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출발(5)
'헉헉... 이번은 진짜 위험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체스.
부지불식 간에 손에 쥔 무기를 내려놓을 뻔했다.
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두 눈에 불을 켜는 체스.
저걸 어디서 봤더라...
어디선가 본 것은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걸로 봐서는 적의는 없는 것 같은데...
아니지. 아니야.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돼.
자신의 감각에 마수라는 인식이 든 이상 방심은 금물이다.
더군다나 저건 분명히 꽤나 높은 등급의 마수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D, E급의 마수들은 다 알고 있는 본인이었으니.
샤아악-
갑자기 입을 벌리며 하악 소리를 내는 그것.
어마어마하게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피력하는 듯한 낮고도 소름이 쫙 돋아나는 소리다.
그 순간 처음 느꼈던 귀엽다는 감정이 싹 사라졌다.
대신 자신을 지배하는 건 공포감.
조그마한 그것의 존재가 몹시도 크게 자신의 눈동자에 각인이 되어왔다.
어느덧 심장이 우심방, 좌심방 가릴 것 없이 펌프질을 마구 시작한다.
쿵쾅쿵쾅 울려대는 심장의 소리는 자신의 고막을 찢어버릴 기세로 격하게 들려왔다.
잔뜩 긴장한 탓인지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고 안압이 마구 상승하는 느낌이다.
저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 한 방울.
이미 속에 입은 옷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듯했다.
꿀꺽-
긴장한 탓인지 갈증을 느낀 탓인지 체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마수다. 확실해. 저건. 마수가 아니고서는 저 위압갑을 설명할 수 없어...더군다나 저 꼬리. 저 꼬리에 불이 붙은 게 시그니처 같은데... 어디에서 봤더라?'
다시 입을 쩍 벌리는 그것.
또다시 하악질을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잘못 짚었다.
'하...하품?'
일순 긴장감이 풀릴 뻔한 체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저런 모습은 완전 얕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은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양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저것.
그런데 다음 행동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만 칼을 휘두르려고 해도 저 조그만 것에게 몸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행동은 점점 가관이 되어간다.
이제는 앞발을 살짝 치켜 들더니 털을 할짝할짝 핱아간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몸을 잔뜩 늘여 기지개를 켠 그것은 발을 한 발자국씩 옮겼다.
향하는 방향은 체스의 정면.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 그것은 적당한 속도로 발을 떼었다.
자박자박-
풀이 밟히는 소리.
천천히.
한 발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
본능은 끊임없이 도망쳐야 한다고 하지만 어느 새 굳어버린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왜...왜 다가오는 거지...?'
아.
체스는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정도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 이상은 꼼짝도 할 수 없는 체스였다.
그렇게 잠시 후 자신의 발 앞에 선 그것.
-하악. 치워라.
도도한 표정의 고양이 같은 것이 새침한 눈을 양껏 크게 뜨더니 눈알을 부라렸다.
그리고 그 앙증맞은 입에서 흘러나온 단 두 마디.
치워라였다.
히이익-
너무나 놀란 나머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버리고 마는 체스.
"뭐...뭐야? 마...말을 하네?"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
어안이 벙벙하다.
입만 쩍 벌린 채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체스.
말하는 마수라니...
태어나서 저렇게 말을 하는 마수는 본 적이 없는 체스였다.
아니 알려진 바도 없다.
아! 생각났다.
불현듯 떠오른 체스의 기억.
마수도감이라는 책이 있다.
마수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필독도서라 일컬어지는 제법 두꺼운 책이다.
조합에 가면 항상 비치되어 있는 그런 책이지.
체스도 라이손 성에서 마수 사냥을 할 당시 대충 훑어본 적이 있는 책이었다.
그 책에는 세상에 존재한다는 모든 마수를 기재해 놓았었다.
생김새며 그 마수에 대한 간략한 설명까지 말이다.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항간에는 저자가 직접 만나본 마수들이 모두 기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책이기도 했다.
그 책의 처음 장을 펼치면 저자의 감상평이 적혀 있다.
체스의 기억 속에는 아마...
<경고>
-마수들은 인간이 하기에 따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당신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였지. 아마?
적어도 자신의 기억 속에서는 대충 그러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첫째 장을 넘기면 둘째 장부터는 E급부터 S급까지의 마수들이 차례대로 기재되어 있었다.
체스가 잡아본 마수들부터 만나본 적이 없는 마수들까지 모두.
그리고 책의 맨 뒷부분.
빨간 종이를 사용한 몇 장 되지 않는 후반부에는 많지 않은 S급의 마수들이 적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적힌 S급의 마수들 중 분명히 자신의 기억에는 헬캣이라는 마수가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녀석.
'그래! 헬캣이다!!!'
체스의 기억이 맞다면 저 마수는 헬캣이 분명하다.
크기는 흠...
책에 적혀있던 헬캣은 덩치가 크다고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책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랑은 많이 다르긴 하네.
체스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것이 헬켓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생김새.
얼굴보다 큰 귀와 꼬리에 맺혀 있는 불.
딱 헬캣의 모양새였다.
그런데 말을 한다는 것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이상하다. 분명히 그 냄새가 나는데...
"무...무슨 냄새...?"
킁킁-
체스가 자신의 몸 여기저기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데...
옷도 이미 갈아 입었고 땀을 흘리기는커녕 오히려 뽀송뽀송하기만 한 몸이거늘.
악취나 그런 냄새가 날 리가 없는데 냄새가 난다니.
"아...아니지. 그게 아니라... 어...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헤...헬캣인가?"
-그래. 내가 바로 너희 인간들이 헬캣이라 부르는 존재이긴 하지.
헬캣은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면 또 긴장이 풀어지고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는 체스다.
체스는 무의식 중에 헬캣을 쓰다듬기 위해 뻗어 나가려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팔을 몇 번이나 막고 또 막았다.
지극히 생존을 위해 안된다며 끝없이 스스로에게 외치며 말이다.
저게 지금은 작은 고양이같은 녀석이지만 헬캣이라는 것을 안 이상은 절대 함부로 나대면 안된다.
괜히 S급의 마수라 기재되어 있는 게 아닐 터이니.
더군다나 저 작은 몸뚱아리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
너무나 위험하다.
자신의 감각이 예민해진 것인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헬캣의 기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자신이었다.
'이... 이 녀석. 위험해. 여러모로...'
-내가 말을 하는 게 신기하냐?
"그...그렇지. 마수가 말을 하는데... 신기하지 않을 리가 없지..."
체스는 어버버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멍청한 놈. 고작 인간의 잣대에서 모든 걸 생각하려 하지 마라.
콧방귀를 뀌는 헬캣.
"...그...그럼...?"
-마수는 너희의 기준에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고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환수다.
"화...환수...?"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