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승급심사(1)
그 날 이후 심사일까지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그저 헬캣에게 대들다가 두들겨 맞은 정도...?
하긴 그때는 정말이지 까불다가 죽을 뻔하긴 했다.
물론 착각이 잘못이긴 했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어느 새 조그마한 고양이로 보이는 헬캣이었으니...
그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헬캣으로 향했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긁어주고 있는 체스였다.
그래도 긁어주면 그르릉거리는 주제에 꼬리 한 번 잡았다고 그 무자비한 앞발을 날릴 줄이야.
흐음.
확실히 아프긴 했지.
단 한 방에 벽에 꽂혀 버렸으니.
뭐 그 외에는 딱히 별다른 일이 없었다.
심사 준비를 위한 단련?
필요없다.
어차피 그런 건 하루 이틀 안에 될 일도 아니니 준비할 것도 없다.
그저 쉬고 또 쉬고 또 자고 그런 날들을 보낸 체스였다.
아!
그리고 그 뭣이냐.
기운이라는 것에 대해 물어보기는 했다.
지난 번 어글리불의 결계가 워낙 기억에 깊이 박혔던 까닭이었다.
헬캣 왈.
닥쳐가 첫 마디였다.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말이었지.
그래도 여차여차 두들겨 맞아가며 들은 기운이라는 것...
참 신기한 것이었다.
결계를 만들기도 하고 공격도 하고 심지어 방어나 공격에도 사용하는 그런 것이 바로 기운이라는 것이었다.
헬캣의 말로는 현재 기운이 들어와 있는 이 몸은 환수들에게 있어 복권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반문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대신 마지막에 덧붙였던 말.
자신은 아직 가진 기운의 눈곱만큼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 기운이 사용되는 건 아침에 변화되는 몸뚱아리에서밖에 못 봤다나 뭐라나.
여하튼 연습을 하고 그 기운을 깨우치라는 잔소리만 주절주절 했다.
그래. 헬캣 정도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그건 좋다 이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 또한 가르쳐줘야 할 것 아닌가?
그 연습은 또 어떻게 하는지 모른단다.
자신은 태어났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사용했다나 뭐라나.
헬캣의 말로는 신장이 커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기운의 영향일 수도 있다고 했다.
역시 도움이 안돼...
뭐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주겠지.
여하튼 그렇게 지나간 시간을 뒤로 하고 드디오 오늘로 다가온 심사일.
체스는 새로 산 대검을 들처맨 채 심사장으로 향했다.
그 개놈에 어글리불 때문에 원하지도 않던 지출이...
부들부들.
-흔들림이 심하잖냐!
갑자기 들려오는 헬캣의 목소리.
영 언짢아하는 어조였다.
헬캣은 체스의 어깨에 축 늘어진 채 매달려 있으면서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빨리 좀 가라. 더워 죽겠다. 이놈아.
순간 어깨에 있는 헬캣을 확 던져버릴 뻔했다.
이렇게 투덜거릴 거면 거 그냥 내리지.
왜 어깨에 철썩 달라붙어서 이러는 건지 원.
그래도 또 화는 못 내겠고.
"...거의 다 왔어요. 바로 저기에요."
체스가 몇 백 미터 앞에 떨어진 건물을 가리켰다.
라이손 성의 외곽 부분에 위치한 그것은 옛날 결투장처럼 둥그렇게 타원형으로 생긴 커다란 건물이었다.
-그래? 다행이네. 조금만 더 빨리 걸어라 그럼.
"후... 네."
그렇게 도착한 건물의 앞에는 건장하게 생긴 남자가 참석자들을 한 명씩 입장시키는 중이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줄은 꽤나 길게 늘어져 있었다.
"모두 입장권을 보이시오!"
중간중간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
체스는 의뢰소에서 받은 출전자의 명패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냐?
"이거 오늘 심사를 본다는 출입증 같은 거죠 뭐."
말을 하는 사이 돌아온 자신의 차례.
체스는 출입을 담당하는 그들의 앞에 명패를 들이밀었다.
그걸 확인한 경비.
"네~ 심사 보러 오셨...헉!"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체크하던 남자는 체스의 덩치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체스의 얼굴을 보고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또 한 번 놀랐다.
체스는 그런 남자를 보며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히익...
이건...마수 수준인데...?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으니.
"...심사 보러 오신 분인가요?"
"네. 아이언 등급의 체스입니다."
"아. 네."
덩치가 아깝다 아까워.
저 정도 덩치에 아이언 등급이라니.
덩치에 비해서는 실력이 좀 모자라나보다.
끌...
체스의 이름은 아이언 등급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역시 맞네.
하지만 놀란 김에 또 한 번 더 놀라는 남자.
"...시이이일버어어어? 진짜 실버 등급의 심사를 보시는 거에요...?"
"네."
몇 번이나 반복해 똑같은 것만 물어보는 남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더 확인...할게요."
벌써 몇 번째 확인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 남자 평생 놀랄 걸 여기서 다 놀랄 참인가?
'놀라기는~ 이제 곧 더 놀랄 거다.'
피식 웃는 체스였다.
그러는 사이에 모든 확인이 끝이 났다.
"어...얼른 들어가세요. 심사는 낮은 등급부터 진행이 될 겁니다. 파이팅하세요! 실버 등급 꼭 따셨으면 좋겠네요!"
"네네."
체스는 인사를 꾸벅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후끈 열기가 느껴진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확 느껴지는 달아오른 분위기였다.
그 곳에서는 마수 사냥꾼들과 그걸 보는 관객들이 관람석에 뒤엉켜 앉은 채 열띤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
심사장 안은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죽여! 죽여!"
"오우우우우!!!"
"뭐하냐아아아!!!"
엄청난 함성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소리는 고막을 쿵쾅쿵쾅 울리며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였다.
심사장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안으로 더 들어가는 둘.
그리고.
-이런 거지같은...
핼켓이 날이 곤두선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는지 대신 털을 바짝 곤두세운 채 심사장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사장 안은 심사가 한창이었다.
마수 하나와 마주 보고 있는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
서로 꽤나 공격을 주고 받은 듯 몸 여기저기는 상처투성이였으며 심사장 곳곳에는 피가 떨어져 있었다.
-너희들은 정말이지 답이 없는 종족들이다. 왜 환수들을 저런 취급을 하는 거지? 정작 고마워해야 하는 건 너희들인데 말이지.
"저건 날뛰는 마수를 잡아와서 사용하는 거에요. 사람을 해친 적이 있는 마수들이에요."
-물론 저 녀석들이 사람들을 해친 건 잘못한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면 거기서 죽이면 그만인 것을 왜 또 다시 고통을 주느냔 말이다.
"그건 흠... 그런 마수를 잡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승급 심사나 이런 것에 쓰이는 마수들이 워낙 많으니."
-그것이야말로 너희들의 오만이군. 정말이지 꼴도 보기 싫은 장면이구나. 지금이라도 저기에서 열광하는 모든 사람을 다 쳐죽이고 싶지만.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헬캣.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심사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함성이 또다시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