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3화 (23/249)

#23

디아고스트(2)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A급 마수를 상대하는데 자신이 필요할 리가 없다.

좋은 말로 해석하면야 몸을 대라는 것이지만 그 위험한 걸 상대하라니...

A급 마수를 만난 적은 없지만 자신 정도의 등급이 그걸 마주친다는 상상 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오는 듯했다.

저들이 무얼 정확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체스는 어차피 가게 된 마당에 뺄 수도 없게 되기는 했지만 따로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그 계획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마수가 등장하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공격을 막아주는 척하다가 뒤로 빠지자는 것이었다.

괜히 막으려고 달려들었다가 재수없게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돈이 좋다고는 하더라도 그것을 위해 생명을 버릴 수는 없으니.

그렇게 체스는 마수와 조우할 때의 상황을 가정하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갔다.

****

얼마나 더 걸어갔을까.

크허어어어어엉-

산 하나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갑작스러운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 한 번에 일행이 있는 곳까지 영향이 미친 듯 주변의 나뭇잎이 우스스 땅으로 떨어진다.

"뭐...뭐야..."

지금껏 체스가 들어본 적이 없는 마수의 울음소리다.

거리가 이렇게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소리가 들린다는 건 지금껏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이었다.

'와... A급 정도 되면 저 정도의 급이구나...'

듣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는다.

체스는 처음 들어본 마수의 저런 괴성에 절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무섭다...'

그래도 나름 두려움이라고는 느껴본 적이 없는 자신이었는데 이번 만큼은 확실히 달랐다.

잡아봤자 D급 마수가 끝이었는데...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디오스 일행의 귀에도 똑똑히 들렸다.

"저 산 즈음에 있겠군."

"꽤나 덩치가 있는 듯한데?"

"성체일 가능성이 아주 크겠어. 저 정도면."

그들의 얼굴에 장난끼가 사라졌다.

곧 다가올 전투에 디오스 일행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디오스. 우리가 저걸 잡을 수 있겠지?"

"야~ 저 정도는 잡아야지. 저것도 못 잡는데 실버 등급이라고 할 거야? 안 잡아본 것도 아니고 왜 그래? 킬킬."

"그래도 그 때는 유체였고 저 소리는 거의 성체급이잖아. 그리고 너야 등급만 실버지 실력은 골드도 넘어섰는데 우리랑은 다르지."

"낄낄. 걱정도 팔자네. 걱정마. 내가 있잖아. 데리고 온 녀석도 있고 말이야."

"그...그래."

디오스가 얼굴 가득 염려가 낀 나머지 일행들을 격려했다.

그의 얼굴은 자신이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이미 몇몇의 A급 마수를 잡은 적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디오스의 작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같은 파티로 활약한 지 꽤나 오래된 그들이다.

실버 등급이 모인 지금 이 파티의 실력은 충분했다.

단지 부족하다면 조금 부족한 경험과 윗 등급으로 올라가기에 아주 조금 모자란 실력 정도?

그것들만 채워진다면 이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골드 등급을 받아도 무난한 실력들이었다.

디오스는 물론 논외이다.

그의 일행들만 아는 사실이기는 했지만 이미 실질적으로 실버 정도의 급은 넘어선 지 오래인 녀석이니 말이다.

"야야~ 빨리 잡고 가자. 뭘 그렇게 걱정하냐?"

"그래. 이번에도 얼른 잡고 가야지."

그들은 행여나 기껏 소리를 지른 디아고스트가 자리를 옮길까 봐 걸음을 좀더 빨리 옮겼다.

****

"저기다~!"

겔리온이 디아고스트를 발견했다.

그들이 처음 마수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와는 꽤나 떨어진 거리였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디아고스트는 거기에서 자리를 옮기지 않은 상태였다.

쉿-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디오스가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따라온 나머지 인원들도 디오스의 옆에 나란히 쭈그려 앉았다.

그들과 디아고스트의 거리는 100여 걸음 정도.

가깝다면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그 사이 체력이 거의 방전된 체스도 겨우 도착했다.

그는 이제야 조금 쉴 시간을 얻은 듯 가방을 내려놓은 채 숨을 헐떡였다.

망할 놈들.

체스의 입에서 단내가 풀풀 흘러 나왔다.

몇날 며칠을 계속해서 산을 탔더니 토악질까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거 이러다가는 마수를 제대로 잡아보기도 전에 죽을 판이다.

허나 그런 것 따위 통용되지 않는 디오스 일행이다.

디오스 일행은 익숙한 자세로 어느 새 전투태세에 들어간 중이었다.

그들은 체스가 숨을 고르건 말건 조용히 무기를 꺼내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무기는 일단 기본적으로 검이었다.

그 외에 조용히 투척무기 같은 것들을 챙기며 만일의 상황까지 준비를 했다.

크르릉-

숲 속 공터에 엎드려 있는 작은 동산 만한 크기의 디아고스트.

갈색의 몸에 검은 갈기를 가진 디아고스트.

몸 길이는 10여 미터 정도 되는 듯했다.

특히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은 얼굴 부분의 2개의 뿔이었다.

그리고 발 위로 드러난 사람의 상체 정도 길이의 은빛으로 빛나는 발톱.

그 발톱들은 긁히는 순간 몸이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위협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저기에 찔리면 그냥 골로 가겠네...'

체스는 입을 쩍 벌린 채 디아고스트의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도감에서나 본 A급의 마수다.

이번이 지나면 또 언제 볼 지 모르는 마수다.

자신의 등급이 오르지 않는 이상은.

마수는 아직까지 자신들의 기색을 못 알아차린 듯 보였다.

"야. 저거 위험한 거 아니냐?"

그 사이 디아고스트를 살피던 란도가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의 손이 가리킨 곳은 디아고스트의 뿔.

선명한 은빛의 뿔이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디아고스트가 가진 위압감은 곳곳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졌다.

그래도 뭐.

"뭔 걱정이래? 넌 걱정도 팔자다."

"...저거 저렇게까지 선명한 뿔은 한 번도 못 본 거 아냐?"

참나.

뭔 그리도 걱정이 많아.

뿔이 저렇게 선명한 빛을 드러내면 그 전에 잡아버리면 그만 아닌가?

디오스는 란도가 걱정하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시끄러워. 임마. 잔말말고 준비나 해."

"어...어. 그래."

혀를 찬 디오스는 다시 디아고스트를 보았다.

이제 저 마수가 방심을 하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언제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디오스는 자신의 무기를 꾹 쥐며 언제 나가야 할 지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킁킁-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고개를 번쩍 들어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 디아고스트.

디아고스트의 행동은 모두에게 똑똑히 보였다.

연이어 코를 킁킁거리는 디아고스트.

그리고 자신의 커다란 고개를 체스 일행이 숨어있는 쪽으로 천천히 돌려나갔다.

???

기척을 나름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떻게 알아차린 것이지?

'아차...'

디오스가 갑자기 입을 벌리며 무언가 알아차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맞을.

바람의 방향.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자신들의 뒤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다른 것에 집중을 하느라 눈치를 채는 게 늦어버렸다.

그 바람 탓이다.

불어온 바람은 자신들의 냄새를 가득 싣고 디아고스트에게로 불어가는 중이었다.

크와아아앙-!!!

분노에 가득 찬 디아고스트의 울음소리가 온 산을 뒤흔들었다.

마치 귀청이 떠나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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