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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건국
짹짹짹!
엘도라도 왕성의 정원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작은 새 두 마리가 지저귀면서 부리를 부딪치다가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저쪽으로 사라졌다.
밤에 기습적으로 쳐들어온 자객들은 모두 준이 일으킨 화염계 마법으로 재가 되어 흩어졌지만, 파손된 각종 물건들과 핏자국 등의 뒤처리는 시종과 하위 시녀들이 밤을 새워 깨끗하게 처리했다.
국왕의 집무실 창밖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준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다행히 글리아나가 아담을 데리고 마법사의 탑으로 피신했기에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자객들에게 왕성수비대원들과 왕성기사들만으로는 안전하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자리를 비우고 없을 때를 대비해서 글리아나와 아담의 곁에 소드 마스터인 헌트와 하그리가 근접경호를 하도록 조치했다. 또 이번에 큰 활약을 펼친 부타비크와 누메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누메이, 앞으로 나오너라.”
준의 말에 누메이가 준의 곁으로 다가왔다.
“너에게 나의 마력을 불어넣어 도와줄 테니 그 마력으로 너의 분신을 생성하거라.”
“…….”
누메이는 입이 없어서 말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 눈이 커졌다. 이제까지 자신의 분신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터라 준의 말은 충격을 받을 만큼 놀라웠다.
스윽!
준은 누메이의 머리 부분에 손바닥을 붙이고는 엄청난 마력을 불어 넣었다.
츠츠츠츠.
누메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누메이의 몸의 일부가 스윽 떨어져 나오더니 누메이보다는 약간 작은 동생 같은 누메이가 생성된 것이다.
누메이의 분신은 하나가 아니라 계속 일부가 떨어져 나오더니 백 마리가 되어서야 멈추었다.
준의 손이 누메이의 머리에서 거두어졌다.
누메이의 어린 분신들은 당분간은 누메이와 교감을 나누면서 성장해야 하지만 지금의 상태만으로도 상당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누메이는 준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준은 누메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메이, 분신들과 당분간은 이곳 국왕집무실에 은신해 있거라. 곧 새로운 왕성이 축성되면 너희를 데리고 가겠다.”
“…….”
“부타비크.”
“예, 주인님.”
“너도 일족을 만드는 걸 허락하마.”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단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주 은밀하게 진행하라.”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족을 얼마나 만들어도 되겠습니까?”
“일단은 만 명까지 확보해도 좋다. 단, 앞으로 새로운 왕성으로 옮기게 되면 그때부터는 왕성을 비밀리에 수호해야 하니까 더 많은 뱀파이어 일족이 있어야 된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부타비크, 너는 뱀파이어의 왕이 되어 엘도라도 왕국의 왕성을 비밀리에 지키는 수호자가 되거라.”
“예, 주인님.”
“앞으로 부타비크와 누메이는 엘도라도 왕성의 숨겨진 힘이 되어라. 어느 정도 준비가 이루어지면 왕비인 글리아나와 왕자인 아담을 너희에게 소개시켜주겠다.”
“예, 주인님.”
“내가 만약 외출하거나 왕성을 비우게 되면 너희는 왕비와 내 적통인 아담 왕자를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인님.”
“그만 쉬어라.”
“예, 주인님.”
스스스스.
부타비크는 천장에 설치되어 있는 샹들리에의 금속 부분으로 사라져버렸고, 누메이와 분신들은 샹들리에의 수정으로 변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준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5년 후.
엘도라도 왕국은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엘도라도 왕성이 북쪽으로 20킬로미터 떨어진 베리아 평원에 축성된 곳으로 이주했다. 이전의 영주성과 비교하면 무려 백 배나 큰 규모의 왕성이었다. 모르칸 제국의 왕성보다 규모 면에서는 더 컸다. 엘도라도 왕성 하나만으로도 거대한 도시였다.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하기 위하여 20미터나 되는 성벽을 쌓았다. 내성에는 국왕이 사는 왕성과 각종 건물들이 들어섰다. 장성을 쌓아 외성도 만들었다.
외성에는 왕국민들이 살 수 있도록 신도시가 조성되었는데, 천만 명의 왕국민들이 살 수 있는 엄청난 규모였다.
자객들이 쳐들어오면 뱀파이어 부타비크와 누메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었다.
준이 왕성의 방어에 중점을 둔 사항은 마법이었다. 이전의 영주성에 있을 때 자객들이 이동마법진으로 이동해왔기에 그 것을 원천적으로 막기로 했다.
공간외곡장을 펼치게 되면 텔레포트 마법이나 이동마법진으로는 절대 이동해올 수 없게 된다. 내성벽에도 대방어마법진을 직접 새겨 넣었다.
왕성의 광장 동쪽에는 우뚝 솟은 마법사의 탑이 존재했다. 드래곤 마르시아가 궁정마법사에 오르면서 탑주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왕성의 국왕집무실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는데, 준이 직접 샹들리에의 한 곳에 창조마법으로 마법의 공간을 생성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들어갈 수 없는 아공간과는 달랐다. 그곳에서는 숨을 쉴 수도 있었다. 규모도 엄청나 사방 50킬로미터나 되었다.
그것만 보아도 준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인지 알 수 있었다.
준은 마도시대의 현자 크라이오튼의 비밀의 장소에서 마법의 공간을 체험했었다. 그것을 참고하는 한편, 창조마법서의 내용을 응용하여 마법의 공간을 생성했다.
부타비크의 왕국은 이 마법의 공간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는 그동안 은밀하게 혈족을 만들었는데, 대부분이 반항적인 노예들로 충당되었다.
엘도라도 왕성의 규모가 큰 만큼 부타비크의 혈족은 십만 명이나 되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늘릴 예정이었다.
소드 마스터 헌트와 하그리도 자객들의 침입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준의 허락을 받고 왕실을 수호할 기사단을 창설했다. 그것이 훗날 엘도라도 왕국 최강의 기사단인 프리맨 기사단이었다.
프리맨 기사단의 기사가 되려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검술 실력을 가져야만 자격이 부여되었다. 그만큼 들어가기 힘든 곳이 프리맨 기사단이었다.
엘도라도 왕국이 안정되자 준은 최근 가장 위협이 되고 있는 오크왕국을 생각했다.
오크왕국의 왕성.
대전에는 거대한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각종 요리가 가득 차려져 있었다. 테이블이 얼마나 큰지 오십 명이 한꺼번에 앉아도 될 정도였다. 또한 지금 차려진 요리는 오십 명이 앉아서 먹어도 남을 만큼이었다.
후루룩, 쩝쩝!
오크왕 쿠퍼는 혼자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서 요리를 먹고 있었다.
오크들은 원래 잡식성이라 질보다는 양으로 배를 채운다. 그런데 쿠퍼는 질과 양을 한꺼번에 원했다. 때문에 인간 노예 중에서 요리사를 찾아내 그로 하여금 각종 요리를 만들도록 했다.
쿠퍼는 물소 바비큐를 뜯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최근 더욱 식욕이 좋아졌다. 바로 모르칸 제국군을 밀어붙여 엄청난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모르칸 제국군이 연일 전투에서 밀리는 것은 수장인 아놀드 대공이 어느 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가 있을 때만 해도 모르칸 제국의 남부 국경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그라비스 백작령에서 오크전사들과 치열한 전투 중이었다. 오크전사들도 엄청난 검술 실력을 가진 아놀드 대공 때문에 더 이상의 진격은 어려웠다.
아놀드 대공이 한번 전투에 나섰다 하면 용맹한 오크전사라도 만 마리는 죽어 나갔다. 혼자서 그렇게 처리해버리니 제국군들도 사기가 올라 오크전사들을 밀어 붙였다. 그로 인해 오크전사들이 진군을 못하고 정체되어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쿠퍼는 속으로 만족했다.
제국군을 우디 숲에서 몰아냈고, 거기다 제국의 남부 국경을 넘어 70킬로미터까지 점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막아내던 모르칸 제국군은 갑자기 행방불명된 아놀드 대공의 영향으로 사기가 떨어져 계속 전선이 밀리게 되었다.
오크전사들은 아놀드 대공이 없을 때야말로 기회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파죽지세로 모르칸 제국군을 몰아붙여서 제국의 남부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모르칸 제국의 남부 지역은 오크왕국(옛 드라비아 왕국)의 땅보다 무려 1.4배나 될 정도로 엄청나게 컸다. 지금도 자랑스러운 오크전사들은 제국군을 계속 밀어 붙이고 있었다.
모르칸 제국의 황제는 이대로는 제국이 오크들에게 멸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는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제국의 귀족들도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영지병들을 대거 끌어 모아 황제에게 힘을 보탰다. 지금은 제국군이 오크전사들에 의해 밀리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큰 변화가 올 것이라 생각되었다.
모르칸 제국에서도 엄청난 병력을 확보해 훈련 중이었다.
쿠퍼도 정보를 획득해 잘 알고 있었기에 엄청난 제국군이 진군해오면 그곳에서 국경을 형성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었기에 그동안 제국의 땅을 최대한 점령한다는 작전이었다.
스스스슷.
오크왕국의 왕성 하늘의 한곳이 이지러지면서 누군가 이동해왔다. 갈색 로브의 그는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는데, 준이었다.
마나에 민감한 쿠퍼는 누가 이동해온 것을 알고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왕성의 공중에 나타났다. 한창 요리를 먹고 있었기에 그의 손에는 뜯어먹던 소 뒷다리구이가 들려 있었다.
“허억, 너, 너는!”
“오크왕 쿠퍼, 나를 알아보겠지?”
쿠퍼의 눈이 커지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시면 일만 년의 수명으로 늘어나는 신의 선물을 강탈해간 준의 얼굴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으으, 네가 여긴 어떻게!”
“쿠퍼, 오랜만이야. 요즘 제국군을 밀어붙이면서 재미 보고 있다면서?”
“인간,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냐.”
“아니지. 나도 같은 인간족인데 상관이 없다고 말 못하지.”
“인간, 죽고 싶으냐?”
“후후후… 쿠퍼, 예전에도 넌 날 이길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그래? 그럼 어디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볼까?”
“이이, 죽여 버리겠다! 다크 썬더!”
파지직!
흑빛 번개가 준에게 주욱 날아갔다.
이 번개에 스치기만 해도 그 부위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가며 죽는다. 제대로 맞으면 재가 되는 아주 무서운 마법이었다.
지지지직!
준이 어느새 펼친 앱솔루트 배리어에 흑빛 번개가 부딪치면서 스파크가 일어나다가 순간 튕겨지면서 소멸해버렸다. 절대의 방어막이라는 이름값을 했다.
“앱솔루트 배리어?”
“후후후, 알아보는군. 그렇다.”
“젠장! 이것도 막을 수 있는지 보자! 파이어 스트라이크!”
츠츠츠.
불길이 이글거리는 초고열의 불꽃이 생성되었다. 이 마법도 화염계 마법 중에 상위에 드는 것이기에 파괴력이 엄청났다.
이번만큼은 준도 긴장했다. 만만히 볼 게 아니기 때문이다.
“죽어라!”
슈아앙!
초고열의 불꽃이 준을 향해 날아왔다.
막는 것보다는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준은 순간이동으로 피했다.
“아이스 스피어!”
츠츠츠츠.
준의 외침에 전방에 얼음의 창이 형성되었다.
오크왕 쿠퍼는 피식거렸다.
겨우 3서클의 하급 빙계마법이었다. 저런 하급의 빙계마법으로는 보호막조차 뚫지 못한다. 그러나 곧 쿠퍼의 눈이 커졌다.
준은 생성된 얼음의 창에 엄청난 냉기를 응축시켰다.
츠츠츠츠.
눈과 얼음의 기운을 가진 빌헤임의 권능이 스며들고 있었기에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으면서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수분이 얼어버렸다. 하늘이 온통 서리가 낀 것처럼 되었으며, 주위의 온도도 영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쿠퍼는 온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덜덜 떨었다.
“그, 그게 무슨 마법이냐?”
“후후후, 혹시 신의 아티팩트라고 알아?”
“허억!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쿠퍼는 사실 드래곤 레어에 있을 때 역사서를 읽어 신의 아티팩트에 관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에는 그저 허황된 신화라 생각했는데 준의 모습을 보니 사실이었다.
역사서를 읽었기에 신의 아티팩트 하나에 얼마나 엄청난 권능이 들어 있는지 간접적으로는 대충 알고 있었다.
하급 신에 버금가는 권능이 들어 있는 신의 아티팩트, 그것의 기운을 만약 일부라도 흡수했다면 드래곤도 이길 수 있다.
그제야 예전에 신의 선물을 노릴 때 싸운 드래곤이 떠올랐다.
쿠퍼 자신과 드래곤이 준이 도망칠 때 절대마법이라는 파워 워드 킬을 무려 두 번이 나 격중시켰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준이 그때 죽었다고 생각했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자신의 큰 착각이었다. 진정한 공포는 드래곤이 아니라 준이었다.
이미 신의 아티팩트 권능을 일부 흡수했다면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 신의 초입에 들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드래곤도 신의 초입에는 들지 못했다. 그런 엄청난 경지를 인간이 들었다면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지독한 공포였다.
“으으… 인간, 혹시 신의 아티팩트 권능을 일부라도 흡수했나?”
“후후후, 그렇다.”
“허억! 믿을 수 없는 사실이나 널 보니 믿을 수밖에 없구나.”
“비밀 한 가지를 더 알려줄까?”
“비밀? 그게 뭐냐?”
“쿠퍼, 놀라지 말거라. 난 이미 신의 아티팩트 네 개를 입수하여 그 권능 일부를 흡수 중이다.”
“뭐? 마, 말도 안 돼.”
준의 말에 쿠퍼는 전의를 상실했다.
신의 아티팩트 하나의 권능 일부를 흡수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무려 네 개나 입수해 그 권능 일부를 흡수한 준이다.
“으으, 내가졌다. 내게 원하는 게 뭐냐?”
스스스스.
쿠퍼의 항복에 준은 생성했던 얼음의 창을 소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