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의 채무 탈출기-2화 (2/249)

#2

우르브독(1)

쏴아아~ 스스슷~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나뭇잎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들이 사르륵 소리와 함께 스쳐 지나가고.

푸른 빛 바다색의 하늘에서 내리쬐는 포근한 햇살이 나뭇잎에 살그머니 내려앉으며 빛나는 녹음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중이었다.

고즈넉한 숲은 가끔 지나가는 산짐승들 이외에는 딱히 지나가는 이 하나 없었다.

거기에 새들이 목청을 높여 울어대는 소리가 더해졌다.

바람이 만드는 오선지에 새들의 기교 섞인 울음소리가 발을 구르며 올라타고.

그들의 합창은 자연스레 아름다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빠직-

나무가지가 밟히는 소리.

바스락-

이번에는 떨어진 나뭇잎이 밟히는 듯한 소리.

숲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에 절묘한 추임새가 곁들어졌다.

오선지 위에서 추임새를 넣는 사람은 건물에서 나왔던 바로 그 남자였다.

수풀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걷어나가며 숲속을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

그가 만들어 내는 추임새는 묵직한 체중이 잔뜩 실린 발걸음 소리였다.

가볍게 어우러진 자연의 소리에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더해지자 그것만으로도 귀가 즐거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 남자.

그가 걷는 길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이 오고 가지 않은 듯 숲 속은 짐승들이 오고 간 흔적만 남아 있었다.

뭐 딱히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는 거칠고 투박한 길.

하긴 이런 깊은 산 속에 일부러라도 다닐 턱이 없지.

"흐음~ 좋다 좋아~"

그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경치가 마음에 드는 듯한 눈치였다.

만족스러운 감탄사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온다.

이마의 땀을 훔치는 그.

그의 터질 듯한 근육이 땀에 젖어 번들번들거리고 있었다.

경치를 감상하는 와중에도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을 옮겨가는 이 남자.

키가 근 2미터에 육박하는 게 몸집이 우람한 남자다.

긴 머리가 거슬리는 듯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맨 모습에 수수한 복장은 딱 봐도 사냥꾼인 듯하다.

얼굴은 흠...

굳이 말하지 않겠다.

각설하고.

그는 온 몸에 무장을 한 상태였다.

그의 손에는 어디에 쓰는지 용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달려있고 만일을 대비한 몇 개의 단검이 가슴팍에 매어져 있다.

그리고 움직임에 최적화된 가벼운 경장갑옷 차림에 등 뒤로 질끈 동여맨 칼 한 자루.

그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가죽끈은 그의 등짝에 매달린 자신의 키에 육박하는 한 자루 칼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참 무식해 보이는 검이다.

가죽으로 얼기설기 엮은 듯 대충 만들어진 검집에 검의 손잡이도 딱히 다른 장식이 보이지 않는 투박한 모습의 검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습에 아마도 자신의 목적을 최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저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저걸 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검의 크기만 봐도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검이었다.

그것만도 대단하다고 할 정도인데 하물며 저걸 휘두른다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남자가 저걸 들고 있다는 걸로 봐서는 분명히 휘두를 수 있으니 사용을 하는 것일 테고.

휘유~

상상만 해도.

"그나저나 여기가 아니네. 또 틀렸어. 아으... 그렇다면... 저 쪽인 것 같은데..."

그가 입을 열었다.

약간 짜증이 난 투의 목소리.

벌써 몇 시간 째 이 근처를 헤매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치를 구경하며 걸어온 것까지는 좋았다만 그 탓에 본디 해야 하는 일이 늦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왠지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아닌 느낌마저 드는 그다.

"아~ 거참. 사람이 좀 찾기 쉽게 그림을 좀 그려두면 안 되나? 분명히 이 근처라고는 되어 있는데 말이지."

그의 손에는 지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조잡한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는 지도에는 큼지막하게 <대동수지도> 라 써져 있었다.

주인 왈 이 지도를 만든 저자가 태어나자마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나 뭐라나.

여하튼 그 비싼 걸 특별세일에 단골 찬스까지 얹어준다길래 냉큼 10G을 주고 사버린 자신이었다.

후...

이 놈에 가게.

주인이 사기꾼은 아닌 것 같은데 입에 블랙홀이라도 달린 것 같다.

앉아서 한 번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어찌나 헤어나올 수가 없는지.

매일 자신한테 이런 걸 베스트셀러라고 팔아먹는다.

가게를 나와 정신을 차리면 이미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다.

돌아가면 이번에야말로 꼭 따져야지.

매번 당해주니 이건 뭐 대놓고 호갱님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들어올 때는 고객이고 나갈 때는 호객이라더니 아주 빨대를 꽂은 느낌이다.

그것도 큼지막한 빨대를 말이다.

귀가 얇은 자신이 문제이려나.

아니지.

애초에 이런 걸 팔아먹는 자체가 양심을 팔아먹은 거지.

그렇게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는 그였다.

그나저나 역시 쓸모가 없다.

이 마을에서 파는 지도가 다 그렇지.

조그만 마을에서 뭔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에휴...

그는 지도를 아무렇게나 뒤로 홱 던져 버렸다.

이러다가는 평생 걸려도 못 찾을 느낌 아닌 느낌.

킁킁킁-

콧구멍을 한껏 벌린 그는 바람에 실려오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자고로 사람이 어떤 상황에 닥치면 자신의 오감을 믿으라 했던가.

이질적인 냄새.

이 숲 속에 있어서는 안 될 냄새.

아직 그런 건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풀 냄새만 콧 속에 들어올 뿐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킁킁거리며 걸음을 천천히 옮겨갔다.

얼마 후.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양껏 빛을 발할 무렵.

여전히 그는 오롯이 자신의 코에 의지한 채 걸어가는 중이었다.

멈칫-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펼쳐진 서류의 윗부분에는 <의뢰서> 라고 쓰여져 있다.

그 밑에는 무언가 발로 그린 것 같은 알 수 없는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고 맨 밑에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아이씨... 콧구멍이 다 먹먹하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게 냄새를 맡은 탓일까.

너무 킁킁거린 탓에 코털이 삭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얼른 끝내고 돌아가고 싶은데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었다.

빨리 끝내고 기쁨을 좀 만끽하고 싶은데.

잠시 걸음을 멈춘 채 투덜더리는 그 남자.

투덜거리는 것이라면야 백날이라도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들어줄 이 하나 없다.

이런 숲 속에서는 그저 혼자 중얼거릴 따름이지.

"에라. 저 쪽이 맞겠지."

자문자답을 할 바에야 남자는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가자는 생각에 발을 다시 내디뎠다.

갈 방향은 정해졌다.

머리를 벅벅 긁은 그.

그리고는 더 깊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자신의 감이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틀어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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