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엘윈마을(1)
체스는 이제야 엘윈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조그마한 마을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있을 것은 다 있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짐이 한 보따리 들려 있었다.
마수들을 정리하고 들고 오는 것이었다.
무거울 법도 하건만 그에게서는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싱글벙글인 그의 표정.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바로 체스였다.
마을 입구로 그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반가운 듯 인사를 건낸다.
"여~ 체스~"
"흐흐흐. 체스 돌아왔구나~"
"네가 없으니 마을이 다 조용하더라야~"
체스는 엘윈 마을에서 나름 유명 인사였다.
엘윈 마을 출신의 유일한 아이언 등급의 마수 사냥꾼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를 알던 사람들이야 그를 늘 좋아했다.
그의 집안 사정이며 모든 것을 알고 있기도 했고 안쓰러운 면도 없자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은 달랐다.
처음에는 그의 험악한 인상과 큰 몸집 때문에 체스를 슬금슬금 피해다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마수 사냥꾼을 시작하며 체스는 마을 사람들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주머니에 돈이 실리고 생활이 안정이 되어야 좀 당당해지는 법이다.
빚을 갚아가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게 되자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나름의 싹싹함도 보이게 된 체스였다.
그렇게 바뀌어 간 체스는 이내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고 마을 주민들 또한 그의 성실함에 마음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처음보다 더욱 유명해진 상태였다.
이제는 엘윈 마을에서 체스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빚을 갚기 위해 마수 사냥꾼을 하는 체스.
그리고 5년 째 아이언 등급.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수를 사냥하며 다닌다.
등급은 고만고만하지만 그 많은 빚을 차근차근 갚아가는 체스는 당연히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저거 봐~ 체스야 체스~"
"휘유~ 체스~ 그거 다 혼자 잡은 거야? 이제 남은 빚을 다 깔 수 있냐? 분명 이번이 마지막이랬지?"
정육점 주인인 토마스의 목소리다.
"으흐흐~ 이제 끝이에요~ 아마 오늘이면 끝이 날 거에요. 크흐흐."
"여~ 축하한다~ 오늘 한 잔 걸쳐야겠는데?"
"좋죠~~ 오늘은 제가 쏠게요~ 빚 다 갚은 기념이에요. 그 동안 얻어먹은 것도 다 갚아아죠~"
"으헤헤헤~ 좋아~ 오늘은 그럼 술집에서 집합이다~~!"
딱!
"당신!!!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요???"
정육점 안에서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토마스의 부인인 안나다.
토마스는 안나가 던진 무언가에 정통으로 머리를 맞았는지 머리를 감싼 채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으으... 여...여보... 오늘 그래도 체스가 빚을 다 까니... 축하라도..."
"이 사람이! 내가 당신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그 핑계로 또 술이 곤죽이 되어서 들어오려고!"
"아...아니야. 여보..."
토마스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절대 그렇지 않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어느 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흐흐~ 안나 아주머니~ 오늘은 더 예뻐지신 거 아니에요? 아주머니도 같이 오세요~"
"어머~ 체스. 이 이가 한 번도 해주지 않는 말을... 넌 어쩌면 그렇게 섬세하니? 이제 연애만 하면 되겠구나~"
안나가 홍조를 띈 볼을 감싸며 수줍게 말을 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체스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갑자기 어깨가 축 처지는가 싶더니 미소가 사라졌다.
연애...
아마 체스에게 있어 영원한 숙제가 될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아니~ 당신은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아~참참참. 미안하다. 체스~ 이 아줌마가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꼭 소개시켜 줄게~ 걱정마~"
체스는 올해 20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든 체스가 말을 걸면 도망을 가 버리니...
왜 도망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자신의 빚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은 누군가를 사겨본 적은 없지만 체스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가능하겠지!
"꼭 갈게~~ 체스~~ 아야야~"
"어딜!"
꽈아악-
체스에게 꼭 간다며 손을 흔들던 토마스는 이내 안나에게 귀를 잡혔다.
그리고 그 길로 다시 정육점 안으로 끌려간 토마스는 그로부터 해질녘까지 가게를 벗어나지 못했다.
****
체스는 의뢰소에 도착했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체스에게 아는 척 손을 흔들어 준다.
"여~ 체스~"
"으헤헤~ 오늘이구만?"
의뢰소 안의 사람들은 간간이 휘파람을 불며 체스가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반겼다.
일일이 거기에 응답을 해주며 접수대로 향하는 체스.
일종의 팬서비스였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어머~ 체스~"
제인이 체스를 반갑게 맞이했다.
"이거 정리해 주세요~"
힘든 일을 끝내고 왔건만 체스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터억-
체스는 의뢰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자신이 잡은 마수의 가죽과 마정석을 함께 꺼냈다.
"호오~ 대단하네? 이걸 혼자서~ 역시 너에게 딱 맞는 의뢰였어. 어디 보자... 내가 보기에 아이언 등급 중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 너 밖에 없을 거야. 분명히. 호호호."
말을 하며 제인은 체스가 내려놓은 물품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체스가 잡아온 것들은 우르브독의 마정석과 가죽이 각각 23개였다.
등급이 낮은 마수의 마정석이라 개당 100 G, 가죽이 장당 20 G로 계산되었다.
거기에 현상금 200 G까지 하니 총액은 2960 G였다.
"보자... 남은 게 도합 2500 G였으니 460 G를 남겨주면 되겠네. 잠시만 있어봐~ 곧 줄게."
"...그럼... 이제 빚은... 다 끝난 거죠...?"
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인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까지 떨어본 적이 또 있었던가?
지금의 이 순간은 체스가 처음 마수 사냥을 나갔을 때보다 심장이 더 떨리고 있었다.
제인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도톰한 입술이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상아빛의 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시선은 온통 제인의 입에 쏠려 있었다.
기쁨을 못 참겠다는 듯 입꼬리는 실룩실룩거리며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게 여간 기대하는 눈치가 아닌 듯했다.
제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끝만 약간 드러난 새하얀 치아.
꿀꺽-
'어서! 어서! 어서!'
체스가 여러 의미로 침을 삼켰다.
5년 간의 노동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아, 나대지 마라...
진정하렴...
"응. 축하해~ 이 빚은 끝났어~ 고생했어~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