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라이손 성(8)
일단 둘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풀썩 뛰어드는 체스.
하...
힘든 하루다 정말.
어째 매일매일이 이벤트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안정이 될 만하면 무언가 일이 터지고 또 일이 터지고 진짜.
무슨 마가 끼었나.
신에게 저주를 받은 건지.
그게 아니라면 이건 진심으로 생각한 건데 전생에 자신은 정말 쓰레기였을지도 모른다.
이번 생에서는 온갖 재수없는 일이란 일은 계속해서 겪고 있는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까 벌어진 일을 돌이켜보면 궁금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방금 절 습격한 건 누구에요? 또 뭔가 촤라락 깨지는 것 같던데. 아까 보라색의 그건 다 뭐고 아까 나타난 자는 또 뭐에요? 그 패션 센스 완전 구린 그 자. 그리고 아까 그 상황들은 도대체 다 뭐에요?"
체스는 침대에 누운 채 헬캣에게 고개만 홱 돌렸다.
방금 전의 죽을 뻔한 상황을 넘기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지금 알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아진 체스였다.
그리하여 헬캣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도 않았건만 체스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암-
하지만 헬캣의 저 하품하는 모습.
저건 너무나도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헬캣은 거기에 대답해주기가 정말 귀찮았다.
아침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닌데다가 야밤에 힘까지 썼는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도 궁금한 것도 많고 날 귀찮게만 하는지.
무사히 귀가를 했으면 곱게 잠이나 잘 것이지.
그래도...
궁금한 게 넘치는 듯하니 자애로운 이 몸이 뭐 조금 얘기해 줄까?
라며 마음을 먹는 순간.
"저 죽을 뻔 했다구요~ 저도 이제 그 뭐냐 헬캣 님이 이야기한 것에 관련된 사람이니 이런 건 알아야 하지 않나요? 알고 있어야 다음에 또 안 당하죠. 그리고 제가 그 뭐시기냐 그 기운을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그걸 알 권리는 있잖아요."
블라블라블라블라-
말이...
청산유수다.
기껏 선심을 좀 쓸랬더니 확 끼어드는 체스의 말에 짜증이 확 난 헬캣이었다.
-야이씨...
순간 헬캣의 기세에 목이 절로 움츠러드는 체스였다.
-거참. 옆에서 되게 앵앵거리는구나.
'앵앵이는 너라고 이 자식아... 말도 그냥 해주면 되지 와이씨...'
하지만 마음의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꺼냈다가는 곱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가 한 번 죽다 살아나더니 좀 눈치가 생긴 것이려나.
그렇게 체스는 마음 속으로 생각한 그 말은 목구멍에 가둬둔 채 헬캣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녀석은 환수다. 이름은 어글리불이라고 하지. 환수계의 환수 중에서는 인간으로 치면 S급 정도인 녀석이다.
"에에에에에에?????? 그... 그럼 같은 등급이신가요?"
맙소사.
S급이라니...
놀랄 노자다.
"...그 헬캣 님보다 훨씬 강한가요?"
확 마-
그래도 뭐... 짜증을 내서 뭐하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헬캣이었다.
굳이 일깨워주자면.
-어디 날 그딴 녀석과 비교하는 거지? 야. 그 처음에 만났을 때 네가 나보고 S급이라고 했지? 그리고 내가 코웃음을 쳤지? 굳이 등급을 재자면 난 SS급이다 자식아.
그리고는 말을 멈춘 채 잠시 생각에 빠진 헬캣.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아니다 아냐. 너한테 이런 소리를 해서 뭐하냐. 흠... 그 녀석은 말이지. 아주 못 생긴 녀석이야. 환수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이니... 굳이 따지면 흠... 너 정도 되려나?
"네??? 그 무슨 모욕적인 발언을..."
고작 저런 소리를 들으려고 질문을 한 게 아닌데!
체스가 막 발끈하려는 찰나.
그런 체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낄낄 웃음을 흘리던 헬캣은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여하튼 아까 네가 갇혀 있던 그 보라색의 공간은 저 녀석이 펼친 결계. S급 이상의 환수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이지. 그리고 결계가 보라색인 이유는 그게 어글리불 그 녀석의 색이라서 그렇지. 이해가 가냐?
아~
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방금 전에 벌어진 상황들이 이해가 갔다.
자신의 시선 너머로 보이던 몇 명 되지 않는 사람들이 왜 가던 길을 멈추고 그대로 멈춰섰는지.
그리고 주위가 왜 온통 보라색으로 비쳤는지.
결계.
직접 당해본 건 처음이었다.
그 정도의 환수와 만날 일 자체가 없던 체스가 아닌가.
"아... 결계...결계라는 것이군요. 그럼 그게 깨지고 약간 희끄무레하게 생겨난 결계가 헬캣 님이 만드신 결계인가요?"
-오호~ 이제야 머리를 좀 굴리는구만. 머리가 완전히 텅텅 빈 건 아니었구만.
"...저 좀 똑똑하거든요. 그런데 왜 저런 게 저에게...?"
-넌 내 말을 똥으로 들었냐? 내가 그랬지? 여러 잡스러운 녀석들이 올 것이라고. 물론 처음부터 저 정도의 행동대장 급이 올 줄은 몰랐지만.
"...역시 제가 잡을 수는 없는 거죠?"
-잡는 것 같은 소리하고 있네. 흐흐흐흐흐흐흐흐. 내가 없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자식아.
"쩝..."
저것도 재주다.
말을 해도 어쩌면 저렇게 밉상스럽게 하는지.
하지만 아직 헬캣의 말은 끝나지 않았었다.
-아마 이제 시작일걸? 그랬잖냐. 이런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고. 내가 있을 때야 그래도 막을 수는 있겠지만 혹여나 내가 없을 때에는 좀 곤란하니 살아 남으려면 지금보다 몇 십 배는 더 강해져야 할 걸.
체스에게 걱정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무슨 헛소리냐며 건성으로 듣고 흘렸던 헬캣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로 닥쳐오자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체스였다.
'쉽지 않네 진짜. 첩첩산중이네. 갈 길은 먼데 눈앞에 고개를 넘는 것조차도 힘드네.'
그 사이 헬캣은 창틀로 폴짝 뛰어올라가 그대로 엎드렸다.
-당분간은 안 올 것이니 걱정 말아라. 가끔 정신 나간 녀석들이 올 수는 있겠지만 아마 일단은 내가 네 옆에 있다는 건 환수계 녀석들이 다 알 테니 넌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지 고민이나 해라.
"...아. 네.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그나마 희망적인 말이네요..."
안심을 시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당분간은 오지 않는다니 다행이다.
온다고 해도 오히려 이 쪽에서 사절하고 싶은 게 현재 체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후...
그저 한숨만 나온다.
한숨을 푹 쉰 체스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는 가슴이 뻥 뚫리질 않나 이번에는 헬캣 덕분에 목숨을 구하지 않나.
왜 이렇게 팔자가 기구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거 어디 신전에 가서 기도라도 좀 해야 하나...'
문득 자신이 참 재수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
다시 한 번 터져나오는 깊은 한숨.
-땅 꺼진다. 자식아. 뭘 그리 한숨이냐?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 헬캣.
"아...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유난히 잠이 들지 않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