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엘윈마을(12)
달도 겨우 형체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두운 밤.
별조차 잔뜩 낀 구름 때문에 자신이 가진 빛을 마음대로 내뿜지도 못할 정도로 어두운 밤이었다.
어둠을 벗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색 일색의 한 남자.
누가 봐도 이건 200% 수상한 남자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싶은 것인지 자신이 지금 이 곳에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몹시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다.
"후웁. 여기였지?"
숨을 잠시 고른 남자는 잠시 주위를 슥슥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익숙한 몸짓으로 날다람쥐 마냥 날렵하게 건물의 창문 앞에 매달렸다.
어느 창문에 도달한 그는 창문에 손을 살짝 갖다댔다.
아마도 잠겨있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것 같다.
스릉-
창문이 열렸다.
다행히 창문은 잠겨있지는 않은 듯 별다른 힘을 쓰지 않고도 수월하게 열렸다.
잠시 안의 풍경을 살펴보는 남자.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 자는 마치 유령이 스쳐 지나가듯 열린 창문 안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쿨~ 드르렁~ 커억컥컥~
침대에는 요란하게 코를 고는 한 남자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이 들어있었다.
끌-
잠시 침대를 보며 혀를 차는 남자.
그런 후 이내 자신의 목표물을 찾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테이블에 떡 하니 놓여져 있었다.
'멍청한 것이냐 아니면 경계심이 없는 것이냐?'
그 자는 이내 테이블로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갔다.
테이블에는 꾸러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남자는 살짝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여진 꾸러미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흠. 이상이 없군. 자 그럼...'
자신이 찾고 있던 내용물이 맞는지 확인한 사내는 자신의 품을 뒤적이더니 꾸러미를 하나 꺼냈다.
그것은 테이블에 놓여진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양의 꾸러미였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꾸러미와 테이블에 놓인 꾸러미를 잽싸게 바꿔치기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우렁차게 코를 골고 있는 남자를 한 번 더 힐끗 본 후 이내 자신이 들어왔던 창문으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방 안은 다시 한 명의 남자만 남고 정체불명의 남자가 사라진 창문은 원래부터 열리지 않았던 양 굳게 닫힌 그대로였다.
그리고 방 안에는 여전히 코를 골고 있는 남자가 내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그로부터 정확하게 사흘이 지났다.
디오스를 비롯한 일행은 자신들의 여관 앞에 짐을 놔둔 채였다.
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차피 A급 마수를 잡는다는 것은 잡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의 하나이니.
"올까?"
"당연히 오지~ 무조건 올 거야~ 클클. 내가 이래 보여도 그런 거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알지."
그들은 가벼운 무장을 한 채 시시덕거리는 중이었다.
짐 위에 걸터 앉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
"저기 왔네~"
디오스가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기다리고 있던 자가 오는 것을 확인한 듯 무척이나 반갑게 손을 좌우로 격하게 흔들었다.
"진짜 왔네. 하긴 디오스가 무섭긴 하지."
"그렇지. 얘는 한다면 하잖아. 핫핫."
디오스의 일행 곁으로 다가오는 건 다름아닌 체스였다.
그는 평범한 복장에 칼만 멘 채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전 두들겨 맞았던 얼굴의 붓기는 거의 빠진 듯 멍자욱만 조금 남아 있었다.
"왔냐? 가야 하는데 복장이 그게 뭐야?"
디오스는 실실 웃고 있었다.
"난 안 갈 거야. 여기 계약금."
툭-
체스는 디오스에게 돈 꾸러미를 던져 주었다.
"호오~ 안 간단 말이지? 뭐 그래도 돈을 돌려주러 왔으니 나름 양심적이라고 해야 하나? 얼굴이랑은 다르게 착한 놈일세~"
"내가 갈 만한 곳이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분수는 알고 있으니. 괜히 다리 찢어지기는 싫거든."
"그래~ 그래~ 알았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디오스는 아쉽지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체스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걸음을 옮기는 체스를 보며 피식 웃은 디오스는 돈 꾸러미를 열더니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어이~ 잠깐~ 체스."
"???"
****
날카로운 목소리가 체스의 이름을 불러댄다.
디오스의 목소리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체스가 걸음을 멈춘 채 디오스를 향해 돌아보았다.
디오스는 냉랭한 표정을 한 채 돈 꾸러미를 거꾸로 들었다.
후두두둑-
돈 꾸러미 안에서 갑자기 내용물이 촥 쏟겼다.
그 돈 꾸러미에서 쏟긴 것은 얼마의 돈 그리고 왜 거기에 그게 들어가있는지 모를 돌들이었다.
"??????"
체스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장난치냐? 이게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체스의 눈동자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
그걸 나한테 왜 말하는 거지?
분명히 자신은 받은 그대로 열어보지도 않은 채 돌려준것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돈이 있어야 할 터.
하지만 지금 나온 것은 아주 약간의 돈과 돌덩이들.
왜 저 꾸러미에서 돌이 나오지?
"...거기 왜 돌이 있지?"
"그걸 내가 아냐? 너 이 새끼. 사기를 치네? 우리가 허투루 보이냐? 참내. 하하하하하."
디오스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아니오. 난 건드린 적이 없소..."
갑자기 체스의 말이 존댓말로 바꼈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증거였다.
"그럼 이건 뭐지? 돈을 가져와. 10000 G가 어디 뉘집 개 이름이냐? 빨리 가져와. 그것만 받으면 보내줄 테니."
체스는 어이가 없었다.
돈 꾸러미를 받은 이후 처음 확인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던 체스였다.
안의 내용물이 바뀔 리도 없고 건드린 적도 없다.
"아... 설마... 네 녀석...?"
"뭐?"
"네 놈... 날 속인 것이냐?"
"뭐야~ 설마 날 의심하는 거야? 그리고 증거 있냐? 난 분명히 돈을 줬어. 어이가 없네. 이 새끼~"
시발. 망했다.
디오스는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본 순간 체스는 그제야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갔다.
이딴 장난질이라니.
등을 처먹어도 유분수지 감히 자신에게 사기칠 생각을 해?
체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한테 사기를 쳐...?"
"누가 너한테 사기를 친다는 거지? 네가 확인을 제대로 안 한 것이지 않냐. 자~ 그럼 어떡할래? 계약금을 가져올래? 아니면 같이 갈래?"
"이런 개...새..."
"왜 욕을 하지? 이건 누가 보더라도 네 실수 아냐? 그러길래 잘 간수를 했어야지~"
낚여도 단단히 낚였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디오스 저 자가 장난을 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1만 G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체스에게는 100G이 남아있는 재산의 전부였으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후... 알겠다. 대신 보수는 반드시 줘."
"그래. 그건 당연하지~ 특별히 네가 계약금에 장난친 건 봐줄테니 고마워하고~ 자식아."
디오스는 몸을 일으키며 방긋 웃었다.
그는 이제야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 몸을 풀고 있었다.
'와... 진심 죽여버리고 싶네...'
체스의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디오스의 저 표정을 보니 체스의 의심은 이제 확신이 되었다.
계약금은 결국 저 녀석의 짓이다.
하지만 증명할 수가 없다.
가뜩이나 험상궂은 체스의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하지만 디오스 일행은 체스의 기분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그딴 건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이미 사라진 계약금...
후...
애초에 제대로 확인도 안 한 체스 본인 잘못이다.
이렇게 된 이상 갈 수 밖에 없다.
대신 사냥 후 보수 만이라도 확실히 받아야 한다.
"짐 챙겨야 하지?"
"...잠깐만 기다려 줘."
"그래? 알았어~ 일단 얼른 짐을 챙겨와라. 그러길래 처음부터 챙겨왔으면 서로 편할 것을. 끌끌."
"개..."
보면 볼수록 재수 없는 상판대기다.
한 대 확 쳐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생각은 없으니 우선은 사냥부터다.
'하...무슨 저주가 내려졌나. 니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