날려 어스아시시의 몸을 고정시킨다.

그 사이에 아벤이 다리를 하나씩 자르고 기스가 대검을 이용해 치명타를 날린다.

벤토르를 비롯한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은 무조건 움직임이 둔해지게끔 상처를 낸다.

대충 이런 계획이었다.

워낙 함께 합격을 한 적이 많은 그들이었기에 딱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역할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촤라라라라락-

역시나 먼저 움직인 것은 마리안느.

마리안느의 양손에 두꺼운 장치에서 쇠사슬이 튀어나갔다.

쇠사슬은 허공에서 크게 한 번 원을 그렸다.

슈웅슈웅 허공을 돌던 굵디 굵은 쇠사슬은 이내 어스아시시의 몸통을 휘어감아갔다.

촤락- 촤락-

도대체 어느 정도의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있길래 저 굵은 몸을 감을 수가 있는 것인지.

참 불가사의하긴 하다.

모든 마수 사냥꾼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한 번도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그녀였다.

"굿! 마리안느!"

이내 팽팽해지는 마리안느의 쇠사슬.

그녀와 어스아시시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끙끙- 끙끙-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

반면 어스아시시는 S급의 마수.

힘이며 덩치 면에서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진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낸 마리안느였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어찌나 용을 쓰는지 힘줄이 툭툭 튀어나와있었지만 버티기도 겨우 하는 형국이었다.

오히려 안 끌려가는 게 대단하다고 해야할 듯 힘이 잔뜩 들어간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르르륵- 주르르르륵-

그녀의 다리가 어스아시시 쪽으로 점점 끌려갔다.

"와씨!!! 먼 놈에 힘이... 오래 못 버텨!!! 얼른 처리해!!!"

그녀의 외침이 심사장 전체에 울린다.

"알았어! 조금만 더 버텨!"

아벤이 빠른 몸놀림을 이용해 쇠사슬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타다닥-

그의 몸놀림은 마치 다람쥐 같았다.

어느 새 어스아시시의 머리 부근에 도달한 아벤이었다.

슈왁- 슈왁-

그는 어스아시시의 눈 부분을 쌍검을 이용해 냅다 그어버렸다.

****

어스아시시는 쇠사슬이 자신의 몸을 감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이 정도야 뭐.

자신을 끌어당기는 힘이 인간치고는 대단했지만 거기까지.

굳이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다.

쇠사슬을 감은 인간을 내버려 둔 사이.

자신의 머리 부분에 찰싹 달라붙은 인간 한 명.

하지만 인간 하나 따위 가볍게 생각한 어스아시시였다.

'아주 그냥 놀고들 있네. 헹.'

-떨어져라!

마구 머리를 흔들어 떨어뜨리려는 어스아시시의 움직임이었다.

응?

이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어스아시시의 의도와는 달리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그 인간은 되레 찰싹 달라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곧 자신의 머리 부분에 도착한 인간.

어스아시시의 4개의 눈 중 한 부분이 마치 불로 지져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끈함과 함께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고통.

이제껏 이런 경험을 당한 적이 없던 자신이 아닌가.

촤악-

순간 피분수가 뿌려지고.

쿠와아아아아아아-!!!

고통에 찬 어스아시시의 몸부림이 이어졌다.

"좋아!!! 당겨!"

아벤의 말이 터져 나왔다.

저 자세만 무너뜨리면 그 다음은 나머지 인원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마리안느의 통나무처럼 굵은 두 팔에 가뜩이나 솟아난 힘줄이 더욱 굵어졌다.

우랴아아아아아압-!!!!!!

그녀가 용을 쓰며 어스아시시를 힘껏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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