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2화 (12/249)

#12

엘윈마을(3)

"크흡. 술~ 술~"

체스는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오늘 열리기로 했던 체스의 빚 탕감 축하파티는 전면 취소되었다.

마을에 돌아올 때만 해도 완전 축제 분위기였던 체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던 낮의 분위기는 한여름의 꿈마냥 사라지고...

지금은 되레 토마스와 몇 명의 주민들이 위로를 해주는 상황이었다.

크으~

"꺼억~ 힘을 내~ 달란트가 그렇게 하고 갔을 줄 누가 알았냐?"

토마스는 안나에게 겨우 허락을 받아 체스와 함께 있었다.

아마 빚이 그대로 탕감이 된 것이었다면 밤의 외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바로 그들의 2세를 위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전부터 달달 볶인 D-day가 바로 오늘이었지만...

체스의 사정을 들은 안나는 되레 얼른 안 가고 뭐하는 것이냐며 그의 외출을 허락해 주었다.

그리하여 중간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체스 덕분에 이 시간에 겸사겸사 술을 즐기게 된 토마스였다.

"아뉘~~ 뫌이 되냐구요~~ 윌억이뤠요~ 윌억! 윌억 골듀를 어똫게 가퐈요?"

체스는 혀가 꼬부라진 채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푸휴휴휴휴~

그는 반쯤 실성한 사람마냥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 젊잖아~ 괜찮아~ 괜찮아~"

체스가 풀린 눈을 들어 방금 말한 사람을 홱 쳐다 보았다.

정육점의 토마스다.

"약 올뤼는 거웨요??? 눼에에???"

"으헤헤~ 아니야~ 그냥 오늘은 다 잊고 마시자 마셔~"

하지만 그 정도의 위로는 체스를 달래줄 수가 없었다.

"이뤈 조기가튼 인쉥~~~~ 5년이나 힘둘게 윌햄는뒈~~"

털썩-

떼구르르-

그리고 체스는 필름이 끊겼다.

****

짹짹짹짹-

창틀에 앉아 지저귀는 새 한 마리가 아침이 왔음을 알린다.

"으윽...아이고. 머리야..."

체스가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그는 어제의 숙취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3병 정도까지 마신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 후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 뭐야. 이 시간에..."

우왁-

쿵-

침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땅바닥에 엎어진 체스.

아직 술이 덜 꺤 듯했다.

머리는 온통 까치집에 두 눈이 퉁퉁 부은 체스는 아픈 무릎을 문지르며 비틀비틀 현관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제인이 서있었다.

"...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어제 말을 안 한 게 있어서 잠시 들렀어~"

"...네?"

"자. 받아~"

그녀는 체스에게 서류를 하나 넘겨 주었다.

또다른 서류다.

거기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문구가 하나 적혀 있었다.

[매월 말일이 상환일입니다. 모든 마수 사냥꾼 조합에서 상환이 가능합니다. 만약 제때에 납입이 되지 않을 경우 추심조가 찾아갈 것이며 가산금이 추가됩니다.]

부들부들-

서류를 든 체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제의 일은 역시 꿈이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게 꿈일 줄 알았건만 빚은 여전히 1억G가 남아있다.

"지금처럼만 하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거야~ 힘내. 파이팅!"

자기 할 말만 쏙 하고 사라진 제인.

하...얄밉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일.

그녀가 떠나고 체스는 쓰라린 배를 누른 채 테이블에 가 앉았다.

다시 한번 서류를 꼼꼼히 보았지만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야반도주라도 해야 하나?'

"으으... 안돼. 아마 틀림없이 추심조가 날 찾아올 거야..."

자신의 아비라는 작자가 진 빚은 마수 사냥꾼 조합에서 빌린 것이었다.

이 정도 돈을 한꺼번에 빌려줄 수 있는 곳은 그 곳 밖에 없었다.

인장도 떡 하니 찍혀있고.

그리고 추심조.

이들의 추심조는 정말이지 부모님이 안 계실 정도로 지독한 녀석들이라는 악평이 자자했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상환일에 조금이라도 늦을 경우 잠자리에까지 찾아온다나 뭐라나...

혹여라도 도망을 칠 생각도 하면 안 된다.

도망을 치게 되면 추심조가 자신을 쫓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는 현상금이 걸리고 또 인생이 비참해지겠지?

아마 1억 G의 빚이니 현상금도 무시 못할 정도가 될 것이다.

마수 사냥꾼인 자신이 현상금이 걸린다는 건...

대륙의 모든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도 사라진다는 말과 진배 없었다.

"아아아아악! 어떻게 해야 되냐고..."

체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임에도 1/3 정도의 손님이 들어찬 술집.

체스는 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빚이 또 생겼다는 것을 안 후 계속 저 상태다.

카운터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한 명의 퉁퉁한 남자가 술잔을 닦으며 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의 시선은 체스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다.

체스가 술집에 온 지도 어언 사흘이 지났다.

그는 마지막 사냥이 끝난 후 눈만 뜨면 이 곳에 와서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뭐라 참견을 했을 헨리도 그의 심정을 알기에 별말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요귀 한 좐 더~"

"후... 벌써 몇 잔 째냐?"

잔소리를 하면서도 헨리는 한숨을 푹 쉰 후 술을 한 잔 더 내어왔다.

"으헤헤~ 조쿠만~"

잔소리를 하거나 말거나~

혀 꼬부라진 소리는 그의 입에서 리듬을 타고.

역시나 만취였다.

가끔 술집에 온 손님들 중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반갑다며 말을 걸어 왔었다.

하지만 그의 등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저 어둠의 기운...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런 체스에게 뭐라 말을 건네겠는가.

왜 저러냐며 헨리에게 눈짓을 보냈지만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내젓는 헨리였다.

그래도 다른 손님들 보기에도 민망하니...

"...체스. 그래도 뭐라도 할 생각을 해야지...?"

"헨리. 망할 아부찌가 말이쥐~ 비즐 말이야~ 1억G야~ 말이뒈에에에?""

"......"

후...

애가 폐인이 되어버렸네.

헨리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한 대 쥐어박을까도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통할 애였다면 애진즉 그렇게 했겠지.

그리고 또 하나 마음 한켠에는 측은함도 없자나 있었다.

'하긴 지가 써보지도 못한 빚이 불쑥 나타나면 참 그렇긴 하지. 에휴. 네 인생도 참 굴곡지다야.'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 헨리는 들고 있던 행주로 손을 닦았다.

"그나저나 이놈에 지지배는 도대체 어디에 가서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내 이놈에 지지배를 그냥..."

괜히 할 말이 없어진 헨리는 엉뚱한 곳에다 화풀이를 했다.

****

"하아..."

깊은 한숨이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으휴..."

한숨은 전염이라도 된 듯 술집 여기저기서 한숨이 툭툭 터져 나왔다.

'오늘 진심 문을 좀 닫아야겠는데...'

체스의 저 꼴을 보며 심각하게 영업종료를 고민하던 찰나.

벌떡-

갑자기 체스가 젖혀졌던 고개를 벌떡 들었다.

비틀비틀-

체스는 몸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취한 듯 몸을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가서 좀 쉬어~ 빨리 가는 게 좋지."

일어나는 체스에게 헨리가 어깨 너머로 한 마디 툭 던졌다.

이제야 집으로 돌아가나 싶어 체스가 떠난 테이블을 정리하는 헨리.

허나 헨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문이 아니었다.

대신 그가 향한 곳은 불빛이 잘 닿지 않는 술집 구석의 테이블.

심하게 비틀거리는 걸음이었지만 어찌어찌 그 곳까지는 다다른 체스.

'아이고오오오~'

이거 싸움이다.

헨리가 놀라 체스에게로 달려가려는 찰나.

체스가 테이블에 두 손을 타악 내리쳤다.

그리고는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돠쉬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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