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36화 (36/249)

#36

돌아온 체스(5)

그럼 다음은 보자...

빚이네.

1억G?

그딴 빚 그렇게 생각하면 금방이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누워서 생각을 해보니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과 문제점 등을 하나로 정리할 수 있었다.

뭐 그렇게 따지면 현실을 직시하게 해줬으니 그 자식들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체스는 어떻게든 부딪힐 생각이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마냥 좌절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도 아니니.

어떻게든 비비면 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장점이 바로 이 긍정적인 생각 아니었나.

"좋아. 일단 큰 곳으로 가야겠다."

큰 곳이라면.

자신이 잘 아는 곳이 한 군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일은...

그건 이미 말하지 않아도 정해져 있다.

빚을 깐 후에는 무조건 복수다.

그 녀석들만 생각하면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 나왔다.

"다음은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 않을 거다. 이런 개 같은 녀석들..."

단지 생각해야 할 건 얼마나 더 고통을 주며 복수할 것인가?

방법의 문제다.

자신이 복수를 성공할 지 실패할 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겪었던 그 고통과 좌절을 그대로 겪게 해주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4명 모두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

더도 덜도 말고 말이다.

그들을 생각하니 자신의 온몸이 살기로 가득 차오른다.

팔을 힐끗 내려다 보니 어느 새 닭살이 소복히 돋아 있었다.

등을 뚫고 칼날이 자신의 배를 뚫고 나왔을 때의 그 감각이란...

으...

다시 체스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건 정말이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다칠지언정 말이다.

"후..."

체스는 벌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크게 심호흡을 했다.

몇 번 반복을 하자 그제서야 좀 진정이 되는 듯했다.

자. 다시.

그럼 언제 떠나야 하는 것인가?

체스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일? 모레? 일주일 뒤?

아니다.

굳이 오래 끌 것이 아니다.

생각이 정리됐으면 바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늘 최악의 생황을 가정한 채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체스는 내일 아침 바로 떠나기로 했다.

아마 내일부터는 바빠질 것이다.

갈 곳도 정해야 하고 이동도 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정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 그나저나 아침에 디어가 온댔는데...도대체 왜 오는 거야?"

역시 디어의 생각대로 체스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이래서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그 우물에 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은 차고도 넘쳐났다.

하지만 생각 만으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있는 게 없다.

체스는 일단 내일부터 시작될 여정을 위해 눈을 살며시 감았다.

****

쾅쾅-!

"체스~~~"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체스의 집 앞에서 울려 퍼졌다.

그의 집을 두드리는 것은 디어.

어제 말했던 그대로 그녀는 이른 꼭두새벽부터 이곳에 와있었다.

더군다나 꽤나 파이팅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듯한 그녀였다.

"...아직 자고 있나? 대답이 없네. 하긴 피곤하기도 하겠지. 그럼 당당하게 들어가야지. 들어간다~~~~"

삐걱-

디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일순 미간을 찡그리는 그녀.

"으휴~ 청소도 좀 하고 그러지~ 이 냄새 좀 봐~"

그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방을 성큼성큼 걸어간 그녀는 우선 커튼부터 열어젖혔다.

촤악-

그녀의 손을 따라 커튼이 걷혀지고 따스한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거 봐~ 얼마나 좋아? 이제 좀 일어나!"

그녀는 체스의 침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확-

이불을 걷어젖히는 그녀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이른 아침 잠자리에 누워있는 남자의 변신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당찬 손길이었다.

".........뭐야?"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단지 잘 정리되어 있는 침구.

그녀가 걷어젖힌 이불 밑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체스의 몸뚱아리 말이다.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집을 두리번거리는 그녀.

조바심이 난 발걸음으로 얼른 구석구석을 찾아봤건만 집 전체에 체스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분명히 어제는 집에 돌아왔을 터인데.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간 거야?"

해장이라도 시킬 겸 뭐라도 해주려고 왔더니 정작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기껏 기합을 단단히 넣고 왔더니...

그러고 보니 체스의 옷이며 간단한 짐들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황급히 밖을 나가려던 디어의 눈에 테이블에 놓인 편지 하나가 보였다.

<누가 볼 지는 모르겠지만 잘 다녀올게요~>

부들부들-

디어의 편지를 든 손이 부르르 떨리고 미간이 찌푸러졌다.

간단한 문장 하나가 달랑 적힌 편지.

분명히 체스의 글씨였다.

너무나 당황스러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말도 안 하고 간 거야? 하여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체스가 떠난 집 안에서는 화가 잔뜩 난 디어가 발을 쾅쾅 구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

"저 집은 아침부터 뭘 하나봐? 왜 저리 시끄럽대?"

길을 지나가던 안나가 갑자기 멈춰섰다.

그녀는 토마스와 함께 가게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이 마을에서 제일 조용한 집을 뽑으라면 단연 체스의 집이었다.

체스가 혼자가 된 이후 시끄러울 일이 없던 체스의 집에서 희안하게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자 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응? 왜 그래? 여보."

"아~ 저 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별일인네 싶어서~"

"저긴 체스네 집인데? 아~ 그거네~그거~"

잠시 체스의 집을 바라보며 귀를 쫑긋 세웠던 토마스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뭔데? 여보."

"아~ 그거 있잖아~"

토마스가 안나의 귀를 잠시 빌리더니 뭔가 쑥덕쑥덕 이야기했다.

"아이~ 이이도 참~"

안나가 화끈거리는 볼을 감쌌다.

퍽-

그리고는 그녀는 볼에 홍조를 띈 채 토마스를 주먹으로 툭 밀었다.

으악-

우당탕탕-

토마스는 부지불신간에 훅 들어온 손짓에 어어 하는 사이 그대로 옆에 쌓여진 박스에 처박혔다.

안나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머~ 여보. 괜찮아?"

나름 애교를 부린다고 살살 건드린 정도였는데 토마스가 저렇게까지 튕겨날 줄은 몰랐던 안나다.

하긴 토마스는 그녀의 몸집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니.

"...죽일 셈이야?! 이 여편네야! 아이고오... 허리야..."

"...미...미안해. 부끄러워서 그만..."

그녀는 박스 사이에 엎어져 있는 토마스를 일으키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자신의 허리를 부여잡은 채 토마스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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