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43화 (43/249)

#43

출발(7)

체스는 죽을 맛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더군다나 우린 처음 만난 사인데 다짜고짜 자신의 몸에 뭔가를 하려하질 않나.

힘 있는 놈이 갑이라더니 딱 그짝이다.

"아픈데...일단 여기 이 발톱을 좀..."

체스가 말을 하건 말건 그의 눈동자에 비친 헬캣의 눈동자는 맑고도 깊은 게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았다.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의 눈 앞에서는 진실만을 말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랄까.

-흠...

헬켓은 체스의 눈을 가만히 보았다.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말을 하는 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약간 따끔할 거다. 그래도 금방 끝날 거니 걱정마라.

마치 의사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푹 찔러넣을 때 하는 말과 같다.

헬캣은 발톱을 살짝 세웠다.

날카로운 발톱이 비쳐지는 빛에 반사되며 번득인다.

집도를 하기 직전의 비장한 표정이 헬켓의 눈가에 서렸다.

하지말라며 외치고 싶었던 체스였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말.

숱하게 마수들과 싸우며 상처를 입었던 체스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가 느꼈던 어느 순간보다도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몸도 마취라도 된 양 얼어붙어 움직여지지도 않으니.

그 사이 헬캣이 몸을 슬쩍 움직였다.

스윽-

발톱으로 체스의 심장 부근을 살짝 손으로 긋는 헬캣.

찰나의 순간이었다.

슬쩍 느껴지는 따끔한 통증에 체스가 살짝 미간을 찌뿌렸다.

순간.

우우웅-

상처는 나지 않았다.

대신 투웅 밀려나는 헬캣의 발톱.

체스의 몸에서 강한 반탄력이 일어난 탓이었다.

헬캣의 눈썹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미묘하게 뒤틀리며 꿈틀거렸다.

-음...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이 기운.

자신이 이걸 빼내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 녀석을 죽여야 한다.

아예 영혼이 이 녀석의 몸에서 빠져나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게만 된다면야.

-어렵네. 어려워. 그렇다고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 죄를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헬켓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헬캣이 고민을 하는 사이.

체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헬캣을 보는 중이었다.

처음 느꼈던 공포감은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데 뭘 저리도 혼자 중얼거리는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헬캣이다.

아까부터 뭐가 있다느니 그걸 빼내야 한다느니...

방금 자신의 심장으로 헬캣의 발톱이 들어올 때 심장이 그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픔도 아픔이거니와 반항조차 할 수 없다는 것에 자괴감마저 들었던 체스였다.

'말로만 듣던 S급은 이런 존재였구나...'

마수도감의 저자는 마지막 장에 분명히 S급의 마수도 비빌 수 있을 존재라고 써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불... 이게 도대체 어딜 봐서 비빌 수 있는 존재란 말이냐? 꿈쩍이기만 해도 바로 죽겠구만.'

그딴 말을 끄적여 놓은 녀석은 분명히 책을 팔기 위해 쓴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런 느낌을 받을리가 없지 않나.

'개...%$##$. 책 하나 팔려고 그딴 거짓말을 쳐?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똥물에나 빠져버려라. 니기미.'

B급 정도의 마수는 참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S급은 정말이지...

강하다는 표현조차도 헬캣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아고스트 따위는 몇 천 마리가 있어도 이 헬캣 하나도 못 이길 것이다.

그것이 헬캣을 직접 만난 체스의 심정이었다.

헬캣은 체스의 심장에서 빼낸 발톱을 혀로 샥샥 핥았다.

발톱을 핥는 녀석의 모습은 세수를 하는 고양이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역시 겉모습만 보면 판단하면 안돼.

암. 그렇고말고.

-야.

"어...어. 어?"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헬캣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체스.

-너. 그 분이랑 무슨 관계냐?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보이는 녀석이 아... 아니지. 됐다.

"네...? 그게 무슨 말...?"

-하긴 네가 뭘 알겠냐. 앓느니 죽지. 됐다 됐어.

뭐야.

말은 지가 다 해놓고 지 맘대로 결론을 지어버리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격도 좀 더러운 것 같은데...

하...

빨리 헬캣인지 나발인지 이 녀석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너무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진심.

"...그럼... 다 끝난 건가요?"

-너. 나랑 좀 같이 다녀야겠다.

"아...네. 네???"

화들짝 놀라는 체스.

뭔 개소리야!!!!!!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같이 다니자니.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순간 이게 미쳤나 싶었다.

하지만 헬캣의 표정을 보니 너무나 진지한 표정이다.

조금 전 실실 웃던 그 표정은 어느 새 온데간데 없고 엄숙, 근엄, 진지의 그런 류의 모든 표정이 다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농담...하는 거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나랑 다녀서 뭘 하겠다고."

-내가 어딜 다니면서 농담할 놈으로 보이냐?

"아... 그건 아닌 것 같긴 한데..."

-말 그대로다. 일단 난 무조건 너와 함께 다닐 것이다.

"아니. 그래서 왜 그런 무모한 아. 아니지. 왜 그런 불필요한 행동을 하려는 것이지...?"

-네가 예뻐서 그런 줄 아느냐? 너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네 녀석이 가진 그 기운 때문이다. 그것은 네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걸 빼려면 알아봐야할 것이 있으니 내가 같이 다니려는 것이다.

핑계는 아닌 것 같은데...

싫은데! 몹시도!!!

굳이 Yes와 No를 따지자면 체스의 대답은 무조건 No였다.

그래서.

'No!!!라고 하고 싶지만...'

마음 속에서는 벌써 100번도 넘게 No를 외쳤다.

하지만 이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면 그 순간 헬캣에 의해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날 것만 같았다.

사람에게는 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간 여러 일로 인해 단련된 체스의 감은 더욱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뭐...그러지... 즐거운 동행이 되었으면 좋겠네."

체스가 체념한 듯한 말투로 말을 했다.

-너 어째 표정이 좀 그렇다?

"에이~ 그럴 리가 없지. 너무나 행복한 걸?"

헬캣의 말에 체스는 억지로라도 얼굴 근육을 실룩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울며 겨자먹기지만 체스는 어쩔 수 없이 헬캣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마음이 얼굴로 그대로 드러난 체스였다.

지금이라도 울 것만 같은 체스.

-마! 우냐?

"...안 울거든?"

-그럼 웃어라.

허참.

체스는 헬캣의 말에 따라 다시 한 번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뜩이나 못난 녀석이 더 못생겨졌군.

미의 기준이 극히 엄격한 헬캣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체스였다.

-그나저나 너 몇 살이냐? 왜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놓고 있는 거냐?

"아니. 그러면 뭐! 어! 존댓말을 쓰나?...요?"

-뭐 너 편한 대로 해라. 굳이 나이 많다고 그런 대접 받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저렇게 얘기할 거면 뭐하러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거야.

도대체!

체스는 그저 지금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황당할 따름이었다.

헬캣을 만나게 된 것부터 동행이 생겨난 것까지.

한 마디로 꼬여버린 여정이라는 말이다.

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오는 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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