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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38화 (38/249)

#38

출발(2)

그건 내심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이대로 쭉 아이언 등급이라면 정말 답이 없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등급이 어디까지 나올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건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실력을 쌓았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아직 승급 시험을 한 번도 쳐보지 않은 터라 내심 불안한 감이 없자나 있는 체스였다.

...설마 또 아이언 등급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래도 5년이나 이 일을 했는데.

체스가 저리 생각하는 이유는 마수 사냥꾼 조합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현재 자신의 등급은 아이언 등급.

그렇기에 의뢰인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의뢰는 실질적으로 D급까지의 의뢰였다.

물론 얼마 전 디아고스트를 잡기도 했지만 그것은 혼자 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기록이다.

아마 체스의 공식적인 의뢰 목록을 보면 대부분이 E급일 것이고 간혹 D급 의뢰가 있는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더더욱 등급을 올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으차~ 처음보다는 잘 나오겠지. 제발 브론즈 등급 이상은 받았으면 좋겠는데... 혹시 또 모르지. 실버 이상이 나올지도. 으흐흐흐."

누가 들으면 꿈도 참 야무지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아이언 등급이 처음 승급시험을 치르며 실버 등급 이상을 노린다니.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례가 없긴 했다.

"얼레? 벌써 다 먹었네."

어느 새 자신이 물고 뜯던 육포는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배가 상당히 고팠나보다.

하긴 아침에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도망치듯 나왔으니.

그래도 또 이렇게 간단하게 식사를 끝냈다.

체스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주변을 대충 훑어 보았다.

여기가 정확히 어디쯤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대충 계산을 해보니 남은 거리는 대략 나흘 정도의 거리인 듯했다.

"그럼 다시 가볼까 어디."

다시 몸을 일으킨 체스는 옷을 툭툭 털더니 이내 자신이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랄랄라~

괜히 기분이 업이 되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체스.

뚝-

체스가 걸음을 갑자기 멈춰섰다.

무언가 이상한 걸 감지한 듯한 눈치다.

"억."

걸음을 멈춰선 체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코를 재빨리 막았다.

싱그러운 숲내음에 불청객 마냥 끼어든 악취가 그의 코 끝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악취라고 하긴 또 애매하고...

여하튼 그 끔찍한 냄새는 바람을 타고 계속해서 체스의 코로 흘러 들어왔다.

그 냄새는 아주 익숙한 냄새였다.

피 냄새도 약간 섞인 듯한 게 전투의 느낌이었다.

"이게 다 무슨 냄새래?"

체스가 코에서 슬금 손을 떼자 다시 훅 들어오는 악취.

"...마수가 근처에 있는 건가."

귀를 쫑긋 기울여 보니 병장기 같은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체스는 무슨 일인지 파악을 하기 위해 얼른 걸음을 옮겼다.

****

하지만 가까운 줄 알았던 거리는 꽤나 멀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가까운 거리인 것 같았는데..."

그렇게 10여 분을 더 걸었을까.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체스의 코를 점점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5분 정도를 더 걸어가자...

그제야 냄새의 근원지가 두 눈에 들어왔다.

지독한 냄새가 풍겨나오는 곳은 조그만 마을.

그 곳은 산중턱에 위치한 그냥 몇 채의 집이 얼기설기 몇몇 가족들이 모여 사는 듯한 그런 마을이었다.

저 정도면 오히려 마을이라고 말을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대여섯 채 정도 밖에 안 되는 그런 조그마한 부락 말이다.

일이 터진 곳은 분명히 저 곳이 맞았다.

체스가 얼른 달려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사~~살려줘!!! 제...발!!!"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며 달려오는 그 사람은 어떤 중년의 남자였다.

복장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농민처럼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에요???!!!"

체스는 재빨리 자신에게 달려오는 남자를 붙잡았다.

그 남자는 무언가에 심한 공격을 당한 듯 가슴팍 한 쪽이 반쯤 뭉개져 있었다.

"사...살려줘! 마... 마수가..."

"마수??????"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며 재채 남자에게 체스가 질문을 하려는 찰나.

남자가 갑자기 피를 울컥 토해내었다.

컥- 커억- 크흐업-

"내... 내... 가족들이... 제발... 마...수..."

툭-

손이 땅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체스에게 안겨있던 그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갔다.

고개마저도.

죽은 것이었다.

"정신 차리세요!!! 아..."

재빨리 남자의 목에 손을 가져다대 숨을 확인하는 체스.

짧은 한 마디의 말만 한 남자는 어느 새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이씨... 젠장!"

체스는 남자의 시체를 길가에 눕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조그만 부락 같은 마을로 재빨리 뛰어갔다.

****

다다다다-

거의 질주하다시피 달려가는 체스다.

남자의 마지막 말도 그의 뇌 주변을 맴돌았지만 풍겨오는 냄새로 봐서도 이것은 분명히 마수의 냄새였다.

"이런 씨..."

마을에 들어서자 시체가 몇 구 널부러져 있다.

모두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6,70대 정도로 보이는 노인들 말이다.

그들은 산에서 약초 채집 같은 걸 하면서 살아가던 사람들로 보였다.

변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주변에는 약초 망태기가 떨어져 있고 채집했던 약초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하. 정말 습격인 것인가."

체스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발앞에 놓여진 시체를 살펴 보았다.

확실히 죽은 지는 얼마 안 된 듯 보인다.

대략 70대 정도의 약초꾼으로 보이는 나이 든 사내였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가득 질린 듯한 얼굴이었다.

그 남자는 도망가다가 그대로 당한 듯 등 부분이 무언가 둔탁한 것에 맞아 아예 으스러진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 있었다.

아마도 그게 사망 원인이 된 듯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려 했는지 그가 신었던 신발 중 한 짝은 뒤편에 벗겨진 채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었다.

이 정도면 더 확인하지 않아도 뻔하다.

마수가 쳐들어 온 것이다.

게다가 이런 무기라니...

마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저렇게 둔탁한 무기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게다가 상처 부위의 주변.

쓰러진 시체 하나를 슬쩍 들여다보니 매우 거친 흔적이 마구 남아있다.

마구 뜯겨나가 너덜너덜한 살점이 딱 봐도 마수의 짓이라는 것을 명명백백히 보여준다.

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마수들이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와서 이렇게 학살을 하다니.

심지어 시체 중에는 여자나 어린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조금만 먼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자신이 막았을 수도 있었을 것을.

쾅-! 쾅-!

"제기랄!!!"

체스는 땅을 주먹으로 마구 두드리며 분함을 마구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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