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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채무 탈출기-11화 (11/249)

#11

엘윈마을(2)

그녀가 460 G를 책상 위에 턱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그리고 체스의 이름이 적힌 차용증에 완료라는 큼지막한 도장을 쾅 찍었다.

체스는 그녀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돈을 꺼내고 서류에 도장을 찍는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마다 체스의 몸이 움찔움찔거렸다.

"자~"

끝!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체스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눈에서 5년 간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눈물이 점점이 되어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엄마를 보낸 지 5년.

이걸 정리하는데 딱 5년이 걸렸다.

정말 마수 사냥꾼을 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5년이 아니 5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후..."

오늘은 정말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는 거다.

취하면 또 어때.

이렇게 기쁜 날은 술과 함께 해줘야 제 맛이지.

응?

잠깐만.

...가만...

기쁨에 취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체스의 머릿속에 의문점이 하나가 생겼다.

뭔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묘하게 그의 신경을 긁는 말 한 마디.

'이 빚은...?'

"저... 아까 '이 빚은' 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그 말은 무슨 말이에요?"

"아~ 그거? 실은 빚이 하나가 더 있어~ 나도 몰랐는데 튀어나왔지 뭐야~ 그걸 보고 혹시나 싶어서 확인해 봤더니 진짜더라고."

덤덤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제인.

체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체스는 제인이 갑자기 미쳐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빚이... 하나가 더 있다니?"

드륵-

제인이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에게 건네지는 서류.

체스는 얼른 서류를 들어 그것을 보았다.

[차용증]

[나. 체스의 아빠인 달란트는 대금 100,000,000G를 빌린다.]

[혹시 나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나의 아들인 체스가 이 빚을 대신 탕감한다.]

!!!!!!

황급히 차용증에 찍힌 날짜를 보니 엄마가 죽고 얼마 되지 않은 날짜였다.

"이게...무슨...이... 이게 다 얼...마야...?"

1억 G.

분명히 차용증에 쓰여진 숫자는 0이 8개.

1억이라는 숫자였다.

천문학적인 금액.

체스의 동공이 급격히 확대되고 서류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서류는 분명히 자신의 아빠인 달란트의 글씨가 맞기는 했다.

하지만...

엄마가 죽고 자신을 내팽겨치고 사라진 아빠가 아닌가?

왜 그 인간의 빚을 자신이 갚아야 하지?

"이...이... 가족도 내팽겨치고 간 사람이 도대체!!! 아니 이게 말이 돼요...?"

"뭐 난 잘 몰라~ 내가 물어보니 이건 네가 전의 빚을 다 탕감하면 주면 된다던데? 아~ 그리고 이건 마수 사냥꾼 협회에서 정식으로 발행된 거니까 위조나 이런 건 아냐."

경악스러웠다.

엄마가 졌던 빚은 50만G였다.

그걸 갚는데도 도합 5년이라는 시간을 소비했건만 이번에는 1억G다.

체스의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아빠라니.

자신이 엄마를 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기도 전에 집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빚을 지고 떠났다니?

이것은 심지어 엄마도 모르던 일이었다.

하긴 빌린 날짜가 엄마가 죽은 뒤였으니.

"그럼 잘 부탁해~"

"자...잠깐만요! 이건 말이 안 돼요!"

체스가 책상을 탁 쳤다.

"... 체스. 네 사정은 알겠다만은 이미 모든 건 다 확인했어. 이거 진짜야. 그리고 갚아야 하는 것도 맞아. 혹시나 다른 뭔가가 있으면 알려줄게."

제인은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자신의 업무를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체스는 멍한 표정으로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단지 믿을 수 없는 건 이제야 끝났다고 생각한 채무가 다시 시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

그는 할 말을 잃은 채 서류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참을 제자리에 서있었다.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결국 터져 나왔다.

의뢰소가 떠나갈 정도로 고함을 지르는 체스.

그로부터 체스의 울부짖음은 한참을 더 이어졌다.

그 탓에 제인에게서 쫓겨난 건 덤이다.

****

"크흡. 술~ 술~"

체스는 이미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오늘 열리기로 했던 체스의 빚 탕감 축하파티는 전면 취소되었다.

마을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완전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체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낮의 즐거웠던 분위기는 한여름의 꿈 마냥 사라지고 지금은 되레 토마스와 몇 명의 주민들이 위로를 해주는 상황이었다.

"어휴... 쟤 그만 좀 먹여~"

술집 주인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한 마디 툭 던지고 갔다.

이미 체스는 만취상태.

사고나 안 쳐야 할 텐데...

으휴...

그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정이야 딱하지만 말이다.

그 사이 술은 계속해서 목구멍을 넘어가는 중이었다.

크으~

"꺼어어억~ 힘을 내~ 달란트가 그렇게 하고 갔을 줄 누가 알았냐?"

토마스는 안나에게 겨우 허락을 받아 체스와 함께 있었다.

아마 빚이 그대로 탕감이 되어 체스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면 이렇게 오늘밤의 외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바로 그날.

자신들의 2세를 위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체스의 사정을 들은 안나였다.

그녀는 2세도 중요하지만 그건 내일이라도 괜찮다며 되레 토마스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였다.

자신을 좀 그렇게까지 생각을 해주던가...

뭐 여하튼 얼른 위로를 해주라며 오늘만 특별히 외출의 허락을 받은 토마스였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체스 덕분이긴 했으니.

"아뉘~~ 뫌이 되냐구요~~ 윌억이뤠요~ 윌억! 윌억 골듀를 어똫게 가퐈요?"

체스는 혀가 꼬부라진 채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을 했다.

푸휴휴휴휴~

그는 반쯤 실성한 사람마냥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도돌이표 마냥 몇 시간 째 계속 같은 것만 무한반복 중인 체스였다.

"아직 젊잖아~ 괜찮아~ 괜찮아~"

체스가 풀린 눈을 들어 방금 말한 사람을 홱 쳐다 보았다.

정육점의 토마스다.

"약 올뤼는 거웨요??? 눼에에???"

"으헤헤~ 아니야~ 그냥 오늘은 다 잊고 마시자! 마셔~"

"이뤈 조기가튼 인쉥~~~~ 5녀니나 힘둘게 윌햄는뒈~~"

털썩-

떼구르르-

체스는 술을 마시던 채 테이블에 그대로 뻗어 버렸다.

"......"

"우리도... 그만 갈까...?"

"...... 집에 가지? 자네는 괜찮나?"

"...안나도 걱정하니..."

체스와 함께 술을 마시던 모두는 혹여나 체스가 다시 주정을 부릴까봐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뷔이이잊......"

테이블에는 체스 여전히 혼자 대자로 뻗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벌떡-

갑자기 체스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풀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체스.

자신과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들 중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뭐야아아... 돠 어뒤 가쒀어..."

하지만 그것도 순간.

체스는 이내 다시 테이블에 쭉 뻗으며 정신을 잃어갔다.

음냐음냐-

"아하하하~ 도니돠~~~~"

이미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버린 체스.

꿈 속에서나마 그렇게나 바라마지 않던 돈의 바다에 빠져 헤엄을 치고 있는 듯한 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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