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어스아시시(2)
도망가는 관중 중 한 명이었다.
그 남자는 주변이 어떻게 되든 안중에도 없는지 팔로 마구 밀쳐 나가며 들소 같은 기세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이런 개 같은 게..."
퍼억-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던 남자의 행동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벤토르가 그대로 그 남자에게 주먹을 날린 것이었다.
한 손에는 아이를 든 채 이를 으득 깨문 벤토르였다.
쏴아-
일순 정적이 흐르고.
정신없이 도망치던 사람들의 행동이 잠시 멈춘 채 둘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 하나 살겠다고 넌 그렇게 하냐?"
벤토르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상태였다.
"이런 뭐이 씨..."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굴을 싸맸던 남자가 눈앞에서 씩씩대고 있는 벤토르를 발견했다.
순간 그의 기세에 잔뜩 짓눌린 그 남자가 말을 더듬었다.
"아...저. 그게 아니라..."
벤토르에게 한 방 얻어맞은 남자가 말을 얼버무리며 잔뜩 겁을 먹은 사이,
주변의 관중들은 벤토르의 주위를 피해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이내 썰물 빠지듯 밖으로 쏴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벤토르의 한 방이 효과가 좀 있었는지 아까처럼 심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이~~ 벤토르. 그만 진정해. 우린 우리 할 일을 해야지."
스릉-
아벤이 벤토르를 향해 고함을 지른 뒤 무기를 꺼내 들었다.
시선은 마수에게 고정한 채였다.
그의 행동에 따라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도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여자아이를 곱게 보낸 벤토르도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며 전투 준비를 했다.
"뭘 그렇게 시작 전부터 불타오르고 있냐? 흐흐흐."
"아니~ 열 받잖아! 지 딸이었어봐. 저랬겠어? 개놈에 자식이."
"크크크. 뭐 그렇긴 하지. 내가 다는 이해 못하지만 너 같았어도 그랬겠지 아마."
아벤이 벤토르를 툭 쳤다.
"준비나 해. 심상치 않다."
"당연."
쿠와와아아아아아앙-
마수의 하늘을 뚫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진다.
이제 심사장에 남은 건 마수 사냥꾼들.
그리고 마수 2마리와 체스 정도였다.
아, 그리고 위에서 지켜보는 헬캣까지.
빼면 섭하니까.
여하튼 그들은 커다란 울부짖음이 들려온 소리의 진원지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 곳에는 커다란 지네 같은 마수가 도르도라를 온몸으로 감싼 채 꽉꽉 조여가는 중이었다.
"저건..."
****
"저거 어스아시시 맞지...?"
그제야 갑작스레 튀어나온 마수의 정체를 알아차린 다른 마수 사냥꾼 하나가 중얼거렸다.
어스아시시.
S급의 마수로 알려진 마수였다.
"저게 왜 여기에 뜬금없이 나타났지?"
기스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희한한 일이다.
10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긴 몸뚱이를 자랑하는 저 마수는 주로 지하를 통해 산에서 산으로 이동하는 마수였다.
보통은 인간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마수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인간계에 드러낼 때면 언제나 큰 피해를 일으키곤 했다.
특히 마을로 내려올 때에는 정말이지...
어스아시시는 딱 한 마디로 얘기해서 재앙.
큰 재앙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드러냈다.
저 긴 몸뚱이를 봐라.
보이는 것 족족 쭉쭉 밀고 다니는데 뭐가 남아있겠나.
그 사이.
쿠와아아앙-!
고통스러워하는 도르도라의 울음소리가 온 심사장을 울렸다.
온 몸이 어스아시시에게 조여진 탓에 움직임을 속박당해 꼼짝도 못하는 도르도라였다.
하지만 자신도 마수.
도르도라는 몸이 조여지는 와중에도 등의 가시를 이용해 어스아시시를 마구 찔러댔다.
구를 수가 없으니 그가 공격할 수 있는 최후의 공격수단이었다.
도르도라의 등의 가시가 어스아시시에게 마구 박혔다.
그렇지만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어스아시시.
급이 다르다 아예.
하긴 뭐 등 부분을 제외하고는 강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없잖은가.
아무리 도르도라라도 이렇게 된 이상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끄어어어어어-
마지막 단발마의 괴성이 갸날프게 울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끝.
결국 온 몸을 조여드는 어스아시시의 힘을 견디지 못한 도르도라의 몸이 퍼어억 터져버렸다.
푸와아아아왁-
심사장을 뒤덮는 걸쭉한 도르도라의 피.
후두둑-
살점인지 피인지도 모를 무언가가 사방팔방 심사장 곳곳에 뿌려졌다.
남은 건 도르도라의 몸에 있어서 가장 단단한 부분인 등껍질.
그 외 약한 부분은 이미 다 터져버렸다.
스륵-
그제야 자신의 몸을 스르륵 푸는 어스아시시.
본디 목표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스아시시는 자신의 몸을 조금 더 지상으로 끌어냈다.
너덜너덜해진 도르도라의 나머지 몸통들은 심사장 어딘가에 투욱 던져졌다.
하지만 저딴 시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것은 필요가 없지.
어스아시시는 심사장 주위를 한참 두리번거리더니 이 곳 전체가 무너져라 괴성을 터뜨려댔다.
크롸라라라라락-!!!
순간 피부가 따끔따끔거린다.
명백한 적의였다.
"이거... 저게 목표가 아니었나 본데?"
다른 마수 사냥꾼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게 뭔 상관이야. 언제 우리가 그런 거 따지고 했냐? 가자!"
씨익 웃은 아벤이 외쳤다.
마수 사냥꾼의 역할은 마수를 잡는 것이지.
훅 뛰는 아벤.
그리고 나머지 마수 사냥꾼들도 그를 따라 일제히 몸을 움직였다.
****
크르륵-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낮은 괴음을 울리는 어스아시시.
어스아시시는 지금 욕망으로 가득 차있었다.
마수의 욕망은 날카로워진 동공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넘실거리는 눈동자.
그런데 도대체 인간들에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어스아시시가 여기 도시 한복판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지.
본래라면 환수들조차도 보기 힘든 게 바로 어스아시시였다.
게다가 이렇게 인간계로 넘어오는 것.
자신 정도의 마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의 크기도 크기이거니와 자신의 덩치 또한 작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 인간계로 통하는 문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전에 비해 훨씬 쉽게 문을 통해 인간계로 넘어오게 된 어스아시시였다.
원래대로라면 어느 정도 인간계에서 있다가 문이 좁아지기 전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상태는 좀 위험했다.
인간계에 머물면 머물수록 말이다.
환수들에게는 인간계에 오게 되면 뭔가 상태의 변화가 생긴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환수계에서 인간계로 넘어온 환수들은 뭔가 본능적인 욕망에 휩싸인다는 것.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마음껏 파괴하고 학살하고 싶다는 그런 욕망들 말이다.
주인들의 기운에 억눌려 있던 기운이 마음껏 표출이 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의 욕망들이었다.
지금도 저 4개의 눈.
더욱 욕망으로 불타오른다.
-크르르르.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