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8화 (8/249)

#8

과거(2)

체스는 삶의 의욕마저 잃어 버렸다.

며칠 끼니도 굶은 듯 다 죽어가는 꾀죄죄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배회하던 체스.

힐끔힐끔 걸어가는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 사람이. 쯔쯔쯔.'

대부분의 사람이 아마도 공통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잠시.

어디 거렁뱅이 쯤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이내 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런 시선을 못 느끼는 건지 신경쓸 여력이 없는 건지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던 체스.

그의 눈에 게시판에 무언가를 붙이고 있던 관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또 어떤 의뢰가 붙었나싶어 보고 있었다.

체스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얼른 사람들을 밀치고 게시판 앞으로 갔다.

"아~ 뭐야?"

"뭔데 자꾸 뒤에서 미는 거야?"

밀쳐진 사람들로부터 짜증이 터져나왔다.

갑작스레 나타난 불청객에 웅성거림은 커져갔지만 소란의 중심지로 옮겨진 시선은 이내 거둬들여졌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리고 보이는 저건 진짜 건드리면 안 되는 똥 같았다.

못 먹어서 도드라진 광대에 악취마저 풍기는 체스였다.

"...거지인가봐..."

"어우... 냄새..."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코를 틀어막은 채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떠드는 소리는 체스의 귀에도 쏙쏙 박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오로지 게시판.

무언가에 홀린 듯 그는 정신없이 게시판을 보았다.

게시판에는 마수의 사냥을 의뢰하는 여러 개의 의뢰서가 붙여지고 있었다.

그 곳에는 E급 의뢰부터 C급 의뢰까지 모든 의뢰가 다 올라와 있었다.

더 큰 곳에 가면 당연히 더욱 고급의뢰가 있겠지만 여기는 작은 마을이니.

마수... 마수라...

마수를 잡는다라...

이거다!

빚은 갚을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다른 할 일은 없고.

죽게 되면 그걸로 그만.

오히려 쉽게 죽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솔직히 보수도 다른 일에 비해 아주 좋았다.

자신의 덩치와 힘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 이상 최적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이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옆의 사람에게 체스가 물었다.

"저 쪽에 의뢰소에 가서... 헉!"

고개를 돌리며 말을 하던 사람은 체스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체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코를 틀어막는 그 남자.

"뭐요?"

"아..."

체스에게 있어 이런 반응은 익숙하다.

자신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화를 실컷 내던 사람도 목소리가 착해지며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오늘은 뭐...

그 동안 관리를 좀 안 했더니 유난히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 그러고 보니 며칠을 씻지 않았구나... 그래도 꾸미면 나름 귀염상이니...'

체스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을 슥 만졌다.

꺼칠꺼칠한 수염이 만져졌다.

"이건 안 씻어서 그래요. 오해하시면 안 되요. 그리고 빨리 저걸 하는 방법이나 가르쳐 줘요."

"아...네... "

코를 틀어막은 남자는 천천히 아주 친절하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수들에 대한 일장연설에서부터 마수사냥꾼협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까지.

꽤나 시간이 걸린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전혀 바쁘지 않은 듯 하나부터 열까지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었다.

되레 그걸 듣던 체스가 간간이 하품을 할 정도였으니.

뭐 아름다운 세상에 딱 어울리는 감사한 사람이다.

그래. 저런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참 아름다운 법이지.

체스는 설명을 다 들은 후 꾸벅 인사를 했다.

이제야 뭔가 좀 알겠다.

그는 목표가 생긴 듯 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좋아! 의뢰소로 가야지! 아. 그 전에 좀 씻고 가야겠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몸을 정갈히 하고 마음가짐을 다잡아야 하는 법.

간만에 불타오르는 체스였다.

****

면도도 하고~

목욕도 하고~

한참 동안 묵혀두었던 때가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 아주 상쾌했다.

체스가 거울울 바라보니 그 곳에 서있는 듬직한 한 남자.

며칠을 내리 굶은 탓에 살이 좀 빠졌는지 볼살도 그렇고 옆구리살도 쏙 들어간 것이 보였다.

"캬~"

하지만 원체 큰 덩치라 거울을 거의 꽉 채울 정도다.

흐음... 만족스럽다.

이 얼마나 남자답게 생긴 얼굴인가?

"여기서 더 잘 생겨지면 큰일인데... 흠."

거울이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아마 쌍욕을 퍼붓고도 남을 정도의 소리였다.

광오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인 그는 그로부터 한참을 거울을 보며 자아도취에 빠져들었다.

뎅~뎅~뎅~

바깥에서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체스는 얼른 뒷정리를 끝낸 후 의뢰소로 달려갔다.

의뢰소는 마을의 중앙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늘상 지나다니던 곳이었는데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곳이다.

체스는 문 앞에 잠시 멈춰섰다.

이 곳이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겠지.

심호흡을 후우웁 크게 한 번 한 후 그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끼이익-

문을 열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의뢰소 안에는 사람들의 체취에 섞인 희미한 피향과 비린내 그리고 난잡한 냄새가 잔뜩 뒤섞여 있었다.

"보자... 우선 접수대로 가라고 했지?"

접수처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체스는 곧장 그녀에게 향한 후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세...헙."

****

그녀의 이름은 제인.

어느 새 마수 사냥꾼 조합에 소속되어 일한 지도 벌써 4년차가 된 접수원.

그렇기에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유동적으로 대처가 가능한 만능 접수원인 그녀였다.

4년 동안 숱한 마수 사냥꾼들을 보아온 그녀다.

마수 사냥꾼 조합에서의 일은 포커페이스가 필수였다.

이상한 이들도 워낙 많고 전 대륙 각지를 돌아다니는 마수 사냥꾼들이라 언제 어디서 어떤 클레임을 걸어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스가 처음 의뢰소에 온 바로 그 날.

그녀의 접수원 인생 4년 만에 인생 최고의 위기가 닥쳐왔다.

그것은 바로 체스를 만난 것.

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깨어져 버린 그녀의 포커페이스였다.

기겁을 하는 그녀.

체스를 본 그녀의 두 눈이 쟁반 마냥 커졌다.

'모...못 생겼어...'

그녀가 처음 본 체스는 참으로 자유분방한 얼굴이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조금만 더 성의를 가져달라며 기꺼이 기도를 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프로 중에 프로.

이 정도 일 따위는 금세 이겨낼 수 있지.

영업용 미소는 그녀가 가진 최고의 무기.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장착한 그녀는 어떤 용무로 온 것이냐며 체스에게 질문했다.

일단 그녀도 마수 사냥꾼 조합의 일을 통해 잔뼈가 굵은 프로 중에 프로이기에 그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저... 의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수 사냥꾼 아니세요? 그럼 모를 리가 없는데..."

"...그건 모르겠고 마수를 잡으려면 여기로 가라던데요?"

체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레 질문을 던졌다.

"흠... 그럴 리가 없는데..."

그녀는 말을 하며 체스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설마 하는 생각에 조심스레 물어본 질문이다.

좀 꾀죄죄해보이긴 했지만 그의 몸집이며 험상궂은 얼굴을 봤을 때에는 분명히 마수 사냥꾼이었다.

게다가 등록을 않은 채 마수 사냥꾼을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자신이 모르는 상급의 마수 사냥꾼일지도 모르는 일.

아마 협회 리스트를 보면 나올 것 같은데...

그렇다고 대놓고 꺼내서 찾아보기도 프로로서 쪽팔리는 일이고.

뭐 제인은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나이도 30대 정도로 보이니 경력도 어느 정도 쌓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체스가 어디 보통의 덩치인가.

그렇기에 아무리 프로인 그녀라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체스에게서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체스의 모습도 괜히 남에게 알려지는 게 신경이 쓰여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

'등급이 너무 높아서 말을 하기 힘든 건가 보다.'

그녀는 조심스레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골드나 다이아...이신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진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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