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과거(1)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가는 체스.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는 듯했다.
마수를 잡으러 올라가던 때와는 달리 내려오는 그에게는 전리품들이 잔뜩 들려 있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지 그의 발걸음은 매우 가볍게 보였다.
크크크큭-
자신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웃음이 픽픽 새어나왔다.
지난 날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게 용하다 할 정도였다.
잠시 걸음을 멈춘 체스.
그는 머나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 나 드디어 끝낸 것 같아...'
왠지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후...
얼마나 긴 세월이었나.
장장 5년을 거진 이 노동 만으로 힘겹게 살았다.
자신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었다.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을 정도의 집이 바로 체스네 집이었다.
마을에서도 제일 가난한 집을 뽑으라면 단연 1순위는 자신의 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엄마가 일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별다른 기술도 없는 자신의 엄마였기에 늘 허드렛일을 전전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한다고 한들 나아질 건 전혀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집안의 형편이 그렇게 어려운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 그놈에 빌어먹을 아빠 때문이다.
집안에 가장이라는 인간이 가장이 되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 놈에 인간이 일을 안 해!
도대체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다.
하다 못해 장사라도 하면 되겠건만 그런 건 또 자신에게 안 맞다나 뭐라나.
그렇다고 집에 붙어 있느냐.
그런 것도 아니다.
틈만 나면 집을 비우기 일쑤다.
여하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었다.
진심으로 이야기하지만 아빠라 불릴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이다.
정말이지 그 인간 때문에 엄마는 정말 밤낮으로 뼈 빠지게 일을 했다.
어릴 적에는 너무 좋았다.
아빠가 늘 놀아줬으니.
그러다가 문득 든 의문.
체스는 유난히 일을 하지 않는 아빠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는 일을 안 하느냐고.
하지만 엄마는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주지 않은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에 떠오른 한없이 따뜻한 미소.
아마 기억으로는 지금껏 본 것 중 제일 아름다운 엄마의 미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하튼 그것이 끝이었다.
그 이후로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은 없었지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가 일을 하다가 다쳤다.
다친 부분은 금방 낫긴 했지만 그것이 병을 만드는 원인이 된 듯 엄마는 시름시름 앓았다.
뭐 원래부터 건강한 편이 아니기도 했고...
그렇게 일상생활을 하는 날보다 병상에 있는 날이 더 많아진 정확히 5년 전 병마에 시달리던 엄마가 세상을 떴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그 날.
체스는 밖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왔다.
밖을 헤맨다고는 해도 어린 아이가 딱히 할 일이 무어가 있겠는가.
그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 뿐이지.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다소곳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 밥~"
"........."
"엄마~"
자신이 부르면 늘 우리 아들 이라며 대답을 해주던 엄마였다.
늘상 당연히 돌아오던 그 대답이 그 날은 이상하게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린 체스.
자나보다.
행여나 엄마의 잠을 깨울까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체스.
그리고 그 날.
알게 되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
엄마의 장례식은 소소하게 치뤄졌다.
주변의 지인 몇 명만 참가한 장례식이었다.
언제든 힘들면 찾아오라며 체스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 때에도 아빠는 자신의 곁에 있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한창 코찔찔이 시절 아빠가 무등을 태워줬던 것만 자신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체스는 고아가 아닌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죽으며 남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빚.
빚? 빚?? 빚???
빚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정의조차 모르는 체스에게 뜬금없이 빚이 생겼다.
엄마가 죽은 후 남긴 것은 정확히 50만 G.
만져보지도 못한 50만 G의 빚이었다.
말이 50만 G이지 그 돈이면 평범한 한 가족이 십수 년을 버틸 수 있는 돈인데...
언제 어디에 누가 그 많은 돈을 썼는지도 알 수 없는 그런 빚.
대신 남아 있는 것은 차용증 달랑 한 장.
그 와중에 아빠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덕분에 집 안의 빚을 자신이 모두 떠안았다.
그저 한숨만 푹 나왔다.
모르던 빚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충격인지 안 당해본 사람은 절대 모를 일이다.
엄마에게 그 큰 돈이 왜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딘가 필요했겠지.
하지만 문제는 당장 다음 날이 어찌 될 지도 모르는 삶의 체스였다.
매일 집에 빚쟁이들은 찾아오고 먹고 살기는 해야겠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알던 몇몇의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매일 얻어먹자니 면목도 없고...
체스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한 번 충격을 먹은 체스.
자신의 나이 15세...
빠른 애들은 이 나이대에 벌써 가정을 이룬다던데 부끄럽게도 진짜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저 밥이나 축낼 줄 알았지.
그런 자신을 도대체 누가 어디에 써주겠는가.
자신을 딱하게 여긴 식당에 취업을 했더니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손님들이 무서워한다며 나가라나 뭐라나.
...이건 뭐 도대체 빚을 갚을 방도가 없었다.
몸에 지닌 기술도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엄마가 남겨준 튼튼한 몸뚱아리와 힘 밖에는 없다.
맞아.
그럼 힘 쓰는 일을 하면 되겠네.
체스는 닥치는 대로 힘 쓰는 일만 골라서 했다.
하지만 이건 또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성인 남자의 절반.
일은 똑같이 하는데 0.5인 분의 일당을 받은 셈이다.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라는 게 바로 그 이유였다.
정말 딱 피똥을 싸기 직전까지 일을 해야 그나마 풀칠을 하니...
이대로라면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체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엄마를 따라 가자는 생각이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생각이기도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얼마나 철이 없었나 싶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자신이 죽으면 빚 따위 갚을 사람도 없으니 채무도 금방 사라질 것이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자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웃겼다.
자살이 세상에서 제일 쉽다는 놈은 분명히 입을 꿰매어 버려야 한다.
죽는 놈은 그렇게나 잘만 죽어 나가더니 정작 자신이 해보니 자살도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무에 목을 매달았더니 밧줄이 끊어지질 않나.
마차에 뛰어들어도 체스를 본 말이 제풀에 놀라 방향을 틀지 않나.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하... 세상살이 참 잣이네. 살기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