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라이손 성(3)
산 속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 남성.
그는 그 곳을 양껏 들뜬 기분으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째 옷 입은 센스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보라색 일색인 남자였다.
게다가 파티에서나 입을 법한 연미복까지 보라색으로 맞춰입은 그는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연신 발랄하게 뛰어다니며 숲 속을 걸어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인 그.
언제부터 저런 모습으로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가끔 굶주린 배를 채울 요량으로 산짐승들이 그에게 다가왔지만 되레 도망가는 건 산짐승들.
영문은 모르겠지만 산짐승들은 사납게 달려들던 기세와는 다르게 그를 보자마자 꽁지 빠르게 도망을 칠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그런 것은 일절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신 만의 세계에 오롯이 빠져 있었다.
"여기가 거긴가~ 거기가 여긴가~"
들어주는 이 하나 없건만 때로는 노래까지 불러가며 마냥 즐거운 그.
좋게 말하면 흥에 겨운 자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친 자쯤 되겠지.
"오홍~"
흥겨운 추임새를 집어넣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섰다.
역시 자신의 오감은 틀리지를 않는다.
그의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린다.
킁킁킁-
어떤 냄새라도 맡으려는지 계속 코를 킁킁거리며 길을 찾던 그 남성은 이내 고개를 들어 한쪽을 바라보았다.
"냄새는 저 성 쪽인데...오호호. 갈까? 말까?"
손에 든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에 빠진 그.
그는 갑자기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눈앞의 꽃 하나를 꺾은 뒤 꽃잎을 하나 둘 떼기 시작하는 그.
"간다~ 안 간다~ 간다~ 안 간다~"
그의 입에서 한 단어가 내뱉어질 때마다 한 장씩 나폴나폴 떨어지는 꽃잎.
짝-
"가야겠네? 오홍홍홍."
답은 나왔다.
으차-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시야 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성을 잠시 바라보았다.
룰루~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 성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놀려갔다.
"즐거운 여행~ 룰루~"
****
한편 체스는 라이손 성의 거리를 걸어가는 중이었다.
거리는 북적북적했다.
역시 큰 성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방팔방 시끄러운 소리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병사들의 모습이 조금 경직된 듯 보였지만 뭐 그러려니 하는 체스였다.
아마도 요 근래 성의 경계가 엄해져서 그런가보다.
게다가 자신에게 뭐라 하는 것도 아니니.
"이 곳은 그래도 별로 바뀐 게 없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도 엘윈 마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체스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가끔 체스를 보며 몇몇의 사람들이 힐끔거리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보자... 의뢰소가 분명히 이쪽이었지?"
체스는 우선 의뢰소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자신의 등급을 올리기 위한 심사를 받기 위해서이다.
이 곳에서 해야할 일은 명확하다.
마수 사냥꾼으로서의 등급을 올려 더 높은 등급의 의뢰를 수행해야 한다.
무조건!
헬캣은 의뢰소에 가기 전 어딘가로 사라졌다.
뭘 좀 알아볼게 있다나?
걸음을 계속한 체스는 금방 마수 조합의 의뢰소에 도착했다.
찾아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했고 장소도 그 곳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의뢰소는 북적북적했다.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의뢰소도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게시판과 파티를 모으는 의뢰인들 주변에 모여 있었다.
"휘유~ 굉장하구나. 오랜만에 오긴 했지만 사람이 어째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체스는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의 틈 사이를 헤치며 의뢰소의 접수대로 향했다.
****
접수대에 앉아있는 한 명의 여자.
엘리나는 라이손 성의 의뢰소의 안방마님이다.
여기에서 일한 지는 고작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그녀는 이제 이 의뢰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인구가 넘쳐나는 거대 도시인 라이손 성 안에는 정말 많은 수의 마수 사냥꾼들이 있었다.
아이언 등급부터 골드 등급까지의 마수 사냥꾼이 골고루 모여 있는 이 곳.
뭐 딱히 의뢰가 없으면 할일이 없는 그들이 아닌가.
이들의 대부분의 일과는 의뢰소로 출근하다시피 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넘치는 것은 당연하고 다툼 또한 매일 끊이지 않았다.
저기 봐라.
또 저기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으휴. 또 싸우네 또 싸워. 이봐! 저기 좀 조용히 시켜!"
꽥 고함을 지르는 엘리나.
의뢰소의 다툼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엘리나였다.
지금처럼.
그녀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아줌마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상대를 옴싹달싹 못하게 하는 우격다짐.
그 2개의 무기가 있으면 웬만한 마수 사냥꾼들은 그녀 앞에서는 목청을 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한편 다시 업무로 돌아온 그녀.
"랄랄라~"
오늘도 역시나 사람이 참 많은 날이다.
그녀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업이 되는지 모를 정도로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딱히 진상도 없고 어려운 일도 없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일이 왜 이렇게 수월하게 잘 풀리는지.
매일이 오늘만 같아라는 심정이었다.
진심.
****
그런 그녀에게 그 기분을 단숨에 가라앉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어째 하루 일진이 좋더라니.
"저..."
마수 사냥꾼인가보네.
엘리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또 무슨 일이래.
흐억-
"아이쿠야!"
그녀는 뒤로 돌아본 순간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버리고 말았다.
덩치가 산 만한 마수 사냥꾼이 접수대 안 쪽으로 얼굴을 집어넣은 채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한 번 놀라고 또 그 덩치에 한 번 더 놀라고.
어찌나 못 생겼는지...
그런 사람이 저렇게나 가까이 와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니 안 놀라고 배기겠는가?
"아이쿠~ 미... 미안해요~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만..."
애꿎은 바닥 탓을 하는 그녀였다.
"에잇! 청소를 했어야 하는데."
엘리나는 바닥을 발로 마구 비비더니 험험 헛기침을 하며 접수대에 앉았다.
그리고...
"...험. 험. 저... 얼굴이 너무 가까우니 조금만 뒤로 가줄래요?"
"아. 죄송해요. 흐."
체스는 그제야 자신의 몸을 접수대에서 약간 물렸다.
'휴...'
체스가 상체를 접수대에서 떨어뜨리자 그제야 좀 안심이 되는 엘리나였다.
"딱 좋네요. 그래서 무슨 일로?"
"아... 그 뭐지. 마수 사냥꾼의 등급을 좀 올리고 싶어서 왔어요."
"현재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과 등급을 불러봐요."
엘리나는 마수 사냥꾼 명부를 꺼내며 말했다.
그녀의 손은 상위 등급의 마수 사냥꾼들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펼치고 있었다.
뭐, 당연하지.
체스를 보면 드는 생각은 한결같으니.
이 남자는 당연히 강한 사람이겠구나.
이 남자는 무서운 사람이겠구나.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지.
그것이 체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선입견이었다.
하긴 몸집도 우람한데다가 인상마저 험상궂으니.
아까 성문을 통과할 때도 그랬지 않은가.
엘리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딱 보기에도 저 정도라면 못해도 실버 등급은 가볍게 넘겠지.
아무리 못해도 브론즈?
에이~ 이것도 못 믿겠다.
혹시 모른다.
자신이 모르는 골드 등급의 마수 사냥꾼일수도 있다.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 체스라고 합니다. 엘윈 마을에서 왔구요."
!!!!!!
그녀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