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디아고스트(7)
디오스의 일격이었다.
일순 뿜어져 나온 피를 흠뻑 뒤집어 쓴 그의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몸집이 몸집이니만큼 한 번의 찌름 정도로는 숨통을 바로 끊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디아고스트의 움직임이 홱 바꼈다.
한 차례 울부짖은 디아고스트는 그 자리에서 몸을 용수철처럼 튕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등에서 디오스를 떨어뜨리려는 심산이다.
"어어엇."
디오스가 재빨리 무언가 잡을 만한 것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벌써 날뛰기 시작한 디아고스트였다.
다리 힘만으로는 버티기가 쉽지 않은 날뜀이다.
디오스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주저앉은 채 벌어진 상처 부위를 잡으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날뜀이 너무나 격렬했다.
결국은 아무 것도 붙잡지 못한 채 균형을 잃고 그대로 위쪽으로 튕겨져 나가는 디오스.
"이익..."
어떻게든 튕겨져 나가는 상황에서도 균형을 잡으려는 디오스였다.
이 상황에서 공격을 받는다면 별다른 피해 없이 끝날 것 같지가 않았기에 그는 지금 허공에 뜬 채로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디오스를 잡아!"
겔리온이 디오스와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란도에게 외쳤다.
지금 여기에서 디오스가 전투 불능이 된다면 무조건 전멸이다.
겔리온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마수는 튕겨져 나가는 디오스를 한차례 노려보더니 그대로 도약을 시도했다.
아마도 자신의 날카로운 이빨로 그의 허리를 양분해 버리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입을 양껏 벌린 디아고스트.
크와아아아아-
'옳지.'
겔리온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저기 봐라.
똑똑히 약간의 빈틈이 생겨났지 않은가.
디오스가 빈틈이 넘쳐나는 만큼 디아고스트에게도 빈틈이 넘칠 정도로 드러날 수 벆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이다.
마수의 그 빈틈을 겔리온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노리는 것은 마수의 꼬리 부분.
겔리온도 허공을 향해 몸을 힘껏 날렸다.
마치 아이들이 꼬리잡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느껴지는 살기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런 상상의 나래가 좀더 펼쳐지려는 찰나.
겔리온이 그런 상상을 와장창 깨버렸다.
흐랴아압!
터져나오는 겔리온의 기합소리.
서거억-
디아고스트의 꼬리는 성인 남자 한 명 정도의 굵기였다.
그렇게나 굵은 꼬리가 그의 일검에 서걱 썰려나간다.
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땅 곳곳에 뿌려지고 뎅강 잘려 나간 꼬리는 산 어딘가에 패대기쳐졌다.
그리고 디아고스트는 공중을 도약하던 자세 그대로 일순 자신의 사고가 정지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로지 느껴지는 건 자신의 꼬리 부분이 마치 불에 지져지는 듯한 느낌 뿐이었다.
자신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순전히 타의로 인해 땅에 착지를 하게 된 마수는 괴성을 마구 질러대며 더욱 날뛰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자신의 기억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걸 지금 여기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낱 인간들에게!!!
그 사이 겔리온의 시야에 지상에 무사히 착지를 하는 디오스가 들어왔다.
'됐다.'
디오스는 땅에 닿자마자 바로 몸을 움직였다.
겔리온의 시야 너머로도 마수에게로 달려드는 디오스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디오스.'
겔리온 또한 디오스의 움직임에 맞춰 함께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얼른 끝맺음을 짓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한편 디아고스트는 조금씩 상황이 어려워짐을 느꼈다.
처음 인간들이 공격을 시도할 때만 해도 코웃음을 치던 자신이었다.
어차피 습격한 인간들 따위 자신의 먹이 밖에 더 되겠어?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몰골을 보라.
온 몸 곳곳에서는 출혈이 계속 되고 있고 꼬리는 아예 반 토막이 나버렸다.
이 상태로라면 되레 자신이 목숨을 내어주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방금 자신의 꼬리를 자른 인간의 공격은 멈출 생각을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공격을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오로지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벤 곳을 또 베어간다.
상처는 점점 깊어지고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땅을 점점 적셔갔다.
이제는 땅마저도 붉은 빛으로 보일 정도다.
고통을 울부짖는 디아고스트.
이제 눈에 띄게 디아고스트의 움직임은 느려진 상태.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 때마다 디아고스트의 몸은 땅과 점점 가까워져갔다.
그 사이 디오스는 조금 전 자신이 상처를 내었던 부위로 다시 몸을 날렸다.
디아고스트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반항할 수 있는 힘이 이제는 거의 사라진 채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은 해보았지만 그저 약간씩 움찔거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몸부림이었다.
"죽어버려! 크흐하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디오스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마구 흘려냈다.
이제는 마지막이다.
정말로 마지막이다.
샤아악-
디오스의 검이 마수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꽂혔다.
디아고스트의 머리에 꽂힌 그의 검은 손잡이 이외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꽂혀 있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는 디아고스트.
케헥-
마수는 피를 내뱉었다.
어떻게든 머리 쪽에 붙은 인간을 떼어내기 위해 앞발을 들어올렸지만 이제는 힘이 없다.
겨우 끌어올린 앞발은 이내 힘을 잃고 땅으로 툭 떨어지고.
그 사이 디오스의 검은 광기에 휩싸인 채 쉬지 않았다.
한 번.
다시 한 번.
또다시 한 번.
검이 쉬지 않고 마수의 몸을 마구 찔러간다.
그리고 결국 마수의 몸은 무너졌다.
모든 힘을 잃은 듯 더 이상의 저항 없이 땅바닥에 처박혀버리는 디아고스트.
마수의 혀는 길게 늘여뜨려져 있었다.
이것이 죽음이라는 것인가.
생명의 불빛이 점점 희미해지고 마수의 눈에 맺힌 초점은 그 빛을 잃어간다.
타악-
지상으로 내려온 디오스는 그 모습을 보며 침을 탁 뱉더니 일검에 그대로 디아고스트의 명줄을 끊어버렸다.
픽-
마수에게서 완전히 의식이 사라지고 드디어 하나의 마수 사냥이 끝이 났다.
털썩 주저앉아버리는 디오스.
그제야 그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후아~"
그 사이 겔리온이 디오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냐?"
"...괜찮아보이냐 이게..."
"잡았으니 됐지. 고생했다야."
디오스가 없었으면 아마 잡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체스가 도발을 해준 것이 아주 적절하게 잘 먹혔다.
돌발상황은 많았지만 그래도 톱니바퀴 안에서 모든 요소들이 잘 굴러가줬기에 성공한 마수 사냥이었다.
아마 그렇게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칼을 맞대고 있었겠지.
"두 번은 못하겠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디오스가 중얼거렸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뭐 여하튼 잡았으니 됐지만 말이다.
"저 자식도 깨워야겠지?"
겔리온이 널부러져 있는 체스를 힐끗 보더니 말을 했다.
그의 말에 디오스도 그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체스는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듯 보였다.
"어~ 그래. 저 녀석도 당연히 깨워야지. 명색이 주인공인데 저렇게 정신을 잃고 있어서야 되겠어?"
피식 웃으며 툭 던져진 디오스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