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6화 (6/249)

#6

우르브독(5)

촤아악-

일순 터져 나오는 우르브독의 피.

체스는 그 우르브독이 뿜어낸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흐흐흐."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듯이 계속해서 돌아가는 체스의 검.

그의 검은 몇 바퀴를 더 회전한 후에야 가까스로 멈춰졌다.

탁-

검이 땅에 꽂힌다.

체스의 손에 마수를 베어 넘기는 손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반쯤 무아지경에 빠진 채 실컷 움직였더니 머리가 다 어질거리는 듯했다.

"...허우... 힘들다."

얼마나 정신줄을 놓고 미친 듯 움직였는지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부터 온 몸까지 모든 근육이 아우성을 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과는 대만족.

더 이상 체스에게 달려드는 우르브독은 없었다.

남은 건 우두머리 한 마리.

그의 주변으로 미친듯이 달려들던 우르브독들은 우두머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우두머리 한 마리.

체스를 노려보고 있는 한 마리가 무리 중 마지막 마수였다.

****

크르릉-

마지막 남은 우르브독이 우뚝 섰다.

이제 자신이 나설 차례라는 것을 아는 듯하다.

우두머리는 무리들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하나씩 죽어가는 무리들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그의 몸이 움찔움찔거렸다.

꽤나 굉장하게 해치운 듯한 풍경이었다.

다른 건 괜찮지만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그간 꽤나 크게 키운 자신의 세력이 모두 사라졌다.

무리의 전멸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다.

무리를 짓는 우르브독으로서 구성원이 없다는 것은 갓난아기와 진배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게 다 어떻게 키운 세력인데.

기껏 정착을 했더니...

그의 눈에서는 분노가 철철 넘쳐나고 있었다.

체스도 우두머리의 시선을 흘리지 않은 채 무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병신 같이 꾸물대지 말고 얼른 덤비라는 눈빛이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꽃을 튀긴다.

뚝뚝-

체스의 대검에서도 그의 몸에서도 피가 점점이 떨어지고 있다.

온 몸에 피가 잔뜩 발린 그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의 모습 같았다.

씨익 미소를 짓는 체스.

시뻘개진 그의 몸에 대비해 새하얀 이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도대체 누가 마수이고 누가 인간이란 말인가?

하지만 어차피 죽거나 죽이거나다.

우두머리의 목 주변을 둘러싼 갈기가 칼날마냥 날카롭게 되어갔다.

다가올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마수의 입가에 드러난 이빨은 순간 비친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날카롭게 보이고 있었다.

다물지 않은 입은 곧이라도 체스를 물어뜯을 기세에 마수의 눈은 독기만 넘쳐난다.

"야야~ 빨리 끝내자~ 나도 이제 새 출발을 해야지~ 좀 도와주라~"

체스는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든 대검을 빙빙 돌렸다.

그의 몸에 자질구레한 상처는 있었지만 치명상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만 잡으면 이제 끝.

토벌 현상금과 여기 널부러진 수십여 마리를 정리해서 팔면 지긋지긋한 채무도 끝이 날 것이다.

체스는 입을 헤벌죽 벌렸다.

"끝을 보자! 자식아!"

****

때로는 팀을 이뤄 때로는 혼자 자신의 등급에 맞는 의뢰를 수행해 나갔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탓인지 각종 의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이 알기로는 지금 이 의뢰를 마지막으로 처리하면 분명히 엄마가 졌던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

크와와와아아아악-

마수가 힘차게 돌진을 했다.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땅이 움푹 패여 나간다.

한 번 한 번의 움직임에 모든 걸 건 모습이다.

지금 이 순간 저 우두머리에게는 자신 밖에 보이지 않겠지.

저렇게 모든 걸 내던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두머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체스는 그를 인정하며 자신의 검을 다시 한번 힘있게 움켜쥐었다.

자신의 키 만한 두꺼운 대검이다.

마수가 입을 잔뜩 벌린 채 그대로 체스의 목을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 들었다.

벌려진 입 안의 이빨이 자못 날카롭게 반짝였다.

크와아아아악-

한 입에 목덜미를 뜯어버릴 기세다.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게 그 녀석에게는 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게 우두머리의 마지막 공격이 되었다.

체스는 땅에 박혀 있던 대검을 재빨리 들어 위로 힘껏 쳐올렸다.

푸욱-

케엥-

마지막 남은 우르브독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느 새 체스의 대검이 마수의 입을 꿰뚫은 채 머리를 뚫고 나와 있었다.

대롱대롱-

마지막이다.

우두머리 마수는 그대로 절명이었다.

"끝났다."

그는 대롱대롱 매달린 마수의 시체를 잠시 보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대검을 땅에 내동댕이쳐버렸다.

터엉-

덩달아 마수의 시체도 땅에 내동댕이쳐졌지만 체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힘껏 뻗은 채 고함을 마구 질러댔다.

으라아아아아앗-!

"끝이다!!!!!!!"

이렇게 행복한 미소도 지을 줄 아는구나.

그의 얼굴에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미소가 귀 밑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다.

****

기쁨을 만끽하던 체스는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이제 남은 것은 뒷정리.

"자~ 하나씩 정리를 해야지~ 랄랄라~"

체스는 차근차근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보자~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체스는 일단 마수의 시체를 다 모았다.

그리고 한 마리씩 차근차근 쌓아둔 후 손을 시체의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손을 넣어 한참을 뒤지는 것이 무언가를 찾는 듯한 폼이다.

잠시 후.

"역시~ 이거지~"

반짝-

시체의 몸에서부터 빠져나온 체스의 손가락에는 무언가 반짝이는 보석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엄지 손가락의 한 마디 정도 될 것 같은 크기에 뭔가 이 세상 물건이 아닌 듯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것들은 마정석.

모든 마수들에게는 자신들의 마정을 결정체로 만들어 둔 것이 존재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수들에게만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등급에 따라 시장에서 꽤나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다.

등급이 높은 마수의 마정석 같은 경우는 거의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그럼 이 거래된 마정석들은 어디에 쓰이는가.

모든 마정석들은 인간의 생활의 일부가 될 정도로 밀접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보석으로서의 가치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모든 방면에서 사용되고 있었으니.

심지어 거리를 비추는 전등의 불빛조차 마정석을 사용하는 인간들이었다.

처음에는 마정석의 사용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마정석이 사용되면 될수록 인간의 생활은 더욱 편안함이 넘쳐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대하는 목소리는 점점 사그라들고.

그렇다면 그 많은 수요에 맞춰 마정석의 공급이 따라가느냐?

글쎄...

그것은 전혀 걱정할 바가 아니었다.

마수는 끊임없이 출현을 했으며 그에 따라 언제나 인간들이 생활하는데 있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마정석이 공급해 주었다.

게다가 요즘은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마수들의 출현이 잦았다.

그래서 유래 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마수 사냥꾼들이었다.

지금 체스가 잡은 마수들은 등급이 낮은 마수들이라 마정석의 크기도 작았다.

그래도 역시 마정석은 마정석.

값어치는 당연히 있다.

모든 마정석을 따로 챙긴 체스는 지치지도 않은 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시체를 하나씩 정리해 갔다.

슥슥- 삭삭-

"자르고~ 자르고~ 버리고~ 버리고~"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는 체스.

그는 필요한 부위는 부위별로 담는 등 익숙한 손놀림으로 해체 작업에 점점 속도를 붙였다.

정리를 다 하고 보니 도합 23마리.

"양이 넘치네. 한 무리라서 그런지 돈은 좀 되는데 가져가는 게 문제네..."

체스는 품 안에서 의뢰서를 꺼냈다.

[E급 퀘스트: 엘른 숲의 들개 무리 20마리 처리]

[보상금: 200 G]

"보자... 200 G에 23마리 가죽을 팔고 뼈와 이빨을 팔면... 오호... 돈이 더 남겠는데?"

종이를 움켜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보이는 체스였다.

이런 기쁜 일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는가!

드디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이 되는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꿈은 아니겠죠~~ 오늘 이 날이 온 것이~~"

잠시 의뢰서를 움켜쥔 채 흥분의 도가니탕에 빠져 있던 체스는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마지막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모든 게 끝이다.

그가 바라마지 않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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