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디아고스트(5)
"디아고스트의 공격은 네가 막는 것이다. 알겠냐?"
디오스가 자신의 옆에서 칼을 들고 있는 체스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죽으라는 거야? 방금 저 공격을 못 봤어? 내가 저걸 막을 수 있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너 정도 몸에 그 힘이면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누누히 얘기하지만 짐꾼을 쓸 거면 뭐하러 비싼 돈을 쓰겠냐? 그러니 일부러라도 막아라. 알겠냐?"
"아이씨... 일단 살고 보자 그럼. 약속한 건 꼭 지켜! 이번에도 장난질치면 죽인다!"
디오스를 웃게 만드는 체스의 한 마디 말이다.
하지만 체스에게 그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퉤-
체스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은 후 다시 검을 힘껏 움켜 쥐었다.
금방 끝날 것이다.
자신은 공격을 막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주겠지.
하긴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었다.
계약금부터가 너무 컸었다.
게다가 장난질까지.
'그 놈에 빚만 아니었으면...'
아니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눈 앞의 적에 집중을 하자.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마구 요동을 친다.
지금껏 마수 사냥꾼을 하면서 이렇게 긴장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 사이 디아고스트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땅을 발로 슥슥 긁으며 기회만 엿보던 디아고스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두어 번의 발길질로 지면이 파여 나간다.
슈왁-
디아고스트는 뿔을 앞세운 채 이내 지면을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곧추세워진 마수의 뿔은 정확하게 체스를 노리고 있었다.
'아. 꼬치 먹고 싶다.'
그 뿔에 꽂힌 자신의 몸을 상상하니 체스는 갑자기 꼬치가 생각이 났다.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체스.
'안돼. 미친 거지. 이 상황에.'
순간 그의 상념을 깨는 디오스의 목소리가 체스의 고막을 사정없이 때렸다.
"무조건 막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넌 방패막이다!"
그 말만 남긴 채 디오스와 나머지 일행들은 재빨리 체스와의 거리를 벌렸다.
'안다고. 니기미.'
체스는 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달려오는 마수를 보았다.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한 방울 흘러 내렸다.
5미터.
4미터.
3미터.
마수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둘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크와아아왕-!
체스를 단박에 쳐받아버리겠다는 듯 힘껏 달려드는 디아고스트.
약간 벌려진 마수의 주둥이 사이로 날이 선 이빨들이 빛이 반사되어 번들번들거린다.
'저 이빨 하나만 해도 돈이 꽤나 되겠지?'
이 급박한 순간에 빚이 떠오른다는 건 참...
또다시 다른 생각에 빠져든 체스의 코앞에 디아고스트가 뛰어들었다.
발 끝부터 손 끝까지 긴장감이 타고 올라왔다.
근육이 일순 불끈거린다.
후아아아압-!!!
그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두둑-
근육과 맞물린 관절에서부터 시원한 소리가 울린다.
힘껏 검을 휘두르는 체스의 허리에서부터 찌릿찌릿함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으랴아아앗-!!!
잔뜩 힘이 들어간 몸에서부터 그의 팔에 들린 검을 통해 일거에 기운이 발산되었다.
지나치게 긴장했던 탓일까 온몸의 근육이 저릿하게 울려왔지만 이것만은 필히 막아보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체스의 일검에 모두 녹아들어 있었다.
카아아앙-!
디아고스트의 뿔과 체스의 검이 격돌했다.
일순 엄청난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둘 사이.
"크으읍..."
땅을 디딘 체스의 두 발이 그대로 주르륵 밀려났다.
부릅뜬 두 눈에 떡 벌어진 입.
체스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힘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뒤로 튕겨 날아가지는 않았다.
"호오~ 역시 내 눈이 틀리진 않았어. 버티기는 하는구만."
디오스가 감탄을 했다.
"시발! 막았잖아! 안 도와주냐?!!!"
체스가 한 번의 공격을 막은 채 재빨리 외쳤다.
하지만 어째 여유가 없다.
더 이상 그에게 빠져나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디아고스트의 공격 범위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체스.
"이익..."
체스는 칼로 버텨가며 어떻게든 디아고스트의 공격을 쳐내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마음만 그럴 뿐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우선 디아고스트가 그런 여유를 만들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뿔. 앞발. 다시 뿔. 입.
연이어 디아고스트의 공격이 이어지고 그걸 막아내는 검과 부딪히는 소리만 숲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텁.
마수로부터의 공격이 갑자기 멈췄다.
허어...
...끝인가...?
잠잠해진 틈을 타 고개를 슬며시 드는 체스의 눈에 잔뜩 치켜올라간 마수의 눈꼬리가 보였다.
딱 봐도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역시나 그럴 리가 없지.
디아고스트의 뿔이 다시 한번 빛이 나기 시작한다.
고개를 한 번 위로 휘젓는가 싶더니 그대로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한 뿔을 마구 들이미는 디아고스트.
체스의 키와 거의 엇비슷한 그 뿔은 들이받기 좋게 약간 곡선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체스는 쉴 새도 없이 검을 옆으로 기울였다.
까가가강-!!!
검날과 뿔이 부딪히며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뿔에서부터 타고 올라오는 스파크는 그대로 체스의 검으로 옮겨붙었다.
으갸갸갸갸갸갸갹-
일순 온 몸의 솜털이 짜왁 곤두섰다.
머리털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말려 들어가고 그의 거무튀튀한 피부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의지 하나 만큼은 충만한 그였다.
입에서는 연기가 풀풀 새어나오며 검을 쥐고 있는 팔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정신만은 용케 잃지 않은 채 자신의 팔에 온 힘을 집중했다.
그래도 용케도 검날을 타고 그그극 올라오던 뿔이 전진을 멈췄다.
"크윽~"
하지만 거기까지.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체스는 결국 디아고스트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대로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그의 발.
휘이이이이익-
순간 디아고스트가 자세를 바꿨다.
이미 볼짱 다 본 자세다.
'응?'
체스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리는 찰나.
마수의 꼬리가 채찍처럼 휙 휘둘러졌다.
이미 자세가 무너진 체스였다.
꼬리까지는 더 이상 막아낼 재간이 없는 체스는 고스란히 그 공격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체스의 상체 부분의 옷이 걸레짝이 되며 찢어져 나간다.
그와 함께 그의 상체에 선명하게 그어지는 기다란 빨간 선 하나.
체스는 공중에 뜬 자세 그대로 뒤로 날아가는가 싶더니 뒤쪽에 처참하게 꽂혀버렸다.
우당탕탕- 퍽-
후두둑-
나뭇잎이 마치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것마냥 우수수 떨어진다.
용케도 나무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체스는 연이어 당한 탓에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받은 충격이 꽤나 큰 듯했다.
그저 움찔움찔거리기만 하는 체스.
"커헙... 이...게 A급이야...?"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체스의 중얼거림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미동조차 않는 것이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린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