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3화 (13/249)

#13

엘윈마을(4)

테이블에는 4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4명 모두 저마다 각각의 무기를 든 것이 뭔가 몸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뭐, 마수 사냥꾼이 아니면 용병이나 그런 것이겠지.

저 행색이 기사일 리는 없으니.

그들의 앞에 각기 놓여진 건 달랑 술 한 잔.

술을 마시러 온 건 아닌 듯했다.

한창 무언가에 열중한 채 이야기를 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갑자기 난입한 체스에 의해 중지되었다.

"뭐야? 이 술주정뱅이는?"

"우리 얘기를 들었나본데? 낄낄."

"빨리 보내~ 할 얘기 많잖아. 아직 덜 끝났단 말이야."

"주정뱅이인가본데? 흐흐흐. 어이~ 친구. 술에 잔뜩 취한 듯한데 가서 좀 자는 건 어때?"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드는 테이블의 일행들.

그렇지만 관심은 그걸로 끝이었다.

테이블에 있는 일행들은 체스의 모습을 힐끗 보더니 이내 무시하더니 자신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낮부터 술에 이렇게 취해 있으면 안 봐도 뻔하다.

어디 놈팽이나 뭐 그런 것일 테지.

4명의 남자는 체스를 무시한 채 다시 자신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쾅-

****

갑자기 테이블을 힘껏 내리치는 체스.

체스의 두 손에 내려쳐진 테이블은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눈은 풀려 있었지만 체스의 행동에는 힘이 있었다.

'호오?'

테이블에 앉아있는 4명 중 한 명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로운 녀석인걸?

재미있네.

"눼가 뫌했자놔! 돠시 뫌해보라고!!!"

확 짜증을 내는 체스.

"술에 취했으면 곱게 처 잘 것이지 어디서 행패냐!"

챙-

일행 중 유난히 성격이 급한 한 남자가 등 뒤에 메고 있던 칼을 뽑았다.

"싸움이다!"

"싸움이야!"

술집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칼을 꺼내는 것을 본 다른 손님들이 황급히 주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멀리 도망가지는 않은 채 싸움이 일어난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난동은 헨리에게도 아주 잘 보였다.

"아... 거참..."

하아...

곤란한데...

역시나 싸움이다.

그 전에 얼른 집으로 보냈어야 했어.

곤란한 듯 머리를 벅벅 긁은 헨리가 황급히 카운터에서 뛰처나왔다.

"아이고~ 그냥 술에 취한 녀석일 뿐이에요~ 자자. 손님들 기분들 푸시고~ 제가 한 잔씩 서비스를 드리겠으니 기분 푸세요~ 너 이 녀석!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헨리가 체스의 한 팔을 잡은 채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체스가 어디 보통의 덩친가.

더군다나 지금도 마수 사냥꾼으로서 현역을 뛰고 있는 체스.

헨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체스였다.

끙... 끄응...

'무...무슨 힘이...'

안간힘을 쓰며 체스를 당기고 있는 헨리.

그러나 마을에서 나름 한 덩치하는 헨리였지만 그의 힘으로도 체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재밌네.'

예의 그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가 좀 동한 듯했다.

"잠깐. 앉아봐. 겔리온."

"뭐야? 왜 그래? 디오스."

"재미있을 것 같아. 우리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한번 끼워보자."

"...미쳤어?"

겔리온이라는 남자가 디오스를 홱 돌아보았다.

그들이 나누던 얘기를 체스가 어느 정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자를 끼울 수는 없었다.

아무리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말이다.

"너. 쟤 맨정신일 때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겔리온이란 남자에게 도발을 거는 디오스.

디오스는 실실 웃으며 말을 꺼냈지만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맙소사~ 제 정신이냐? 장난치는 거지? 그것도 이 술주정뱅이랑? 하하하하하하하하."

겔리온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잔뜩 떠올랐다.

오히려 그의 말이 너무나도 황당하다는 듯 웃음이 터져나오는 겔리온.

"네가 이기면 내가 아무 말도 안 할게. 왜~ 한 번 해봐~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

"......"

"어이~ 젊은 친구. 내일 술이 깨고 여기 이 친구와 한 판 해봐. 그럼 자세히 얘기를 해주지."

테이블은 여전히 두 동강이 난 채였다.

그리고 디오스란 남자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체스에게 제안을 던지고 있었다.

술에 진탕 취한 상태의 체스였지만 그래도 디오스의 말은 귀에 쏙쏙 박혔다.

"쥐그음 요기서어 화좌아아!"

체스는 비틀거리며 지금이라도 당장 싸울 기세로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디오스의 대답은 노.

지금 자신이 한 제안을 따르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말에 체스는 마지못해 동의를 했다.

디오스는 겔리온을 쳐다보았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표정이었다.

"겔리온~ 내일 아침 좋지? 후후후."

"쳇..."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겔리온.

그의 인상은 똥 씹은 것 마냥 잔뜩 찌그러져 있었다.

거부할 수도 없는 게 디오스는 가장 실력이 좋은 녀석이기도 했고 이 파티의 실질적인 리더이기도 했다.

그러니 더러워도 승낙을 할 수 밖에...

"그럼 내일 아침 9시 술집 앞이다. 꼬맹아~"

디오스가 실실 웃었다.

체스도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겔리온은 디오스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디오스가 왜 저런 식으로 듣보잡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며 저 머릿속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퍼억-

우당탕탕-

기분을 완전 잡쳐버린 듯 거칠게 의자를 걷어 찬 겔리온은 먼저 술집의 문을 홱 열어젖히고 나가버렸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떠난 겔리온을 보며 디오스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런 후 체스의 어깨를 두들기며 내일 보자는 말만 남긴 채 나머지 일행들과 농담을 따먹으며 가게를 나갔다.

"아이궈... 뭐리야... 준뷔해야쥐."

체스는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몸의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아침 9시.

9시에 이 곳으로 오려면 술은 더 이상 먹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체스는 아까 들은 것만큼은 어떻게든 기억을 해려는 뽐새였다.

"그래~ 잘 생각했다. 얼른 가서 쉬어라. 체스야."

내심 큰일이 날까 잔뜩 염려하던 헨리였다.

그나마 테이블 하나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라 생각한 헨리는 체스의 등을 툭툭 두들기며 떠밀었다.

으으...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던 만취상태였던 체스는 그대로 두 동강난 테이블에 쓰러졌다.

지나치게 마신 탓이었다.

"하아..."

한숨을 푹 쉬는 헨리.

저 무거운 걸 또 옮길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듯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

침묵을 지키던 다른 손님들이 그제야 헨리에게 쭈뼛쭈뼛 다가왔다.

"아. 몰라~ 이거나 좀 같이 들어! 멀뚱멀뚱 보고 있지만 말고! 으휴. 나중에 다 청구해버릴테다. 이 녀석."

헨리는 쓰러진 채 뻗어있는 체스는 본체만체한 채 혼자 투덜거리며 부서진 테이블을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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