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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57화 (57/249)

#57

승급심사(2)

잔뜩 달아오른 관객들의 함성 속에는 여러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살육에 대한 본능.

그리고 대리만족감.

자신들이 가진 욕망의 발현이 지금 심사장에 있는 마수 사냥꾼을 통해 양껏 터져 나오고 있었다.

오호.

체스의 귀가 쫑긋거렸다.

대충 함성소리만 들어봐도 결과가 나왔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힐끗 바라본 심사장은 역시 체스의 예상이 딱 맞았다.

뻗어있는 마수 그리고 힘이 쫙 빠진 듯 주저앉은 채 헉헉대는 마수 사냥꾼이었다.

'승급에 성공했나보네. 부럽다.'

이제 곧 자신의 차례.

체스는 이내 심사장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막 몸을 돌린 찰나.

"체스... 님이시죠? 그 실버 등급 심사를 보시는 분...?"

"아 네. 맞아요."

"아~ 다행이다. 맞군요. 자~ 이리로."

진행원은 체스를 안내해 심사 대기실로 데려갔다.

"저. 그 고양이는...?"

진행원의 손은 체스에게 안겨 있는 고양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앵앵이 말이군요. 제가 키우는 애완묘입니다. 여기에다 두면 알아서 놀 거니 신경쓰지 마세요."

"아. 네 그렇군요. 이제 브론즈 등급 심사 하나가 끝이 났으니 다다음이 체스 님 차례가 될 겁니다. 그럼."

진행원은 인사를 한 후 대기실을 나갔다.

캬악-!

-누가 네가 키우는 애완묘란 말이냐? 건방지게 어디 감히!

"에이~ 그럼 뭐라고 해요~ 여기서는 앵앵이라구요. 흐. 그나저나 여기에서 기다리시겠어요 아니면...?"

-나는 신경쓰지 마라. 알아서 하겠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헬캣.

'삐쳤나? 으흐흐흐. 뭐 누가 봐도 애완묘구만. 아닌 척하고 있어.'

자신한테나 강하게 뭐라하지 남들한테는 그저 고양이일 뿐인 헬캣이 아닌가.

뭐라고 좀더 놀리고 싶긴한데...

그 사이 헬캣은 문을 살짝 열더니 홱 어디론가 나가버렸다.

어딜 가냐며 물어보기도 전이었다.

뭐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체스는 나가버린 헬캣에 대한 생각은 접은 채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

한 번의 환호성이 더 들리고 드디어 돌아온 체스의 심사.

"후웁. 훕."

체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처음 마수 사냥꾼의 시험 때에는 그저 멍하게 시험을 쳤다면 지금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묘한 긴장감이 온 몸을 맴도는 게 근육이 움찔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체스 님. 가실까요?"

"네."

체스는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등에 메고는 진행원을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대기실에서 심사장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고작 몇 십 발자국 되지 않는 그 거리가 왜 그렇게도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지.

흥분 반 긴장감 반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심사장.

쨍쨍하게 빛나는 햇살이 먼저 체스를 반겼다.

일순 강렬한 빛에 눈을 찡그리는 체스.

그를 다시 눈을 뜨게 만든 것은 귓가에 들려오는 관중들의 환호성이었다.

와아아아아-!!!

우오오오오-!!!

새로운 심사자의 등장에 또다시 관중들이 흥분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의 마지막 심사이자 빅 이벤트였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미 라이손 성에서 최고 화젯거리가 된 체스였다.

아이언 등급에서 단박에 실버 등급을 노린다?

지금껏 마수 사냥꾼이 생겨난 이래 손에 꼽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있는 여기 라이손 성에서?

그러니 사람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지.

그 사이 체스는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곳은 자신의 맞은편 마수가 갖혀 있는 쇠창살의 어두운 부분이었다.

어둠만 가득 찬 그 곳.

어떤 마수가 들어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오히려 점점 강해지는 것만 같았다.

피부가 따끔할 정도였다.

'얼른 와라.'

체스는 쉬지 않고 손을 풀며 그 곳을 응시했다.

****

"저 녀석이야."

아벤이 심사장에 나와 있는 체스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의 말에 서로 각자의 행동을 하고 있던 주변의 동료들이 심사장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여러 의미로 굉장한 녀석이군."

담백한 소감을 내뱉는 아벤의 동료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란 듯 동시에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저 무뚝뚝한 녀석이 이런 식의 표현을 하다니!

저 정도 표현이면 가히 특급 칭찬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중얼거린 자는 아벤의 옆에 앉아있던 기스.

기스도 아벤과 같은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자 같은 파티원이었다.

하지만 말할 때마다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녀석이라 도대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저렇게 얘기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지.

심사장에 있는 저 녀석의 몸집도 거대하고 아마도 같은 무기를 쓰다 보니 이래저래 관심이 생긴 탓인 듯했다.

"아벤. 너 저 녀석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어?"

"없지 당연히~ 나도 그때 접수하는 걸 보기만 봤다고. 흐흐. 그런데 말이지. 좀 기대되는 게 있긴 해. 보기에는 딱 힘 타입인데 말이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흐흐."

"흥미로운 녀석이네. 어디 얼마나 잘 싸우는지 한 번 볼까? 아이언 등급에서 실버 등급까지 한 번에 올라오려는 녀석을 말이야. 만용인지 실력인지는 끝나보면 알겠지."

기스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눈은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잔뜩 흥분해 떠들고 있는 아벤과는 달리.

그들이 말을 하는 사이에 마수가 풀린다는 것을 알리는 깃발이 펄럭였다.

"시작이군. 크크크."

아벤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손을 비비며 마수가 있는 우리 쪽을 보았다.

이번에 심사용 마수로 나오는 마수는 어떤 녀석일지 몹시 궁금했다.

드르르르륵-

마수가 갇혀있던 쇠창살이 거친 쇠사슬 소리와 함께 끌려 올라간다.

그리고 얼마 간 잠잠하던 우리의 안쪽에서부터 거칠고도 낮은 소리가 퍼져 나왔다.

크르르릉-

화가 가득 차있음에도 억지로 누르고 있는 듯한 마수의 낮은 울음소리였다.

자신을 가둔 인간들에 대한 분노인지 환수계로 돌아가지 못한 분노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상당히 화가 난 듯한 울음소리였다.

쿵- 쿵-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운 걸음소리가 쿠웅 쿠웅 지축을 흔든다.

그리고.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심사장 안으로 마수가 그 커다란 발부터 먼저 드러냈다.

그렇게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B급 마수 도르도라였다.

"얼레? 도르도라가 남아 있었어? 아~ 실버 등급 심사자가 그동안 없었지.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성에 있을 때에는 실버 등급 심사도 없었고 저게 남아있는 걸로 봐서는 그렇겠군."

"야야. 다들 봐봐. 저 정도면 성체겠는데? 저기 저 가시들."

아벤이 도르도라의 등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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