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34화 (34/249)

#34

돌아온 체스(3)

술잔을 탁 내려놓는 토마스.

"도대체 같은 얘기를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야?"

"그래도요. 안 잊어버리려고 그래요."

체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들어보니 참 그 자식들 가관도 아니더만.

이 녀석만 보면 얼마나 안쓰러운데 그런 불쌍한 놈에게 사기를 쳐?

천하에 똥물을 뒤집어 씌워서 튀겨버려도 부족할 정도로 썩을 놈들이다.

그래도...

이미 몇 번이나 한 이야기다.

이 놈에 자식에게 도대체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적당히 하라며 체스에게 핀잔을 줬지만 체스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얼른 말해달라며 토마스를 계속 채근했다.

토마스는 입이 뻐근해져 오는 듯 지극히 귀찮아하는 표정이었지만 다시 한번 체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은 순전히 체스 덕분에 마누라에게서도 외출을 허락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유는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

여러모로 체스가 고마운 토마스였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뭐 그런 것 말이다.

여하튼 귀찮음을 감수하고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주는 체스.

"그래서 그 일행들이 무언가를 잔뜩 짊어지고 왔더라고. 그 너와 같이 갔던 녀석들 있잖아. 아마 그 마수를 잡고 거둔 전리품이겠지. 여기서 정리를 하는 건 못 봤으니까 말이야."

술집은 토마스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일순 조용해졌다.

모두 귀를 쫑긋거린 채 시선은 온통 토마스의 입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또 이야기해준다고 저렇게 다들 듣고 있다 참...

헨리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거렸다.

그 와중에 토마스가 갑자기 술잔을 들었다.

꿀꺽꿀꺽-

목이 타는 듯 갑자기 술을 들이키는 토마스.

"저봐저봐. 또 저러네!"

"아니 그 얘기 또 하는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이고 그래!"

관중들로부터 원성이 마구마구 쏟아진다.

"아니이~ 목이 말라서 그래. 괜히 열받잖아~ 자자. 아니 그래서 이 자식들이 짐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온 거야. 그런데 네 모습은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었지. 넌 어디 갔냐고. 걱정되잖아! 그렇게 물었더니 그 녀석들이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알아?"

이미 들었던 이야기지만 다시 관중들이 호응을 한다.

"몰라."

"뭐라는데?"

좋아.

이런 반응이 있어야 이야기꾼들이 즐겁지.

"아니 글쎄 대뜸 하는 말이 넌 죽었다대? 와~ 같이 갔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실실 웃으며 하는지 원. 더군다나 시체도 없어. 들고 올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이지. 그런 얘기를 듣고 사람이 충격을 안 받을 수가 있겠냐?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죽었다는데. 거기에서 내가 그 녀석의 멱살을 딱 잡으려고 했지!!!"

테이블을 탕! 치며 토마스가 강한 어조로 말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또 멈췄다.

그 다음은?

빨리 빨리!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내 행동을 알아차린 것 같더라고. 내가 멱살을 잡지도 않았는데 손을 가만히 보존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대? 그 녀석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내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쫘아아아아악 흐르더라고. 순간 돌아가신 부모님이 막 떠오르고 막 그런 거 있지? 마누라도 생각이 나고..."

자신 만의 흥에 취한 채 토마스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관객들은 거기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체스는 토마스의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점점 기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이런 개같은 것들...'

생각하면 할수록 체스는 술이 점점 깨는 느낌이었다.

되레 계속 이어지는 토마스의 이야기에 오히려 주변인들의 얼굴이 분한 마음이 가득 차는 듯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며 그 부분에서 아무 말도 못한 자신들의 울분을 마음껏 드러내는 중이었다.

멱살을 잡았다는 녀석.

그 와중에도 실실 웃고 있었다는 그 녀석.

분명히 그 녀석이다.

디오스란 자식.

자신을 엿먹인 무리에서도 대장격인 녀석.

그 녀석만큼은...

으득-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절로 이를 꽉 깨물게 되었다.

자연스레 꽉 쥐어지는 주먹.

"야! 야! 그 숟가락..."

체스의 옆에 있던 와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크의 소리에 체스가 손을 내려다 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스가 쥐고 있던 숟가락이 정확하게 반으로 휘어져 있었다.

"아..."

그 녀석을 생각하니 너무 흥분했던 것 같다.

씁씁- 후후-

체스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더니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접힌 숟가락을 다시 펴는 체스.

에에에에엑-???

"...너 힘이 더 세진 거 아냐? 원래 세기는 했지만..."

"아... 아니에요... 여하튼 그 뒤는요?"

잠시 이야기를 멈췄던 토마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차차. 그렇지. 여하튼 그래서 그 길로 짐을 들고 가더라고. 네 시체는 들고 올 수 없었다고 하면서 장례비용으로 쓰라고 100 G를 주고는 그냥 사라졌어.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딱 오늘. 네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이지."

"...혹시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흠... 글쎄... 거기까지는 물어볼 생각을 못 했어. 워낙 충격을 받기도 했었고 더 물어봤다가 괜히 안 좋은 일을 당할 것 같아서 말이야."

토마스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관객들은 저마다 분한 지 테이블을 탕탕 치며 자신 만의 표현법으로 체스의 감정을 대변하는 중이었다.

주위의 시끄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체스는 잔뜩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그는 지금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알 방법이 없다.

단지 아는 것은 그들의 용모와 이름 뿐이다.

'결국 알아낸 건 하나도 없네. 제자리인가... 내가 직접 알아볼 수 밖에 없겠네.'

****

체스가 한창 생각에 빠진 사이.

쿵-

디어가 낑낑대며 들고 온 술통을 테이블에 힘겹게 내려놓았다.

이게 뭐냐며 모두는 디어 쪽을 쳐다 보았다.

"체스가 살아 돌아온 기념으로 아빠가 한턱 쏘시는 거래요~ 으이구~"

와아아아아-!!!

공짜는 뭐라도 좋은 법.

일순 테이블에서 함성이 터졌다.

모두의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체스만 여전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어두운 표정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던 그의 시간이 갑자기 깨졌다.

그를 방해한 건 얼마나 울었는지는 몰라도 눈이 퉁퉁 부어있는 디어였다.

"아아아아!!!"

체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가 체스의 볼을 힘껏 잡아 당긴 까닭이었다.

볼이 잡힌 채 딸려가던 체스는 자신의 볼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홱 쳐냈다.

잡아당겨진 볼 부분이 얼얼한 게 보통 힘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화가 났을 때 나타나는 그녀의 행동이다.

"아파! 갑자기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으이구~ 뭘 잘했다고 이게. 이 칠칠맞은 것아! 또또 그러고 다녀라 응?"

"아니! 넌 왜 너네 가게에 안 있고 여기에 있는 건데???!"

"알 바냐? 신경끄시지~"

체스의 말을 깡그리 그녀는 한 마디 툭 내뱉고는 이내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다.

말은 그렇게 체스를 책망하는 듯 던졌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약간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물론 그 눈물은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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