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디아고스트(4)
'저 개놈에 새끼가... 내 가방을...'
그간 잠도 안 자고 먹을 것 안 먹고 쏟아부은 것들인데...
마일드는 자신이 만든 희대의 발명품들이 무의미하게 터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후덕한 볼살이 분노에 휩싸여 푸들푸들 떨린다.
그는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입만 그저 떡 벌린 채였다.
그 사이에도 마일드의 가방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툭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요란한 폭발음에 비해 영 위력은...
'저 놈 저건 발명가를 시켰어야 했어. 그냥 지 하고 싶은 거나 만들고 살라고. 끌...'
터져나가는 마일드의 폭탄을 본 디오스의 솔직한 평가였다.
하급 마수들에게는 잘 먹히는 걸 분명 알고 있지만 디아고스트 같은 상급의 마수들에게는 단 1도 통하지 않는 저것들.
보라.
저 디아고스트의 따분한 표정을.
그저 날파리가 앵앵거리는 것 마냥 귀찮다는 표정이 아닌가.
디오스의 생각대로 디아고스트는 딱 그 표정이었다.
살짝 고개만 돌린 마수는 영 마뜩찮아하는 표정이다.
따끔따끔하게 느껴지는 저 폭발도 싫고 매캐하게 코를 자극하는 연기는 더 싫었던 탓이었다.
그 까닭에 공격을 하려던 자신의 의도도 멈추긴 했지만.
그저 앞발만 살짝 든 채 마수는 그렇게 한참을 선 채로 있었다.
슈으으-
폭발음이 멈췄다.
남은 건 자욱한 연기들.
뭐 그건 됐고.
찢어진 가방을 발로 툭툭 건들여 보니 빈 껍데기만 팔랑인다.
이제 얼른 끝내버려야겠다.
슈아아악-
연기가 갈라지며 디아고스트의 앞발이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는 냅다 하려던 행동을 다시 이어가는 디아고스트.
마수는 다시 한번 도약을 한 채 힘이 잔뜩 실린 앞발로 체스가 있던 곳을 그대로 후려쳤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악-
잔뜩 날이 선 발톱이 바람을 가른다.
그 덩치에 안 어울리게 마치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다.
히이이이이익-
체스는 있는 힘껏 허리를 숙여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지근거리에서 마수의 발톱이 슈욱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이 체스의 두 귀에 똑똑히 들렸다.
'뭐...뭐야. 왜 저리 빨라...'
체스가 그 공격을 피한 것은 순전히 감각과 운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거기에 그간의 경험 정도가 합쳐져서 용케도 말이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체스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폭발했다.
'걸리면 죽는다! 걸리면 죽는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저 모습이 귀엽기까지하다.
"야!!! 몇 대만 막아!!! 나머지는 우리가 한다!"
체스의 움직임을 보며 디오스가 냅다 외쳤다.
역시 노련한 숙련자들답게 조금 보여지는 틈조차 놓치지 않는 그들이었다.
단, 넋을 잃은 마일드를 뺴고는 말이다.
"이 쪽으로 와!!!"
디오스가 힘껏 외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왼팔에 달린 장치를 푸슉 마수에게로 발사했다.
그것은 마수 사냥꾼들이 필수로 사용하는 장치로 바인더라는 것으로 마수들의 움직임을 봉쇄할 때 사용하는 장치였다.
목표는 디아고스트의 뿔이었다.
동시에 반대편에서 겔리온이 날린 바인더도 같이 날아온다.
두 명이 쏘아올린 바인더는 그대로 디아고스트의 뿔에 휘감겼다.
덕분에 디아고스트의 움직임이 막혔다.
마수의 머리가 움찔거렸지만 디오스 일행도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잠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슬슬 짜증이 치민 디아고스트가 괴성을 질러댔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지지직- 지지직-
일순 마수의 뿔이 환한 빛을 내며 스파크가 튀었다.
이크-!
파바박 튄 스파크는 그대로 바인더를 타고 순식간에 그들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바인더를 푼 상태.
그간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노련한 그들이었다.
"다시!"
다음의 기회는 주지 않는다.
질질 끌면 위험하니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야!!!"
디오스가 쉬지않고 몸을 움직이며 체스를 불렀다.
네 몫을 하라는 말이다.
에잇.
체스는 자신의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냅다 디오스 방향으로 걸음을 내질렀다.
그 사이에도 디오스 일행은 디아고스트의 공격을 간간이 피해내며 잡아낼 공간을 만드는 중이었다.
'좋아. 몇 대만 버텨주면.'
이제야 할 의지가 생겼나 보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순간 자신의 몸의 방향을 튼 디아고스트가 꼬리를 좌우로 힘껏 흔들며 체스의 진로를 막아섰다.
일순 마수의 움직임에 당황한 체스.
촤악- 촤악-
꼬리가 마치 채찍처럼 땅을 내려치고.
그 갈림길에서 체스의 선택은 일보 후퇴가 아닌 일보 전진이었다.
그의 허벅지가 확 부풀어오르나 싶더니 순간적인 폭발을 이용해 앞으로 힘껏 내달리기 시작한 그.
그의 진로에는 디오스가 있었다.
아마 마수와의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자신의 안전까지 확보하려는 심산인 듯 보였다.
체스의 상황판단.
한낱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판단과 실행력이었다.
'괜히 오랫동안 살아남은 게 아니군. 실력이 낮아서 그렇지. 이대로 저 녀석이 버텨주기만 하면 쉽게 잡을 건데.'
그 와중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체스를 바라보는 디오스의 눈가가 깊게 가라앉았다.
디아고스트의 공격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뒤로 힐끗 돌아본 자신의 시야에는 응당 놔뒹굴고 있었어야 할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크어어어엉-!!!
갑자기 목표물이 사라지자 디아고스트의 짜증이 가득 찬 괴성이 숲 속을 가득히 울렸다.
다시 재빨리 몸의 방향을 트는 디아고스트.
마수의 시선에는 자신의 전방위를 점한 디오스 일행이 똑똑히 들어왔다.
물론 처음 노렸던 덩치 큰 놈까지.
다르게 생각하면 차라리 디아고스트에게는 훨씬 잘 된 일일수도 있다.
하나씩 처리하려 했지만 저렇게 발버둥을 치니 다섯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디오스 일행을 위에서부터 내려다 보는 마수의 눈은 가당찮다는 표정이었다.
고작 저 정도의 실력으로 자신을 잡으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도대체 얼마나 얕잡아 보이고 있다는 것인지 원.
지금껏 자신을 잡으려는 인간들은 그래도 꽤 있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를 살펴보고 가는 인간들도 있었고 말이다.
그 인간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바로 자신의 뱃속이다.
아마 지금쯤 뱃속에서 모두 소화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미 배변이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고.
크르릉-
디아고스트는 더 이상 질질 끌 생각이 없는 듯 빠른 결착을 짓기 위해 자세를 낮추었다.
발을 살살 굴려가는 마수의 예리하게 째진 눈이 빛이 났다.
필경 눈앞의 인간들을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