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디아고스트(3)
디아고스트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녀석이 몸을 일으키니 웬만한 집 2층 정도는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야! 들켰다! 흩어져! 바로 전투다!"
자신들을 노려보는 디아고스트를 보며 디오스가 고함을 빼액 외쳤다.
먼저 선공을 했어야 하는데 시작부터 헝클어져 버렸다.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디아고스트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는 위치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타타탁-
익숙한 몸놀림이다.
디오스의 말 한 마디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4명은 연계를 하는 각자의 위치가 있는 듯 숙련된 움직임으로 움직여 나갔다.
단, 체스를 제외하고.
"야야! 긴장하지 마. 금방 잡아버리자고. 움직임부터 막는다."
디오스가 움직이며 나머지 일행들에게 격려를 불어넣듯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머지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의 무기를 재빠른 손놀림으로 준비했다.
지금 이 곳에서 유일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건 체스 밖에 없었다.
체스는 4명이 움직이건말건 뒤로 숨기 위해 짐을 챙겨 슬금슬금 움직이는 중이었다.
물론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에는 시킨 대로 처음 들어오는 몇 번의 공격을 막아볼 생각이긴 했었다.
디아고스트를 대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에 낄 마음이 아주 싹 사라졌다.
디아고스트를 보는 순간 전의를 싹 상실해 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디아고스트를 감싸듯 움직이는 4명과는 반대방향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체스.
"어이!!! 너 뭐하냐?"
디오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체스의 귀에 꽂혔다.
"...응...?"
체스의 몸이 멈칫했다.
자신을 왜 부르냐는 표정으로 디오스를 빤히 쳐다보는 체스.
"무기 안 드냐? 너 분명 역할을 줬을 건데?"
어이없는 녀석이네.
저 모습은 영락없이 도망가는 폼이 아닌가.
덩치도 큰 녀석이 그게 안 걸릴 줄 알았나?
디오스의 얼굴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깔렸다.
그 와중에 지금 도망을 가려고 한단 말이야?
"...난 그냥 짐만 챙기고 있으면 안 될까? 짐도 소중하잖아..."
"미친 놈. 놀고 있네. 짐꾼을 쓸 거면 왜 계약금까지 걸면서 데리고 오냐? 네 맷집이 필요하다고 이 새끼야. 급해죽겠는데 그것도 일일이 말해줘야 하냐?"
"...저걸 보고 잡을 생각을 하는 게 미친 거 아냐...? 난 살고 싶은데..."
...역시 일회용이야. 일회용.
"빨리 움직이라고! 이 새끼야! 아오 씨..."
디오스는 어이가 없었다.
그의 눈은 디아고스트와 체스를 왔다갔다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겔리온과 싸울 때는 그렇게나 열심히 싸우더니.
지금 이 상황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 도망을 가려 한다?
'저 새끼. 생각보다 상황 판단이 좋은 거냐? 아니면 그냥 이상한 놈이냐?'
체스를 바라본 디오스의 솔직한 평가였다.
****
한편 자신 앞에 나타난 벌레 같은 인간들을 바라보는 디아고스트의 가라앉은 눈동자 안은 찐득한 살기가 점점 퍼져나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을 막아서는 인간들의 움직임이 영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디아고스트는 상황을 살피며 공격하기에 최적의 위치를 찾기 위해 조금씩 움직였다.
쥐새끼 같은 것들.
감히 인간들 주제에 자신을 잡으려 한단 말인가?
하지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직 모르는 모양이다.
지금의 이 인간들은 말이다.
가소롭기 그지 없다.
순간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그의 시야로 날아오는 무언가였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자신의 시야를 끌기 위해 뭔가를 던진 것이었다.
슈왁-
그러나.
팅- 팅-
디아고스트는 단지 수염을 휘두르는 것 만으로 가볍게 그것들을 쳐냈다.
장난을 치는 건가?
****
마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마수.
그리고 이들은 조용히 다가왔고 무기를 들고 있다.
또 이미 의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보라.
저 인간들이 흘려내는 살기를.
지금까지 자주 겪어본 상황들 중 하나인 그런 뻔한 종류의 상황인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도합 다섯.
자신을 포위한 것은 4명.
그리고 뒤에서 엉거주춤 서있는 1명이다.
그 외의 살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 이외에는 자신을 노리는 자는 딱히 없는 듯하다.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자신을 둘러싼 4명은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는 제법 한 솜씨 할 것 같은 인간들이었다.
그에 반해 나머지 한 명은 뭐 벌레다운 느낌이려나.
벌레는 역시 벌레다워야지. 암.
어느 새 디아고스트는 모든 전장을 읽어냈다.
역시 A급의 마수답게 그런지 전장을 꿰뚫어 보는 것하며 상황 파악이 아주 빠르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녀석부터 먼저 처리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이미 탐색전은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자신의 차례인가.
자신의 발로 가볍게 땅을 긁으며 기회를 엿보는 디아고스트.
꿀꺽-
누군가가 침 삼키는 소리가 마수의 고막을 크게 울렸다.
순간 디아고스트가 몸을 움직였다.
팟-
제일 먼저 마수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디오스.
"온다!"
디오스가 모두에게 고함을 지르는 사이 어느 새 디아고스트의 몸은 가볍게 허공을 날고 있었다.
말이 도약이지 일순 체스 일행에게 온 사방이 그림자로 덮일 정도의 몸놀림이었다.
디아고스트의 도약 한번에 그들의 시야에 잔뜩 끼어든 흙먼지.
디오스를 비롯한 모두는 무기를 든 손에 힘을 잔뜩 쥐었다.
하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디아고스트의 움직임은 자신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디아고스트가 내딛은 도약의 끝에는 체스가 있었다.
먼저 머릿수를 줄이려는 계획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제일 약해보이는 녀석부터지.
체스도 그 정도는 읽은 듯했다.
"우와아아아아앗!!!"
디아고스트가 목표로 잡은 인간에게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마수는 목표를 바꾸지 않았다.
마수는 체스를 먼저 처리하기 위해.
체스는 저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왜 나야!!!"
그리고 체스는 재빨리 그가 들고 있던 가방을 디아고스트에게 집어 던졌다.
퍽-
****
멈칫-
디아고스트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아이씨! 저 미친 놈! 내 가방!!!"
마일드가 외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가방 쪽으로 몸을 날리는 그.
하지만...
있는 힘껏 팔을 뻗어봤지만 택도 없는 거리다.
마수를 잡을 때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가방이거늘 저 자식이 지 몸 하나 건사하겠다고 저렇게 던져버리다니...
자신이 맡겨둔 가방에는 대마수용 무기들이 들어 있었다.
미리 받아뒀어야 했는데.
마일드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힘차게 뻗어나간 그 가방은 그대로 디아고스트에게 맞았다.
정확히는 디아고스트의 앞발에 걸려버렸다.
발톱에 걸린 그 가방은 이제 그 용도를 다해버렸는지 부욱 찢겨져 나간다.
일거에 쏟아지는 내용물들은 매우 조악해 보이는 까만 공 같은 것들이었다.
후두둑-
퍼퍼퍼엉- 펑펑-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디아고스트의 앞발에서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란 듯 자신의 앞발을 뒤로 빼는 디아고스트.
가방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은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하면 터져나가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마일드는 그런 자였다.
한 마디로 마수 사냥꾼의 정석에서 벗어난 자라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기본적인 전투 능력은 다른 일행들에 비해 좀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지금과 같은 잡기에 능한 자였다.
다른 마수 사냥꾼들은 그런 마일드의 능력을 비웃었었다.
마수 사냥꾼이라면 모름지기 검. 주먹 뭐 이런 적극적으로 능력을 표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마일드는 어딜 가나 쓸모 없는 일행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런 그의 능력을 알아봐 준 것이 바로 디오스였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행에 합류를 시켰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것들이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화려한 불꽃을 수놓으며 몽땅 터져 버렸다.
저기 바로 아무 것도 모르는 저 개놈에 자식 때문에!
'망했다... 저게 다 얼만데... 망할 놈...'
망연자실한 표정의 마일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