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엘윈마을(10)
상상도 못했던 말이 디오스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체스는 입이 떡 벌어진 채 디오스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팔짱은 어느새 풀린 지 오래.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조졌네...'
디아고스트.
A급의 마수다.
언제나 한 마리씩 돌아다니는 마수이지만 한 마리만 나타나도 웬만한 마을 하나는 쉽게 박살이 났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살아 남은 디아고스트들은 웬만한 S급 마수들도 이길 수 있다고 알려진 강력한 마수였다.
속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디아고스트라...
체스는 곰곰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계산을 한 번 해보자.
'보자... 디아고스트를 잡으러 가는데 실버 등급 마수 사냥꾼 4명이라... 거기에 나까지 합류를 한다고 해도 나는 어차피 아이언... 똥 밟았네...내가 술김에 들은 게 그건가 보네. 젠장. '
보통 마수를 잡는데 필요한 인원은 마수의 등급마다 달랐다.
하지만 보통 하나의 급수가 올라갈 때마다 사냥에 필요한 인원은 거의 제곱수로 늘어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A급 마수를 잡는데 고작 4명?
그것도 실버 등그으으으으읍???
이건 그냥 목숨을 던지는 일이다.
그래 내 목숨 얼른 가져 가슈 이것과 진배없는 행동이다.
그냥 넙죽 바치는 일이란 말이다.
아무리 빚을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목숨이라도 있어야 빚을 갚던가 할 게 아닌가.
"아... 난 빠질래. 잘못 온 것 같다. 그런 건 줄은 또 몰랐네. 내가 술김에 그만."
체스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거절해야 한다.
그는 뒤로 돌아 얼른 왔던 길로 돌아가려 했다.
"앉아."
차가운 목소리.
순간 찐득한 살기가 느껴진다.
'뭐...뭐야.'
걸음을 떼려 해도 발이 바닥에라도 붙어버린 듯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팔을 내려다보니 소름이 좌라락 돋아있다.
그것 뿐이면 다행이게.
관자놀이 부근에서는 식은 땀이 주르륵 흐르고 등골이 서늘한 정도였다.
늘 쾌활하기만 하던 디오스의 목소리였다.
"앉아."
디오스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체스는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무서움이었다.
"옳지. 착하네~ 말은 잘 들어야지? 그런데 우리 체스는 몇 살이지? 우린 30살 초반이다만 설마 우리보다 나이가 많지는 않겠지? 약간 형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다시 예의 사람 좋은 얼굴로 돌아온 디오스.
그는 싱글벙글 가볍게 질문을 툭 던졌다.
체스의 얼굴을 보면 형일 것 같기도 하다만은...
그래도 예의상 반말을 하기는 했다만 당연히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년배 정도일 것이라 생각한 디오스였다.
'뭐야... 엄청 동안이네.'
디오스를 본 체스의 솔직한 평가였다.
그나마 디오스는 30대 중반으로 생각이 되더라도 나머지는 거의 40대 정도라 생각했는데.
"난 20살인데..."
순간 테이블의 4명 모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동시에 자신이 들고 있던 무기를 빼어들었다.
"거짓말하지마!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 간사한 혀를 잘라버리겠다!"
"이 자식이 거짓말을???"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20살이라는데.
"지...진짠데..."
오히려 체스가 그들의 반응에 당황을 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쟤 20살 맞아요~ 저랑 친구거든요~"
여관의 바닥을 걸레질하던 디어가 지나가며 한 마디 툭 던졌다.
디어는 확실히 20살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디어의 말을 들은 디오스가 환장하겠다는 눈빛으로 체스를 쳐다보았다.
상상도 못한 대답에 뭐라 말을 해야 할 지 감도 오지 않았다.
왜 있잖은가.
되레 위로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이런...야. 너 세상 살아가는데 어려움 같은 거 없냐?"
"아니. 전혀 없는데?"
낭랑하게 대답하는 체스.
"어유. 됐다 됐어. 언제 갈지도 모르는 인생 나이가 무에 중요하냐? 더군다나 우리처럼 칼밥 먹고 사는 녀석들이."
무기를 집어 넣은 디오스는 자신의 품에서 꾸러미를 하나 꺼낸 후 테이블에 던졌다.
툭-
"끼워줄게. 이건 계약금 10000G야. 나머지는 디아고스트를 잡고 정리하면 거기에 10%."
체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가 졌던 빚 50만G를 갚는데 5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계약금이 무려 10000G이다.
더군다나 성공에 대한 보수가 10%라니...
"아직 한다고 안 했는데..."
하지만...
이 유혹.
거절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돈도... 디오스에 대한 무서움도...
"그... 그런데 나는 딱히 필요없지 않나? A급 마수를 잡는데 날 데리고 가서 뭘 하려고?"
"우리도 원래는 B급 마수를 잡으려고 했지. 그런데 이번에 디아고스트가 있다는 게 딱 알려졌지 뭐야? 아주 고급 정보로 말이야. 이 정보 아주 비싸게 샀다고. 그런데 우리 넷이서 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말이야. 너무 비효율적이거든.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래서?"
"네 덩치와 그 힘. 그리고 집념을 보고 확실히 결정했어. 네가 앞에서 좀 두들겨 맞아라."
한 마디로 디오스가 한 말은 몸으로 때우라는 말이었다.
제일 전방에서 쏟아지는 A급 마수의 공격을 말이다.
하... 참나...
이 일이 똥이 될 지 금이 될 지는...
"새...생각할 시간을 좀..."
"하하하. 좋아~ 우리는 정확히 사흘 뒤에 출발할 거야. 그날 아침 9시에 이 곳에서 만나자."
"사흘..."
"그래. 할 거면 짐을 챙겨서 오고 아니면 이 계약금을 돌려주러 와라. 알겠니?"
"뭐... 일단은."
참 사람의 욕심이란 게 그렇다.
당연히 거부를 해야 하는 게 정상이거늘 마음 속의 탐욕이라는 녀석이 고개를 들어버렸다.
테이블의 돈 꾸러미를 보니 괜히 욕심이 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체스는 일단 돈을 챙겨 주머니에 넣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익-
체스는 문을 열었다.
"잠깐~"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디오스의 큰 목소리.
"어?"
"그거 들고 튀면 죽는다. 진심~ 하하하하하."
디오스의 웃음기 잔뜩 섞인 경고가 날아 들어왔다.
여관 안에 있던 모든 이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체스의 얼굴은 심각했다.
디오스가 한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자는 정말 죽이고도 남겠지... 젠장...'
그 뒤로 디어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체스의 귀에는 그 어떤 이야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디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깡그리 무시한 채 우선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