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9화 (29/249)

#29

디아고스트(8)

디오스의 말에 겔리온이 몸을 끙차 일으키더니 체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정신도 못 차린 상태로 대자로 널부러져 있었다.

툭툭 발로 건드리며 체스를 깨우는 겔리온.

하지만 미동도 않는다.

그럼 뭐.

짜악-

"왁!!!!!!"

헐레벌떡 눈을 뜨며 몸을 일으키는 체스.

그는 거친 숨을 허억허억 몰아쉬었다.

"...마...마수는...?"

체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를 가득 채우는 디아고스트의 시체.

벌써...?

이 자식들 보기보다 더 대단하잖아.

이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가 좀 갔다.

역시 아직은 넘을 수 없는 벽인가...

자신과는 아예 급이 다른 디오스 일행이다.

고작 맞고 뻗어 있는 게 다였던 자신이었는데 이들은 그걸 뛰어넘어 잡아내기까지 했으니.

"그래. 아이언 등급 주제에 A급 마수를 상대해 본 건 어때?"

"시벌. 죽겠네. 다리가 찢어질 뻔했네."

목소리라도 당당해야지.

뭐 자신이 아무 것도 안 한 건 아니니.

도발도 먹히게 해줬고 말이지.

"크흐흐. 고생했다."

겔리온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체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다행히 나머지 일행들은 다친 이가 없었다.

자잘한 부상 정도는 있었지만 어차피 몸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이 정도 부상은 어차피 아무 것도 아니니.

그리고 그건 체스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몸을 더듬어 보니 크게 어디가 나가거나 부러진 곳은 없는 듯했다.

단지 생각보다 훨씬 지쳤을 뿐.

'B급을 상대하고 살아남은 아이언 등급이라.'

"크크크큭."

체스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쟤 왜 저러냐?"

"냅둬~ 좋은 일이 있나 보지. 크크크."

바닥에 주저앉은 디오스는 체스가 웃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렸다.

****

잠시 휴식을 취했던 그들은 디아고스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B급 마수인 디아고스트는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짐을 다 들고 갈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북북-

파이팅 넘치게 마수를 해체하는 체스.

좀전까지 기절했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로 힘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쟤... 저런 애였냐?"

"...흠. 오락가락하나본데?"

자신들보다 더욱 열심히 마수를 해체하는 모습을 보며 디오스가 살짝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디오스.

예외는 없다.

그런데 몸집이 너무 커서 작업이 쉽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는 구슬땀을 흘리며 묵묵히 작업에 열중할 따름이었다.

피를 뺀 후 가죽을 벗기고 고기는 조금만 챙겼다.

그리고 특히 비싼 값에 팔리는 뿔과 이빨 그리고 발톱을 모두 잘라냈다.

마지막은 이제 그것.

디오스가 거의 해체가 된 마수의 사체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수 사냥에 있어 제일 중요한 마정석을 꺼내러 간 것이었다.

지금 모든 걸 다 합쳐도 마정석 하나보다는 값어치가 덜 나가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마정석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앙꼬 없는 찐빵과도 같으니.

잠시 후 사체의 안쪽에서부터 디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정석은 찬란한 파란 빛을 내고 있었다.

디오스의 손에서 세상에 다시 없을 빛을 내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정석.

체스가 눈을 부릅 떴다.

'저...저거...!'

지금껏 본 적도 없는 크기에 극히 선명한 빛이다.

자신은 지금까지 제일 잘 가져본 게 D급 마수의 마정석이거늘.

A급 마정석이라는 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뭐 자신이 얻었던 D급 마정석은 바닷가의 모래 한 톨로 보일 정도이니.

"...이게 B급 마정석이구나..."

"그래. 많이 비싸지. 훗."

"...얼마나 하길래 그래?"

"흠... 얼마였지? 아~ 못 해도 몇 백만은 할 걸?"

"...맙소사..."

체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몇 백 만......

농담이겠지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내는 체스.

그러나 적어도 그런 걸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디오스의 눈빛이었다.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액수다.

디오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상태도 좋고 마수도 A급이니 아마 가격으로 치면 천만G는 나갈 것이다.

체스의 입장에서는 A급의 마정석이 이 정돈데 그 윗 등급의 마정석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될 지 상상이 가지도 않았다.

'보자... 몇 백만에 10%면 적어도 몇 십만. 거기에 나머지 것들을 정리하면...오우야...'

체스의 입이 헤벌죽해졌다.

어느 새 계약금을 사기 당한 것은 아예 잊어버린 체스였다.

다시 디오스네를 바라보는 체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체스의 눈에는 이들이 곧 신이고 세계 최강의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쯧...'

디오스가 체스를 바라보며 혀를 끌 찼다.

"입 그만 다물고 나머지 정리해."

"예~예~"

냉큼 존댓말을 내뱉는 체스.

돈 앞에는 그저 약자인 체스였다.

체스는 다시 작업을 재개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가올 장미빛 미래를 가득 그려가며 말이다.

****

하루하고도 반 나절을 더 잡아먹은 마수의 해체가 모두 끝이 났다.

모두들 땀을 닦으며 그들이 한 작업의 성과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해체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최대한 짐을 줄인 상태에서 모아보니 그래도 한 가득 짐이 쌓여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겠네? 어디 보자..."

디오스가 손뼉을 딱 치며 웃었다.

체스는 의아했다.

체스의 눈에는 분명히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은데 또 할 일이 남았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뭐가 남았소?"

"아~ 그거? 그건 바로 이거지."

푸욱-

어...억...

뭐...뭐야? 이 비현실적인 감각은?

이야기를 하며 잠시 뒤돌아 있던 체스의 배 부근이 갑자기 불이 타는 듯 강력한 무언가로 지져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움찔거리며 천천히 시선을 내린 체스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검날.

누군가의 검이 자신의 등 뒤에서부터 깊숙이 들어와 자신의 정면을 뚫고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커헙-

울컥 피를 토하는 체스.

그의 눈에는 물음표가 양껏 떠올랐다.

"...???"

체스는 힘겹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잘 돌아가지도 않는 고개를 겨우 뒤로 돌리는 체스.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세상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디오스였다.

그는 입가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체스를 올려다 보는 중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체스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왜..."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큽-

디오스는 체스의 몸에서 검을 빼냈다.

힘없이 무너지는 체스의 몸뚱아리.

그의 몸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왜...?"

체스는 가슴팍을 움켜쥔 채 힘겹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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