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출발(3)
잠깐.
그런데...
한켠으로는 이상한 것도 있었다.
마수들이 왜?
보통 이렇게까지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인데 습격을 한다.
그리고 인간을 학살한다?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드문 일이었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세계에는 수많은 마수들이 존재했다.
물론 생태며 모든 것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마수에 대한 연구는 늘 활성화된 상태였다.
마정석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그들의 주식은 무엇인지.
심지어 번식은 어떻게 하는지.
하지만 아무리 연구를 해도 속 시원히 밝혀지는 것은 없다.
마수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저 해변가의 모래알 수준.
단지 사람들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이 세계에는 마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위의 아버지가 살 때에도 늘 존재하던 게 마수였으니.
체스가 잠시 딴 생각에 잠겨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꺄아아아아아아악-!!!
마을의 제일 끝자락에 있는 곳에서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던 것인가!'
이미 모두 죽었다 생각했다.
"젠장!"
스겅-
체스가 재빨리 검을 뽑아들고 비명소리가 들린 곳으로 힘껏 달려갔다.
가는 곳마다 시체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이 절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것들이!!!"
****
그들은 충실히 본능을 이행하는 중이었다.
지극히 충실히.
죽여라!
학살하라!
끊임없이 그들의 머리를 떠도는 것은 단 두 마디.
그들은 이미 주어진 본능에 따라 벌써 꽤나 많은 인간들을 학살한 상태이다.
가는 족족 자신들의 시야에 걸리는 인간들은 이미 저승의 문턱에 입을 맞춘 지 오래.
지금 보이는 마수들은 단지 자신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살육에 대한 본능을 이행할 생각 밖에는 없는 듯 보였다.
본래 이들 무리는 어디론가 이동 중인 한 무더기 부대급의 규모였다.
그러던 중 무리에서 이탈하게 된 몇 마리의 마수들이 있었다.
이탈된 마수들이 바로 지금 이들.
그들은 우연히 인간들의 부락과 조우하게 되었고 그 다음은 뭐...
역시나 머릿속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 그들이었다.
그 결과 벌어진 일이 바로 이 꼴이지.
퍽- 퍽- 퍽-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둔탁하게 생긴 손을 여자에게 내리꽂으며 울음소리를 내는 너댓 마리의 마수들.
아까 비명을 지른 사람이 바로 누워있는 저 여자인 듯했다.
땅바닥에 철퍼덕 엎드려있는 여자는 마수가 칠 때마다 움찔움찔거렸지만 필경...
이미 짓이겨진 몸하며 척추 부분의 허연 뼈가 훤히 드러난 게 체스가 도착을 하긴 했지만 이미 늦은 듯 보였다.
체수의 눈이 크게 치켜떠지며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
저 모습.
마수의 생김새는 체스에게 있어 꽤나 익숙한 것들이다.
저 돼지 머리하며 저 손.
분명히 그것이었지.
저것들이라면 악취가 날 법도 하다.
체스도 이미 여러 번 경험을 해본 마수였다.
역시나 자신의 감이 맞았다.
피 냄새에 섞였다고는 해도 저 특유의 냄새는 절대 지워질 수가 없으니.
체스의 기억 속에 저것들은 E급 마수인 피기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E급 마수라도 마수는 마수.
어디까지나 자신은 마수 사냥꾼이기에 이렇게 상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고작 약초나 캐고 농사를 짓는 여기의 주민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말이다.
피기라 불리우는 저 마수들은 손이 둥근 망치처럼 생긴 마수들이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저것들은 저 손이 좀 위협적이다.
특히나 이들의 특징은 그 어떤 마수들보다 식탐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끔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인간들의 마을로 내려왔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수들치고는 매우 온순한 성질의 마수이기도 하고 내려와도 금방 쫓겨나거나 하는데 도대체 왜 여기를 일부러 습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역시나 좀 꺼림칙한 게 있다.
무리로 다니는 마수들인데 왜 저 정도밖에 없지?
보통은 수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마수들인가.
체스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더 둘러 보았다.
"저것들 밖에 없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뭐 일단은 눈앞에 것들을 처리하면서 찾아봐야 하나.
이것들.
사람들 외에 다른 농작물 같은 것들은 손도 대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런 걸로 봐서는 식량을 탈취하기 위해 여기까지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죽어있는 사람들을 봐라.
저 망치 같은 것에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온 몸에는 멍이 들어있고 함몰된 부분도 보였다.
상처부위도 마구 잡아 뜯겨진 게 그냥 눈에 보이는 족족 사람들을 죽인 게 틀림없었다.
"이것들이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털썩-
그 와중에 피기 한 마리가 죽어있는 사람의 시체를 들어서 확인을 하는 듯한 행동을 하더니 땅에 패대기쳤다.
눈도 제대로 감지도 못한 모습의 시체였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 즐거운 울음소리를 내는 피기들.
꾸우을-
꾸으우을-
그렇게 몇 번을 더 놀던 그들은 더 이상 미동도 느껴지지 않자 흥미를 잃어버린 듯 시체를 획 던져버렸다.
그리고 다음 목표를 찾기라도 하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피기들.
그들의 눈은 광기에 얼룩진 붉은 빛에 휩싸여 번들거리고 있었다.
으득-
체스가 이를 꽈드득 깨물었다.
꾸우우-
귀가 쫑긋거린다.
그 소리를 들은 듯 한 마리가 검을 멘 체스를 발견했다.
꾸익꾸익- 꾸이이이익-
자신의 동료들에게 또다른 장난감을 발견한 것을 알리는 듯 기쁨에 찬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에 자연스레 나머지 피기들도 반응을 하고.
그들은 망치 같은 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체스에게로 몸을 돌렸다.
****
체스는 칼을 다시 한번 세게 쥐었다.
더 이상 다른 마을에 피해를 입히게 놔둘 수는 없다.
몇 마리 되지 않는 피기들이지만 일반인들이 막기에는 당연히 벅찰 수 밖에 없는 마수들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피기들을 다 죽여버릴 심산이었다.
당연히.
주제를 알아야지.
하등한 마수들 주제에 감히 인간을 습격해???
스릉-
후웁-
검을 쥔 그가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이내 몸을 날리는 체스.
피기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 먼저 움직인 체스였다.
샤악- 스아악-
빠르다.
피기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다.
허공에 뭔가 빛이 번쩍이더니 그 큰 대검이 스걱 스걱 움직였다.
촤악 피를 뿜어내며 마수들의 몸이 사선으로 갈려나갔다.
그의 검은 거침이 없었다.
마수들의 사정 따위.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줘야 한다.
체스는 살육당한 사람들이 떠오르는 듯 모든 분노를 담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 따위 마수들이야!
슈와아악-
허공을 가르는 그의 검.
순식간에 피기가 잘려 나간다.
팔이 잘려 나가고.
다리가 잘려 나가고.
마지막으로 목이 떨어져 나간다.
후두둑- 후두두둑-
육덕진 피기의 몸이 사지가 분산된 채 철퍼덕 바닥에 떨어진다.
쏟아지는 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체스는 몇 번의 검으로 순식간에 피기들을 갈아버렸다.
간혹 반사신경이 뛰어난 피기가 손을 들어 체스의 검을 막기는 했지만 그게 한계이다.
체스의 검은 자신의 검을 막아내는 피기의 손마저 가법게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
눈가에 두려움이 잔뜩 떠올라 있다.
체스의 기세.
순식간에 자신들의 동료들을 도륙한 그가 너무 무서웠다.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는 피그.
꾸에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난다.
살고 싶어하는 목소리이지만.
이미 늦었다.
푸욱-
체스의 검이 피기의 머리를 그대로 관통해 버렸다.
그렇게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가 되고.
더이상 부락에 있던 피기 중 살아남은 피기는 보이지 않았다.
검에 묻은 피를 촤락 털어버리는 체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피기들을 내려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