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라이손 성(1)
체스와 헬켓은 성문 앞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라이손 성이다.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의 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요새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커다란 성곽이 보였다.
성곽 위 보루에 꼼꼼히 채워진 병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경계 근무를 서는 중이었다.
어떠한 침입이나 공격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짐작컨대 무슨 사달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여긴 원래 이러냐?
부대끼는 사람이 많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헬캣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남들이 듣기에는 그저 카릉카릉거리는 소리겠지만 체스의 머릿속에는 헬켓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글쎄요. 저도 너무 오랜만이라. 좀 경계가 삼엄하긴 하네요."
혹여나 주위에 들릴까봐 소곤거리는 체스.
이 정도면 거의 1급 경계 수준인데.
체스가 라이손 성을 떠날 때와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었다.
평상시라면 이 정도의 경계태세는 갖추지 않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크기를 자랑하는 성문은 활짝 열린 채였다.
물론 성문 앞에도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병사들이 있었다.
한 명씩 지나가는 사람마다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묻는 것 같았다.
체스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물론 헬캣은 자신이 안고 있는 채였다.
강요에 의해.
슬금슬금-
체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탓일까 본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그로부터 거리를 물렸다.
덩치도 큰 사람 하나가 혼자 중얼거리니 지레 겁을 먹은 탓이었겠지.
그 와중에 아이 하나가 체스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아이의 시선은 어느 새 체스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헬캣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긴 저 바람에 흩날리는 살랑이는 새하얀 털.
게다가 가끔 좌우로 움직이는 꼬리.
저 모습은 아이의 혼을 쏙 뺴놓기에 충분했다.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가는 아이.
순간 그 인기척을 느낀 체스가 홱 뒤돌아 보았다.
"악!"
순간 아이가 비명을 꽥 지르며 발라당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딸꾹-
으아아아아아앙~
이내 울음을 터뜨려버리는 아이.
자다 깨어나도 생각날 듯한 체스의 얼굴을 보고 겁을 먹어버린 탓이었다.
그의 어깨에 놓인 고양이가 너무 예뻐보여 쓰다듬고 싶었을 뿐인데.
아이는 심하게 놀란 탓인지 울음을 쉬이 그치지 않았다.
"아이고~ 제스민. 왜 그러니. 울지 마렴. 뚝. 뚝."
"으아아아아앙~"
괜히 날벼락이라도 떨어질까봐 허둥지둥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달랬다.
울고 있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도 체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였으니.
"죄...죄송합니다."
거듭 고개를 꾸벅 숙여가며 체스에게 사과를 하며 아이를 달래는 아빠였다.
하지만 쉬이 진정이 되지 않는 아이.
잠시 울음을 멈추는가 싶던 아이는 체스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더니 더욱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이것 참..."
자신의 의지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이 졸지에 나쁜 놈이 되어버린 체스였다.
주변에서는 또 어찌나 수군수군거리는지...
들리지라도 않으면 다행이건만.
감이 좋아진 탓인지 그 작은 소리조차 체스의 귀에 너무나도 똑똑히 들렸다.
-거봐라. 저 순수한 아이들이 저 정돈데. 역시 인간이나 환수나 보는 눈은 매한가지라니까. 너 얼굴 때문에 애들이 놀라잖냐. 크흐흐흐흐흐.
웃겨 죽겠다는 듯 헬캣이 마구 웃어제낀다.
못 생긴 게 죄는 아니다만 처음 본 아이가 겁을 먹을 정도라니.
"거참. 어이가 없네. 진짜..."
억지로 행동을 함께 하게 되긴 했지만 말이 참 밉상이다.
따지자니 또 무슨 화로 돌아올 지 상상도 못하겠고.
그렇게 체스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아이에게 쉬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놀라서 우는 아이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헬캣을 안고는 망부석 마냥 굳은 채 뻘쭘하게 서있을 뿐인 씁쓸한 표정의 체스.
손은 무조건반사로 헬캣을 긁고 있었지만 표정은 진짜 똥 씹은 표정에 다름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소란이냐!"
****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다.
줄이 흐트러진 까닭에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지 않은가.
가뜩이나 반복되는 업무에 피곤해 죽겠는데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정신마저 사나워진 병사들이었다.
어수선해진 주변을 정리하며 경비병들이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바로 띄는 자.
저 자다!
한눈에 봐도 체스가 문제인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하긴 누가 봐도 저 자 이외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체스를 본 후 병사들이 취한 행동은 단 하나.
그들은 경계도를 최고로 끌어 올리며 재빨리 자신들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본 주위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하나의 공간을 만들며 휘말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넓혔다.
꿀꺽-
병사 하나가 마른 침을 삼켰다.
마수...인가?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저런 덩치에 저만한 대검이라니.
인간으로 보이긴 하는데 누가 봐도 인정할 정도로 떡하니 수상하다라고 적혀 있는 모습이다.
몸집도 큼지막하고 얼굴은 또 어떤가.
저 험상궂은 모습.
악귀처럼 보이는 저 얼굴이라면 애가 울음을 지릴 만도 하지.
마수들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의 얼굴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저 무기.
날이 잘 벼려진 자기 키 만한 대검을 메고 어울리지도 않는 고양이 한 마리만 안고 있으니.
어쩌면 저렇게 고양이를 안고 있는 것도 아마 컨셉일지도 모른다.
병사들의 창대가 짜증난 것이 역력해 보이는 체스에게 겨누어졌다.
그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체스를 겹겹이 포위했다.
"네 놈은 누구냐! 목적이 무엇이냐! 라이손 성에 도대체 왜 온 것이냐!"
체스의 앞에 서있는 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아니 그전에 인간은 맞는 것이냐!"
뭐 저런 질문이 다 있어?
인간이냐니.
당연히 인간이지.
눈이 어떻게 된 것 아냐?
체스는 질문의 수준에 기가 찼다.
그래도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면 일단은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하니...
"아. 거참. 난 마수 사냥꾼이오. 체스라고 엘윈 마을에서 왔소."
일단은 정체를 밝히는 체스였다.
우우우우우-
"거짓말!"
"거짓말이다!!!"
"마수다 마수야!"
여기저기서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주변의 사람들은 체스가 한 그 말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애가 보자마자 울음까지 터뜨렸는데!
그렇게 진실을 말해도 어이없게도 마수의 취급을 당하는 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