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31화 (31/249)

#31

디아고스트(10)

흠...

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한 그의 표정.

후...

한숨을 푹 쉰 그는 이내 결심이 선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작은 구슬 하나.

"나 혼날 것 같은데... 아니 혼나겠지...?"

그가 꺼낸 것은 자신의 기운이 응축된 구슬이었다.

이 구슬은 자신이 이렇게 가볍게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를 한 단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물건이었다.

또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 정도 되는 이들만 알고 있는 구슬의 숨겨진 효능.

이것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경우와 같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효능도 있었다.

'이제야 겨우 완성을 시켰는데...'

그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무지개의 끝에 있음직한 허공에 둥실 떠 있는 문을 바라보았다.

일반인들이라면 볼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곳이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절대 갈 수가 없다.

저 문은 단지 자신을 비롯한 자신의 아이들만 볼 수 있는 문이니까.

다시 시선을 내려 구슬을 바라보는 그의 떨리는 눈빛.

막상 주려니 다시 시작된 내적 갈등이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

일부러 여기까지 내려와 고생에 고생을 해가며 만들었는데 막상 쓸려니 뭔가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것보다 자신에게 화를 낼 누군가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랐다.

만약 다른 방향으로 갔었더라면?

만약 걸어가지 않고 평범하게 갔었더라면?

이것을 쓸 일도 없었겠지.

"후..."

하지만 자신의 성정상 이렇게 미련만 남긴 채 머물러 있는 이를 내버려 두는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었다.

"내가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지... 독이 될지 복이 될지는 네 녀석의 운명이지."

그는 마음을 굳힌 듯 시체의 입 부근에 구슬을 가져갔다.

그의 손이 가까워지자 저절로 벌려지는 시체의 입.

구슬은 그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순간.

슈와아아아-

눈부신 빛이 쫘악 터져 나왔다.

그 빛은 그 시체에서부터 퍼져 나와 온 숲을 신비로운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일순 시체가 살짝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시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가슴팍에 뚫린 상처가 저절로 아문다.

멈춰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푸르딩딩하던 온 몸에 혈색이 돈다.

혈색이라는 단 1도 없던 창백했던 얼굴에는 조금씩 핏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제 삶을 찾았다.

"내 것이지만 성능 하나는 참 기가 막히단 말이야. 영 아깝긴 하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새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은 제 역할을 다한 듯 점점 사그라드는 중이었다.

"이런 연(?)은 예상치도 못했지만 이미 너와 나의 연(?)이 만들어졌으니."

끙차-

그는 보던 것을 멈추고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자신이 가던 길을 추적추적 걸어갔다.

그렇게 그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마냥 사라졌다.

마치 신기루마냥.

****

바람이 사그라들었다.

어느 새 주변의 소리는 잠잠해져 있었다.

다가오는 것은 고작해야 산짐승 정도?

가끔 시체 곁으로 다가온 산짐승들은 썩은 시체라도 뜯어 먹을 양 킁킁거렸다.

하지만 그 시체에서 느껴지는 건 삶의 생기.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산짐승들은 자신이 먹을 것이 아니라는 인지하자마자 몸을 홱 돌려 떠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시간의 흐름이 반복되었다.

갑자기 체스가 눈을 번쩍 떴다.

"헉!!!"

****

마수를 잡고 칼에 찔리게 되었을 때 그때는 낮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낮이었다.

"컵! 크어어억!"

갑자기 배꼽 밑에서부터 기침이 마구 터져 나왔다.

"흐어어..."

지금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체스는 한동안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기침을 해댔다.

어느 새 그의 온 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두 눈을 깜빡이는 체스.

파란 하늘이 체스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트니 자신이 마지막으로 있던 바로 그 장소다.

체스는 가만히 누운 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통 헝클어진 느낌이었다.

"내가 왜...? 살아...있어? ...내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끄응-

체스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장소가 바뀐 건 없는데...'

억-

가슴팍에 욱신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분명히 칼이 자신의 가슴을 관통했었는데...

분명히 자신의 두 눈으로 모든 것을 봤었는데...

꿈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자신이 지금 살아있는지 의문 투성이였다.

체스는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풀어헤쳤다.

그리고는 헛것을 본 것마냥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거? 어째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누가 무슨 장난을 친 거야..."

칼에 찔렸던 상처는 아주 미세한 흔적만 남아있었다.

정확하게 심장이 있던 자리에.

단지 옷에 묻은 피로 자신이 칼에 찔린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벌떡-

체스는 얼른 일어섰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약간의 통증을 제외하고 다른 곳은 오히려 힘이 펄펄 난다.

"응? 이럴 수가 있나?"

몸을 마구 더듬어 봐도 분명히 달라진 곳은 없는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뀐 곳이 있기는 있는 듯하다.

자신의 매끈한 근육이 더욱 매끈해진 듯했다.

"피부가 훨씬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잠을 푹 자서 그런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던 체스는 몸이 개운해진 것만 빼고는 달라진 점을 찾지 못했다.

누가 가르쳐 주는 이가 좀 있으면 좋으련만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단 1도 없다.

"하아..."

머리를 마구 헝클이는 체스.

문득 자신을 이렇게 엿먹인 디오스 일행이 생각이 났다.

"으득... 감히 날 엿먹였겠다? 계약금도 사기를 치고. 이것들이."

그 녀석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상처 부위가 다시 아려왔다.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은 별 게 아니었지만 화가 마구 치밀어 올랐다.

그저 자신은 빚을 갚았을 뿐인데.

거기에 더한 빚이 생겨서 그걸 갚을 생각 뿐이었는데.

살아 생전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한 적도 없는 자신이건만 이런 꼴을 당하다니.

물론 체스 자신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저 눈앞의 돈에 현혹되어 눈이 멀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분수에 넘치는 걸 받으려 했으니.

하지만...

체스는 자신을 배신한 자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체스의 눈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복수의 의지.

하나를 받았으니 둘로 갚아줘야 제맛이다.

이런 일은 특히나 이자까지 쳐서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강해지겠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그나저나 우선은 뭘 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마냥 이런 산 속에 있을 수는 없는 일.

"제길. 이제 뭘 해야 하지?"

체스는 신경질이 난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내려가야겠다. 분명히 날 걱정하고 있겠지."

짐을 챙긴 체스.

막상 살펴보니 챙길 것도 없었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고생을 했건만 자신에게 남은 것은 이가 빠진 대검 한 자루.

나머지는 모두 그들이 챙겨간 듯했다.

하긴 계약금도 사기를 친 것들이니 뭘 남겨둘 리가 없지.

체스는 이가 다 빠진 검만 챙겨들고는 엘윈 마을을 향해 터벅터벅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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