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35화 (35/249)

#35

돌아온 체스(4)

'하아. 저 녀석 저거...'

체스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은 디어였다.

어찌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기까지 했으니...

생각을 해보라.

사냥갈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보던 녀석이었다.

더군다나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던 둘 아닌가.

등도 같이 밀 수도 있는 그런 사이라고 하기에는 남녀라 그건 일단 보류하고.

그건 아마도 결혼을 하면...?

일순 디어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여하튼.

그리고 오늘 뜬금없이 장례식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묘지에 체스가 떡하니 나타났다.

피가 잔뜩 묻은 옷을 입고 씻지도 않은 덥수룩한 모습으로 말이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자신도 당연히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게 진짜인 것을 깨닫고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차마 표현을 못 했던 디아였다.

언제부턴가 체스의 듬직한 모습이 자신의 눈에 자꾸만 밟히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계기는...

그의 엄마가 돌아가시고 하늘이 무너지듯 우는 체스의 모습을 본 이후가 아니었을까싶다.

하지만 저 둔한 녀석은 당연히 모르겠지.

자신이 만약 말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모를 것이다.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그래도 지금 그가 살아서 마을에 돌아와 있는 것이 너무나 다행인 디어였다.

자신의 그 마음을 체스의 볼을 잡아당긴 것으로 대신 표현하긴 했지만.

****

디어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고 연신 흥겨운 소리가 술집에서 흘러 나온다.

"으하하하!"

"야! 마셔! 마셔!"

"공짠데 오늘 그냥 먹고 죽자고!"

새로 추가된 술에 다시 술파티가 시작되었다.

체스도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적어도 기분은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의 분위기에 편승 정도는 해줄 생각이었다.

지금 이 자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환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으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술을 꽤나 마셨건만 오늘따라 취기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듯했다.

'...가야겠다.'

술자리는 아직 계속되는 중이었지만 체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어디 가게?"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체스에게 물었다.

모두 꽤나 술을 마신 듯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다.

"전 먼저 일어날게요. 노시다가들 들어가세요~"

체스가 일어나자 주위에서 야유가 쏟아진다.

그리고 체스를 막 붙잡는 사람들.

명색이 주인공인데 자리를 비워버리면 더 이상 핑계거리가 사라져 버리니.

"야야~"

"야~ 주인공이 어디 가냐?"

"더 놀다 가자~ 체스~"

하지만 체스는 더 이상 자리에 앉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방에 들러 인사를 한 뒤 술집을 나섰다.

"체스! 내일 아침에 집으로 갈 거니까 집에 있어!"

등 뒤로 들려오는 디어의 목소리.

휘유~~

아니 저것은!!!

디어의 소리를 들은 술집의 모든 손님들이 야유 반 환성 반을 보냈다.

"드디어 장가가는 거냐? 체스~"

"아침에 간댄다~ 목욕재개하고 자라~ 으헤헤헤."

"키야~ 이렇게 또 하나를 보내는구만!"

뒤에서 갖은 소리가 다 들렸지만 체스는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체스~ 우리 아침까지 마신 거다~"

그의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

저건 분명히 토마스의 목소리다.

체스는 피식 웃으며 알았다는 듯 손만 흔든 채 술집을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

체스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코앞이긴 하지만 사냥을 간 후 며칠 만에 돌아온 집이었다.

그래도 고작 며칠인데 이 조그만 집이 이렇게나 반갑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침대로 걸어가며 옷을 벗어제끼는 체스.

"응?"

문득 드는 위화감.

어째 예전에 느껴지던 시선의 위치가 바뀐 것 같다.

"...천장이 어째 좀 낮아진 것 같은데?"

키가 원래 큰 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천장이 이렇게까지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이상하네. 키가 좀 큰 건가? 아직도 자라나..."

별로 큰 집은 아니었기에 천장이 높다는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천장이 유난히 낮게 느껴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체스는 괜시리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움직였다.

애써 억지로 키를 줄이는 것처럼.

체스는 자신의 침대에 털썩 몸을 뉘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의 침대는 포근했다.

그는 방을 한 번 슥 훑어본 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술을 꽤나 많이 마신 듯했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깔끔한 게 술을 단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느낌이었다.

"몸이 일단 확실히... 이상하네..."

체스는 누운 채 고개만 까딱 들어 자신의 몸을 요리조리 살펴 보았다.

외향적으로 바뀐 건 딱히 없었다.

굳이 콕 찝어보자면 뭔가 탄탄해진 듯한 정도?

아! 하나가 더 있다.

체력의 소모량이 달랐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사라지는 체력의 양이 달랐다.

그리고 회복도 가히 2배 정도는 빨라진 듯했다.

"거참. 왜 그런 지 알 수 없으니..."

아무리 기억을 돌려봐도 나아질 만한 이유가 없다.

그의 머릿속은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그런 의문들.

하긴 죽었다 살아난 걸 오히려 감사해야 하나?

체스는 하던 생각을 멈추고 다음에 해야할 일을 생각했다.

우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한번 되새겨 보자.

빚.

남은 건 1억 G.

갚지도 않았으니 시작도 안 한 완전 파릇파릇한 1억 G이다.

내가 아무리 이 마을에서는 나름 실력 있는 마수 사냥꾼이라고 해도 결국 이 마을 안에서나 통하지.

대륙 전체로 봤을 때에는 모래알 만큼 많고 많은 마수 사냥꾼들 중 그만둬도 모를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 따위이니 말이다.

결국 이 빚을 갚으려면 더 보수가 좋은 의뢰를 받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의뢰를 받으려면 당연히 등급도 올라야 하지.

째째하게 이 곳에서 백날 뼈빠지게 돌아다녀봤자 승부를 볼 수 없다.

아마 허리가 굽을 때까지 벌어도 평생 못 갚으리라.

그리고 이미 B급 마정석을 눈으로 직접 본 체스가 아닌가.

그 때깔 좋고 영롱하게 빛나던 마정석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했다.

그런 것들만 있다면.

직접 가격을 매겨본 적은 없지만 그런 걸 손에 넣는다면 빚은 정말 금방 까겠지.

으흐흐흐.

행복한 상상을 하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좀 있다.

아이언 등급을 딴 이래 5년째 줄곧 아이언 등급인 자신이다.

디아고스트를 상대해 보면서 느낀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실력이 현 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등급이 나올 지 모르겠다.

상대해 보면서 느꼈지 않은가.

그런 상위의 마수를 잡으려면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실력을 더 쌓아야 한다...

적어도 디오스 정도는 되어야 어디 비비기라도 할 게 아닌가.

으득-

체스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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