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르브독(2)
숲 안에 펼쳐진 조그마한 연못 하나.
이 곳은 이 숲 속에 있는 모든 동물들의 휴식처이자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연못 앞에 펼쳐진 약간 널찍한 공터 하나.
숲은 숲 만의 룰이 있었다.
이 곳만큼은 유일하게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그렇기에 평소 같았으면 조그만 산새부터 토끼, 늑대 등 모든 동물들이 모여 있었을 터.
물론 지금도 모여있는 짐승들이 보였다.
단지 시체로.
휴식? 갈증의 해소? 쉼터?
응당 그랬어야 할 그 곳에 그딴 건 보이지 않았다.
그 곳을 지배하는 것은 평화 대신 날이 바짝 선 이질적인 감각과 낯선 경계 그리고 살기였다.
연못 주위 공터를 점령한 것은 들개의 생김새를 한 마수들.
그 무리는 마치 그 숲이 자기들의 것인양 유유히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 곳에서 유일하게 여유로은 족속들이었다.
하긴 이 숲 속에 자신들보다 강한 무리는 더 이상 없으니 당연한 것이려나.
그들은 이제 막 사냥이 끝난 듯 자신들이 사냥한 들짐승을 뜯어 먹으며 한가로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움찔-
짐승의 허벅지뼈를 가지며 장난을 치고 있던 마수 하나가 갑자기 귀를 쫑긋거렸다.
고개를 확 치켜든 채 어느 한 곳을 노려다 보는 마수.
크르르릉-
바람결에 흩날려 오는 무언가의 냄새를 맡은 듯하다.
바싹 선 마수의 기감이 확실히 무언가를 알리고 있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마수.
입 안으로 보이는 톱니마냥 빈틈없이 뺴곡히 채워진 마수의 날선 이빨은 뼈도 잘근잘근 씹어버릴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느낀 탓이려나?
아니면 눈앞의 시체에 더 이상 흥미를 잃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음에 다가올 살육의 즐거움에 흥미가 돋은 것일까.
하지만 그런 건 마수에게 있어 논외의 대상.
그 마수는 오로지 수풀 쪽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찐득한 침을 바닥에 질질 늘어뜨리며.
부스럭- 부스럭-
수풀 쪽에서 뭔가 풀을 헤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가끔 나뭇가지를 치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뭔가가 움직이는 듯했다.
그 소리는 마수들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한 발자국-
그리고 또 한 발자국-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 사이 나머지 무리들의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뭔가 낌새를 챈 모양이다.
무리는 각자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하체는 땅을 디딘 그대로 상체만 살짝 들어올려 경계심을 한층 끌어올린 채로 말이다.
모든 마수의 시선은 똑같은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리들 사이에 알싸한 기운이 퍼져 나가고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으르렁거리는 마수들.
흘러 들어오는 바람에 쇠 냄새가 섞여 날아온다.
즐거움보다는 긴장감이 더 커진 모습이었다.
크르르르릉-
마수들의 신음소리가 더욱 낮게 깔린다.
부스럭- 부스럭-
수풀을 헤치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유난히 감각이 예민한 마수들이기에 그 소리는 그들의 귀에 마치 천둥이 치는 양 점점 크게 흘러 들어왔다.
퐈악-
"아으~ 이제야 찾았네~ 젠장. 내가 코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짱박혀 있는 거야? 네놈들."
말이 통할 리는 없다.
마수와 인간의 사이에 말이 통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터.
돌아오는 대답은 기대도 않은 채 남자는 마수들을 향해 투덜거렸다.
수풀을 헤치며 나온 것은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
지도를 붙잡고 길을 찾느라 한참을 실랑이하던 남자였다.
그는 수풀을 헤치며 나온 뒤 커다란 대검을 어깨에 올린 채 마수들을 보며 실실 쪼개는 중이었다.
입꼬리가 한쪽으로 치켜 올라간 그의 얼굴은 더할 나위없이 기괴하게 보였다.
도대체 누가 마수이고 누가 사람인 것인지 원...
느낌 탓일까.
왜일까 영문은 모르겠지만 마수들조차 그의 생김새에 흠칫 놀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매우 기뻐하는 중이었다.
크크크-
크크크큭-
그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웃음의 물결은 이내 그의 몸 전체를 들썩이게 한다.
무조건 반사 마냥 터져나오는 웃음이 진정이 안 된다는 듯 남자는 선분홍빛 잇몸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뚝-
그가 웃음을 멈췄다.
마수들의 얼굴에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종잡을 수 없는 남자의 행동에 마수들에게서는 긴장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칼을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사냥꾼인데...
남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마수들의 수를 세기 시작하는 남자.
"보자... 한 마리~ 두 마리~세 마리... 어이쿠. 더 못 세겠다야. 왜 이렇게 많대? 예상보다 돈이 더 남겠는걸. 이거~ 으헤헤헤."
그는 지금 너무 행복했다.
아니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마수들의 모습이 모두 돈다발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으헤헤. 귀여운 것들.'
그의 이름은 체스.
직업은 마수 사냥꾼.
말 그대로 마수를 잡아 생활을 영위하는 자였다.
2미터에 육박하는 키.
조각처럼 갈라진 근육이 찰떡같이 붙어 있는 큰 몸집.
그 큰 키하며 몸집으로 미뤄봤을 때 얕잡아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마수들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굴러 들어온 먹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사내의 기세가 영 심상치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그 남자가 오히려 마수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
다시 남자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의 자세가 바뀌자 마수들은 다시 긴장된 모습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웃음을 띤 남자였지만 그럴수록 마수들의 빈틈없이 발달된 근육에는 되레 힘이 바싹 들어가고 있었다.
사내에게서 풍겨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닌 탓에 마수들의 눈매는 점점 가늘고 날카로워지며 동시에 예리하게 날선 긴장감이 서렸다.
그 남자는 꺼낸 커다란 대검의 손잡이를 다시 한 번 꾸욱 쥐었다.
전투를 준비할 때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혈관 속 혈류가 빨라지는 느낌이 들며 아드레날린이 마구 샘솟기 시작한다.
대검을 움켜쥔 그의 팔뚝에서는 힘줄이 불끈 솟아오른다.
이깟 마수들은 여유롭게 상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을 하기에는 적지 않은 수의 마수들이다.
느슨해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사내.
컹컹컹커엉-!
양쪽의 팽팽한 긴장감을 깨는 울음소리.
맨 뒤에 있는 덩치가 제일 큰 녀석의 짓이다.
무리 중 덩치가 제일 큰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무리의 우두머리가 아닐까 싶다.
커엉커커커커엉-
우두머리를 따라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나머지 마수들.
마수들의 울부짖음에 신경이 거슬린다.
짜증이 치솟자 갑자기 맥이 탁 풀려 버린다.
한창 긴장해야 할 이 시기에 되레 저것들이 울부짖으니 이거야 원...
후비적-
"아~ 거 시끄럽게."
체스가 마수들의 울부짖음이 영 거슬리는 듯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괜스레 발 밑의 돌을 틱 굴리며 칼을 다시 쥐는 찰나.
크와아아아아앙-!!!
사내의 흐트러진 자세가 돌아오기 직전 마수들이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며 사나운 기세로 체스에게 달려들었다.
1 대 다수.
인간 대 마수.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