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라이손 성(4)
아이어어어어어어언??????
엘리나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해 재차 물었으나 체스의 대답은 동일했다.
역시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허우대가 저렇게나 멀쩡한데 아이언 등급이라고???
뭐 허우대 만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휙- 휙휙- 휙휙휙-
그녀의 손이 명부를 빠르게 넘겼다.
[아이언 등급. 체스. 엘윈마을 출신. 대검을 주로 사용.]
그녀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진짜네... 사람은 겉으로만 판별해서는 안 된다더니... 아이언 등급이 진짜 맞을 줄이야. 그렇다면... 그럼 의뢰? 의뢰는 저기 게시판에서 보면 되는데."
"전 승급 시험을 볼 건데요. 언제쯤 바로 있죠?"
"아. 승급 시험을 보겠다는 거구나. 그렇다면 아이언이니까... 브론즈 등급의 시험은 3시간 뒤 바로 있어요. 브론즈야 뭐 시험이 워낙 간단하기도 하니."
"아뇨. 전 실버 등급 시험을 볼 건데요. 가능하다면 골드 등급 시험도 보고 싶네요."
"네??? 실버 등급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골드으으으으???"
이 무슨...
미친 잔가...?
그녀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
"잠...깐만요."
그녀는 사무실 안쪽 방에 앉아 있는 의뢰소장에게 얼른 달려갔다.
****
벌컥-!
"아이코!"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잠을 자고 있던 폰이 문이 활짝 열어젖혀지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화들짝 책상에서 발을 내리려던 폰은 그대로 중심을 못 잡고 쾅 넘어져 버렸다.
"아이고... 허리야..."
"정말 참. 가지가지하네."
엘리나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끄응 엉거주춤 일어나는 폰.
"뭐!!! 뭐야!!!"
엘리나가 들어온 것이었다.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는 폰.
다른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다만.
그래도!
"노크! 노크 좀 하면 안 되냐???!!!"
"잠 좀 그렇게 자지 말라니까 왜 매일 그렇게 자요?!!! 거 침도 좀 닦고!"
폰의 모습에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푹 쉬는 엘리나.
자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없었다면 어쩔 뻔했어?
아마 벌써 짤려서 어디 저기서 구걸이나 하고 있었겠지.
하는 것이라고는 저렇게 침이나 흘리면서 잠이나 잘 줄 알지 도대체가...
"어험험.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제야 엘리나가 온 목적을 물어보는 폰.
"아차.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지. 아이언 등급이 왔는데요? 실버나 골드 등급의 시험을 치고 싶대요. 아니 글쎄."
"뭐??????"
폰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확 커졌다.
보통은 단계별로 시험을 치는 게 당연한 것이었는데.
물론 예외는 있었다.
손에 꼽히는 자들 있지 않은가.
그들 빼고는...
그건 둘째치고 적어도 라이손 성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강하냐?"
"...강해보여요."
보인다?
말이 어째 이상한데...
각설하고 뭐 협회의 규정을 어기는 것은 아니긴 하니 가능은 하겠지만 괜히 그러다가 죽어 나가면 그것 또한 골친데...
"아이씨..."
왜 하필이면 자신이 여기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지?
폰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가능은 한데 말이지..."
"그런데...?"
"그냥 가능하다고 해. 실버 등급 시험을 치게 하고. 그리고!!! 반드시 서약서를 쓰게 해!"
"서약서요?"
"그 왜 있잖아. 만일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절대로 조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거나 뭐 그런 거 있잖냐!"
"아~ 알았어요."
엘리나는 재빨리 문을 닫고 폰의 방을 나갔다.
"제발 뭔 일이 안 벌어져야 되는데... 뭐 상급의 마수 사냥꾼들이 있으니 괜찮긴 하려나..."
폰은 입술을 물어 뜯으며 안절부절했다.
****
잠시 후 자리로 돌아온 엘리나.
"뭐 본인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니 일단 시험에는 넣어둘게요. 현재 심사를 보는 인원들이 많으니 아마 시험은 이틀 뒤가 될 거에요. 혹시나 빨리 당겨지게 되면 말해드릴게요."
"네. 그럼 부탁 드릴게요."
체스는 용건을 마친 후 의뢰소의 게시판을 둘러보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체스가 떠난 자리.
"여~ 엘리나 여사~"
체스가 떠나자마자 능글맞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온 곳에는 버터로 떡칠을 한 듯한 아주 매끈하게 생긴 남자가 능글능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라이손 성에 몇 안 되는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 아벤이다.
쌍검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룬다고 알려져 있는 그는 현재 라이손 성에 있는 마수 사냥꾼들 중 몇 안 되는 골드 등급이었다.
"누구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덩치가 휘유~ 아주 그냥."
아벤의 말투는 체스를 견제하는 듯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누가 봐도 강해보이는 자가 와서 의뢰소를 돌아다니니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말이다.
"아벤. 오늘은 일 없어? 왜 또 와서 방해질이야. 나 바빠."
그녀의 목소리는 냉담했으며 얼굴에는 냉기가 풀풀 흘렀다.
아벤이 온 게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과 말투였다.
"하하하. 너무 그런 표정 짓지마~ 내가 그래도 우리 엘리나 여사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면서 왜 그래? 그나저나 등급이 뭐래? 실버? 아니면 골드인가? 그 위는 내가 거의 얼굴을 아니 그럴 리는 없을 거고."
아벤이 턱으로 살짝 체스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웬일로 새로 온 사람에게 신경을 쓴대? 견제하냐?"
"그거야 저 덩치를 보라구~ 내 밥줄을 건드릴까봐 신경이 쓰이니 그렇지~ 하하하."
"걱. 정. 마. 저 사람 아이언 등급이야."
엥?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아벤이었다.
"장난치는 거지? 저 몸에? 얼굴만 보면 마수도 울고 가겠구만."
하지만 엘리나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은가.
그녀가 저렇게 말한 이상 진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진짜야. 그리고 실버 등급 시험을 친다던데. 가능하면 골드 시험도 쳐보고 싶다나뭐라나."
"뭐...?"
아벤은 게시판을 뒤적거리고 있는 체스를 먼 발치에서 보았다.
확실히 덩치는 남다른 편이긴 한데.
그런데 실버 이상을 노린다라.
'흐음... 뭔가 숨겨둔 한 수가 있는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자인가?'
무기는 대검을 등에 메고 있는 걸로 봐서는 저게 주무구일 것이고.
풀장비가 아니라서 저게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본 장비 이외에는 없는 것 같은데.
뭐지?
저 녀석.
알 수가 없는 녀석이네.
이름은 체스에 엘윈 마을에서 왔다라.
엘윈 마을이면 완전 작은 마을인데 그 곳에 상급의 마수 사냥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아벤이었다.
'이거 흥미로운 녀석일세.'
아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체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앵겨붙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