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30화 (30/249)

#30

디아고스트(9)

하하하하하-

그들의 웃음소리가 숲을 울린다.

미칠 것 같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그런 류의 웃음소리이다.

그러나 체스에게 그들의 웃음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숨을 쉬면 쉴수록 폐가 불이 타는 듯한 느낌에 말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에서부터도 피가 역류하는 듯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나온다.

하지만 디오스가 자신에게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여기에서 칼을 맞고 쓰러져야 하는지 그리고 이들이 왜 이러는지...

"고작 짐꾼으로 너 같은 애들을 데리고 오진 않잖아. 그렇지? 후후."

디오스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체스의 눈동자는 이제야 뭔가 알았다는 듯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분함 때문인지 아니면 억울함 때문인지 모를 표정이 그의 얼굴 가득 차올라 있었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 어차피 소모품이었을 뿐이야. 후후. 네 덩치를 보고 버티기는 잘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기도 했고 말이지."

"...이런...썩을...커헉..."

체스는 또 한 번 피를 울컥 토했다.

"아~ 그리고 계약금 그거 있지? 내가 장난친 거야~ 생각보다 너무 순진해서 귀여웠어. 키힛."

디오스는 순진한 얼굴을 한 채 엄청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나머지 일행들도 바닥에 널부러진 체스를 보며 잔뜩 비웃고 있었다.

"...이런 개..."

"그만 쉬라고~"

자신이 꽂아넣었던 칼을 닦아내며 디오스가 작별인사를 했다.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발이라도 잡으려 팔을 힘껏 뻗었지만 온몸이 물 먹은 솜 마냥 축 늘어질 뿐이다.

그리고는 점점 힘이 빠져 나가는 자신의 몸.

체스는 자신을 비웃는 그들을 하나씩 눈에 새겨넣었다.

하지만...

'졸ㄹ...'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며 눈이 감겨왔다.

'왜 이러... 이...일어나야...'

하지만 그저 무의미한 움직임이다.

그들의 모습은 안개처럼 뿌얘지는가 싶더니 그저 희뿌연 덩어리로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체스의 눈은 이내 어둠으로 가득 차올랐다.

유난히도 싸늘하게 느껴지는 바람만 숲을 가득 채워가고 그에 따라 체스의 시체는 점점 싸늘해져만 갔다.

****

그러거나 말거나 디오스 일행은 이제 더 이상 이 곳에 볼일은 없었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서로 간에 자랑만 잔뜩 늘어놓은 채 시시덕덕거리며 산을 떠나갔다.

어느 덧 해는 저 산 너머로 넘어갔는지 달과 별이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자신들만이 가진 빛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산 속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들려오는 벌레와 새의 울음소리만이 이 곳에는 더 이상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단지 남아 있는 것은 디아고스트의 쓰잘데기 없는 잔해와 체스의 시체.

휘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타고 멀리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발걸음 소리였다.

사박사박-

신비한 푸른 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날렵한 몸매를 가진 남성이다.

어릴 적부터 숱한 여자를 울렸을 법한 정도의 미모를 가진 남자였다.

나이는 한 30대 초반 정도이려나.

그는 주변의 모든 경치를 눈에 새겨가며 천천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좋구나~ 역시 이 곳은~"

가끔 오는 곳이지만 참 자신이 있는 곳과는 아예 다른 곳이다.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지.

이런 것을 볼 때면 신은 참 불공평한 존재인 것 같다.

자신이 있는 곳은 참... 에휴...

그래도 지금의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이어갔다.

****

응...?

갑자기 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이는가 싶더니 코를 양껏 찡그렸다.

뭔가 알싸한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자극한 탓이다.

"윽. 고약한 냄새구만."

그는 코를 틀어막은 채 냄새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 냄새는 지금 그가 서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 같았다.

풍겨나오는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좋았던 기분이 깡그리 날아가버렸다.

"에휴."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은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흐음... 거참..."

그는 쪼그려 앉은 채 디아고스트의 잔해를 보고 있었다.

잔해라해봤자 뭐 쓰잘데기 없는 뼈나 그런 것들이지만.

거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인간의 시체도 하나 보였다.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대충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가끔 돌아다닐 때마다 이런 경우를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꽤나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많은 경험을 한 탓에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감정의 선이 짙은 그에게 있어 이런 일은 언제나 그를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그냥 그 곳에 있지 왜 이 곳에 와서 이런 꼴을 당하느냐. 아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져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손을 천천히 올리는 그.

그는 디아고스트의 잔해에 손을 갖다댔다.

스스슥~

사라라락~

남아있는 디아고스트의 잔해가 바람에 묻어간다.

그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바람이 일렁이고 디아고스트의 흔적도 점점 춤을 추며 바람과 하나가 되어갔다.

그렇게 디아고스트는 세상의 작은 티끌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얼마나 그의 손이 춤을 추었을까.

타악-

그가 손을 내려놓았을 때에는 그 자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듯 디아고스트의 아주 조그마한 흔적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다음에는 이런 위험한 곳에는 오지 말아라."

무심한 표정으로 그는 이미 먼지에 섞여 사라졌을 법한 것에다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휘이이잉-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한 차례 그의 곁을 맴돌며 일렁인 바람은 이내 하늘 높이 모든 것을 만 채 날아올라가 버렸다.

이윽고 발걸음을 돌린 그.

그는 인간의 시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가 그리 아쉬워서 아직 그렇게 머물러 있느냐?"

그저 시체만 남은 곳에다 대고 그가 중얼중얼거린다.

시체 앞에 선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그의 시야에는 시체에 머물러 있는 희끄무레한 영혼 덩어리 같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보통은 인간이 죽으면 5분 정도는 그 몸을 붙들어 매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그 영혼의 덩어리는 정확한 도착지는 알 수 없지만 가야할 곳을 향해 가버린다.

하지만 가끔 세상에 미련이 많은 경우라던가 한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떠나가지를 못했다.

지금의 경우도 그러한 경우였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이것이 연(?)이라는 것인가...?"

끝이 갈라진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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