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9화 (9/249)

#9

과거(3)

****

드디어 체스가 입을 열었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아니오. 전 그냥...마수를 잡으려는 사람인데요?"

무기도 하나 들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냐며 되레 반문하는 체스다.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원.

"......?"

그녀가 체스의 몰골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체스가 들고 있는 무기는 아무 것도 없었다.

보통의 마수 사냥꾼들이라면 자신이 애용하는 무기 정도는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법.

"...아...네... 네??? 흠..."

그녀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프로로서의 첫 번째 실수.

괜히 멋쩍어진 그녀는 다른 말은 접어두고 체스에게 얼른 안내를 했다.

"마수 사냥꾼이 바로 마수를 잡는 사람들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시는 것 같으니 우선 의뢰소 안쪽에서 정식으로 마수 사냥꾼의 등급을 받고 등록을 하시면 되요. 등록이 끝이 나면 여기로 와서 의뢰를 받으시면 되구요."

"아~ 네. 감사합니다."

친절한 그녀의 설명에 체스는 감사인사를 한 채 의뢰소의 안쪽으로 갔다.

"아유... 사람 헷갈리게 하고 있어.... 으..."

그녀는 모든 탓을 체스에게로 돌리며 괜히 혼자 투덜거렸다.

****

체스가 안쪽으로 들어가니 그 곳에는 의뢰소 직원들과 현직 마수 사냥꾼들이 몇 명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줄을 길게 늘어선 채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뭔 놈에 줄이 이렇게나 길어..."

이 조그만 마을에도 어찌나 마수 사냥꾼이 되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줄은 한참 길었다.

직업이 시대를 대변한다더니 다들 먹고 살기는 힘든가 보다.

마수 사냥꾼이 되는 시험은 간단했다.

칼질을 할 줄 아느냐?

힘은 어느 정도 되느냐?

무기는 무엇을 쓸 줄 아느냐?

뭐 이런 것들이었다.

시험이 너무 간단하길래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간단한 게 최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도시는 조금 다르다고는 했지만.

하긴 이 곳은 작은 마을이니 굳이 대도시를 따라할 필요가 없지.

체스는 줄을 선 채 자신의 순번을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들었다.

드디어 다가온 체스의 순번.

체스가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내심 긴장한 듯 그의 몸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험이라는 것을 보는 자신이 아닌가.

오오오오-

주변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체스의 몸집 때문이었다.

저 정도면 분명히 어마어마한 마수 사냥꾼 등급이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드디어 여기 이 마을에서도 골드 이상의 마수 사냥꾼이 등장하는 것인가!

모두의 생각은 그러했다.

높은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 있다는 것은 곧 그 마을의 자랑이었으니.

같은 참가자들의 눈은 체스의 움직임만 쫓고 있었다.

기대가 되기도 하고 경쟁자이기도 했으니.

우선 첫번째 시험은 힘의 측정.

어른 상체만한 돌을 어느 정도까지 옮길 수 있냐는 것이었다.

돌은 옆 심사장에 놓여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들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큰 크기의 돌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설령 시도를 하더라도 꿈적도 하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심지어 시험을 보는 사람들도 끙끙대기만 할 뿐 2~30센티도 겨우 옮기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힘 만으로 마수 사냥꾼의 모든 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마수 사냥꾼으로서의 최소한의 능력은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그렇기에 1차 시험에서 가장 기본적인 힘의 측정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 줄서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1차 시험에서 탈락을 했다.

돌의 크기도 크기거니와 그만큼 기본도 안 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또 한 명의 남자가 끙끙거리며 한참을 돌을 끌어안은 채 씨름을 하나 싶더니 지친 기색으로 돌에서 손을 뗐다.

"헉헉헉..."

'이번에도 다 꽝이구만. 하긴 이런 작은 마을에 뭘 기대를 하겠어. 그나저나 언제 끝나려나~ 지겨워 죽겠네.'

합격을 판정하는 심사위원이 또 다시 돌을 들지 못해 탈락하는 수험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자~ 다음~"

****

드디어 다가온 체스의 순번.

그는 돌 앞에 섰다.

'오호. 제법 힘 꽤나 쓰겠는데?'

심사위원의 눈이 반짝 빛이 났다.

돌 앞에 선 체스의 모습을 보니 절대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 몸집 정도라면...

팔뚝도 굵은 게 힘도 있어 보이고.

잘 하면 이 마을에서도 꽤나 높은 등급을 받는 마수 사냥꾼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탁탁-

손을 가볍게 털며 준비운동을 하는 체스.

휘이이이익~

와아아아아!!!!

체스가 돌을 들 준비를 하자 사람들에게서 휘파람과 함성이 흘러 나왔다.

그들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과연 어느 정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새롭게 등장한 거구의 청년이 앞으로 보여줄 모습은 모두를 기대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골드! 골드! 골드!"

"다이아! 다이아! 다이아!"

한 마음이 된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울려퍼진다.

합격점은 30센티 이상.

하지만 그라면...

그라면 신기록을 달성할지도 모른다.

현재까지의 최고 기록은 브론즈 등급을 받았던 사람이 옮긴 60센티였다.

'뭐라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들려오는 함성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일단은 이것부터.

으라차압-!!!!

힘찬 기운소리가 체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끄으으으으응차아아아아-

용 쓰는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고 돌이 조금 들리더니 먼지가 툭툭 떨어졌다.

사람들의 눈이 기대감으로 점점 커지고.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

어느 새 체스의 이마에서는 꽤나 용을 쓴 탓인지 힘줄이 툭툭 불거지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이런 씨~~~~~~'

끄으으응-

'으으으으아아아아!!!!!!'

젖 먹던 힘까지 몽땅 끌어내는 중인 체스.

뽕-

너무 힘을 쓴 탓인지 그만 약간 새어나와 버렸다.

'아차...'

"............"

사람들이 내지르던 함성이 쏙 들어갔다.

그리고 힘이 쭈욱 빠진 체스가 돌을 투욱 내려놓았다.

터업-

"헉헉헉헉..."

이번에는 사람들에게서 함성 대신 비난이 터져나왔다.

우우우우~~

"뭐야~~"

"야~ 덩치가 아깝다야~"

사람들에게서 터져나오는 비난.

하지만 체스의 입꼬리는 말려 올라가 있었다.

게다가 정작 본인은 만족한 듯한 얼굴이었다.

어쨌거나 붙으면 장땡 아닌가?

대충 옮긴 거리를 보아하니 합격점은 된 듯했다.

탁탁-

손을 탁탁 터는 체스.

체스가 돌을 옮긴 거리는 고작 40센티 밖에 되지 않았다.

힘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은 바로 지구력.

지구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체스가 어디 이런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나 있었던가?

오히려 40센티나 옮긴 것을 칭찬해줘야 할 판이었다.

"에이~ 뭐야. 덩치가 아깝네."

"역시 이번에도 글렀나 보네."

"우리 마을에서는 언제쯤 골드나 이런 등급이 나오려나... 에휴..."

체스의 1차 시험의 결과에 실망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저거 딱 빛 좋은 개살구구만?"

"그러게. 기대 좀 했더니만 영 그렇네 그래."

그래도 합격을 했으니.

체스는 결과에 나름 만족한 듯 스스로를 칭찬하며 다음 시험으로 향했다.

다음은 칼질과 다룰 수 있는 무기에 대한 시험.

나머지 시험의 성적도 역시나 뭐 그저 그랬다.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로 합격점을 받은 체스.

그렇게 체스는 마수 사냥꾼이 되었다.

[아이언]

이것이 체스가 처음 받은 마수 사냥꾼 등급이었다.

제일 낮은 등급의 마수 사냥꾼이었지만 자기 손으로 무엇인가를 했다는 성취감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쁜 체스였다.

"이제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렇게 마수 사냥꾼이 된 체스는 개처럼 일하며 하나씩 의뢰를 수행해 나갔다.

단지 목표는 하나.

엄마가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처음에는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체스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의뢰를 수행했고 지금껏 살아 남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체스의 5년이 결실을 맺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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