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277화 (277/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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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건국

“이름이 뭐냐?”

“베르슨 폰 가일.”

“호오? 귀족인가?”

“남작 가문이고, 난 기사다.”

“어쩐지 눈빛이 반항적이라 했어. 하지만 말이야. 넌 이제부터 노예다.”

“크으음.”

치욕스러운지 가일이라는 기사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반항해 보았자 너에게 돌아오는 건 매질뿐이다. 넌 이제부터 노예니까 말이다.”

“기사인 나에게 이런 대우를 하다니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

“책임자?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넌 노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지 않는다면 심한 매질을 받을 것이다. 명심해라.”

“…….”

“기사였다고 하니 체력에는 자신 있겠어. 오늘은 내가 특별히 너에게 기회를 주마. 잘 들어라. 원래 노예들에게는 천일염전이나 각종 광산, 아님 성의 보수공사나 도로공사에 투입되어 2년간 일해야만 노예에서 면천되어 평민이 된다. 그러나 너는 기사였기에 하나의 선택권을 더 주마.”

“나에게 말이오?”

“그렇다. 우리 엘도라도 영지에서는 능력이 있는 자를 대우한다. 그래서 너는 신규 모집된 병사들의 훈련을 돕는 조교자리가 어떨까 한다.”

“기사 아카데미의 교수들 말이오?”

“쉽게 설명하자면 교수 밑에서 시범을 보여주거나 하는 보조 정도로 보면 된다.”

“…….”

“어때, 해볼 생각 있나?”

“으음, 좋소, 해보겠소.”

“잘 선택했다. 노예가 되어 다른 곳에서 일한다면 하루에 세 번 식사가 제공된다. 그리고 하루에 일한 노동의 대가로 1실버를 지급받지.”

“노예인데 정말 그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오?”

“이건 좋은 대우가 아닌 보통의 대우다. 하지만 넌 신병교육대의 조교가 되었기에 그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하루 식사는 세 번과 두 번의 간식, 하루 일당은 3실버이다. 또한 너는 특별한 노예이기에 머리는 빡빡 밀지만 쇠사슬 발찌는 착용하지 않는다. 어떠냐?”

“으음,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대우군요.”

“그렇다. 그 정도면 사실상 노예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

가일은 행정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리 나쁜 대우는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행정사는 도장을 찍은 종잇조각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종이를 받아들고 행정사를 쳐다보았다.

“일단 너는 신병교육대의 조교로 분류되었으니 저쪽에 보이는 천막으로 가라.”

“저 천막은 무엇이오?”

“그건 가보면 안다.”

기사 가일은 병사들에 이끌려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에는 건장한 근육질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기사 가일은 그 남자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는 종이와 기사 가일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고 있는 옷과 신발 등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벗고 안으로 들어가면 의자가 있다. 그곳으로 가서 앉으면 된다.”

기사 가일은 약간 당황했다.

‘남자들인데 어때?’

어차피 지금은 노예의 신분으로 반항은 있을 수 없었기에 남자의 말대로 전부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50여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다른 노예가 머리를 빡빡 깎이고 있었다.

노예의 머리를 깎는 남자는 흰옷을 입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 있었다. 일단 그 흰옷의 남자가 노예의 머리를 되도록이면 짧게 깎으면 다른 자가 날카로운 날을 가진 칼로 남은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 버렸다.

기사 가일의 차례가 되자 옆의 노예들처럼 머리가 깎여 빡빡이 되었다.

“머리가 깎인 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오른쪽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라. 어서.”

방망이를 손에 들고 있었기에 겁을 먹은 노예들은 그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씻을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었는데 간이 목욕탕이었다. 노예 백 명이 50명씩 나누어 마주보고 서도록 했다.

“너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겠다. 잘보고 따라하도록.”

시범 조교가 앞으로 나서더니 한 노예의 몸에 물을 붓고는 때수건으로 비누거품을 내어 문질렀다. 땟물이 몸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제야 노예들이 뭘 하는지 알았다.

“시범을 잘 보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똑같이 해야 한다. 시작.”

노예들은 조교의 시범대로 따라서 서로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목욕을 끝마친 노예들은 옆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물을 닦을 수 있는 수건이 놓여 있었다. 몸에 물기를 제거한 노예들은 분류된 곳에 따라 색깔이 전혀 다른 옷을 지급받아 입었다.

천일염전에서 일할 노예들은 파란색 옷을, 광산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노란색 옷을, 그밖에 각종 공사장에서 일할 노예들은 회색의 옷을, 마지막으로 흰색과 붉은색이 체크무늬로 들어가 있는 옷은 신병교육대에서 일할 조교들의 옷이었다.

그렇게 차례가 되어 옷을 지급받은 기사 가일이 천막 밖으로 나오자 병사들이 대기해 있다가 한곳으로 데려갔다. 분류되지 않은 포로들의 결계가 있는 곳의 맞은편이었는데, 크게 네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각각 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사 가일은 자신처럼 신병교육대의 조교로 뽑힌 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날이 밝으면 각자 맡은 곳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었다.

뉴 엘도라도의 보덴 성에 아침이 밝았다.

베일레 백작군과 리안 공작군 진영은 병사들의 아침준비가 한창이었다.

리안 공작군 진영에서는 병사들에게 빵과 스프를 배식했다. 반면에 베일레 백작군 진영에서는 빵과 스프, 잘 구운 고기와 과일까지 푸짐하게 배식해 더 잘 먹였다.

리안 공작군 진영에서 식사를 마친 보병 일만이 횡대로 서면서 공격대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에, 베일레 백작군에서도 역시 각종 무기로 무장한 보병 일만이 자리를 잡았다.

뿌우우우!

리안 공작군 진영에서 고동소리가 울려 퍼지자 적 보병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둥둥둥둥!

“와아아아!”

베일레 백작 진영에서도 역시 북소리가 울리자 보병들이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함성을 질렀다.

채채챙, 파팟!

양측의 보병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평소 푸짐한 식사를 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베일레 백작군 보병들이 약간 더 우세했다. 하긴 빵과 스프만 먹은 병사와 고기와 과일까지 먹은 병사들은 사기와 힘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양측의 진영에서는 일만의 보병들이 치열하게 싸워가며 먹은 것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흐르자 리안 공작군의 보병들이 전멸했다. 그에 반해 베일레 백작의 보병들은 아직 삼천 명 정도 살아남아 있었다.

“와아아아!”

베일레 백작군 진영에서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를 지켜보던 리안 공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이…놈들을 박살내 버려야겠다. 즉시 1군단의 병사들을 출전시켜라.”

“예, 각하. 1군단은 즉시 공격하라.”

“1군단 공격.”

10만의 1군단이 전열을 정비하더니 공격을 시작했다. 보병들과 궁병, 창병, 기병, 공성탑까지 아주 다양했다. 이에 질세라 베일레 백작도 10만의 병사를 내보냈다.

양측은 다시 서로 충돌하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누가 우세하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팽팽한 싸움이었다. 상황을 보니 쉽게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상태라면 며칠간은 계속 소모전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때, 공중의 한 공간이 갑자기 이지러지면서 누군가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해왔다. 갈색 로브에 후드를 눌러쓴 자였는데 후드를 벗자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바로 준이었다. 준은 잠시 공중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상황을 파악했다. 병사들의 입고 있는 옷이나 갑옷, 문장이나 깃발 등 많은 것들이 달랐기에 바로 확인이 되었다.

“양측이 백만 대군인데 이런 식으로는 전쟁이 끝이 나지 않겠군.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온 이상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준은 양팔을 옆으로 벌리더니 마력을 끌어 올리면서 외쳤다.

“썬더 스톰!”

우르르, 파지직!

준의 몸을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생겨 났는데 그 회오리에서 강력한 번개가 생성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으악!”

“살려줘, 아악!”

“크아악!”

리안 공작군에 번개폭풍이 떨어져 수천 명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강력한 전격계 마법이기에 피해가 컸다.

그제야 리안 공작군은 공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가 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후후, 전격계 마법도 제법 강력하기는 하지만 역시나 확실하게 피해를 입히는 건 화염계 마법이야. 어디 적들이 얼마나 막아내는지 볼까? 플레임 레인.”

츠츠츠츠.

갑자기 공중의 대기가 불안정해지더니 이윽고 고열을 동반한 화염의 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속시간이 30분에 이르는데다 화염의 비가 내리는 지역도 광범위하기 때문에 대량 살상을 하기에 매우 뛰어나고 효과적인 공격마법이었다. 또한 이 불꽃은 물로는 꺼지지 않는데다 하급의 마법방어조차 태워 버리기 때문에 대량살상이 가능했다.

“피, 피해.”

“아아악!”

“사, 살려줘, 아악!”

평지이기에 피할 곳이 없었던 리안 공작군은 그대로 화염의 비에 노출되어 5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자욱하게 퍼진 연기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질식사로 쓰러지는 병사들도 속출했다.

연이은 준의 강력한 공격마법에 리안 공작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리안 공작군의 병사들은 급격하게 사기가 떨어져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리안 공작군의 사기를 어느 정도 꺾기는 했지만 아직도 수십만의 병사들이 있었기에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절대마법 같은 것을 한 방 날려야만 했다. 이건 전투라기보다는 학살이었기에 준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그래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나여,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인페르노!”

루나드 공작군을 한 방에 끝장내 버린 죽음의 절대마법이 또다시 준의 손에서 펼쳐졌다.

우르르, 쩌쩌쩍!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리면서 곳곳에 땅이 갈라졌다. 리안 공작군은 휘청거리다가 그만 갈라진 땅으로 수만 명이 한꺼번에 추락했다.

“아아악!”

수만 명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내지른 비명은 나머지 병사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절대마법인 인페르노 마법이 지진만 있는 건 아니었다. 더욱 공포스럽고 무서운 용암이 갈라진 땅에서 분출되어 병사들을 덮쳤다.

“크악!”

“으아악!”

용암에 병사들이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머리가 녹는 병사, 다리가 녹아 사라진 병사 등등 참혹한 지옥이 연출되었다.

리안 공작과 지휘관들이 있던 곳도 마법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기에 벗어나지 못하고 몰살당해 버렸다. 루나드 공작군처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어 버린 것이었다.

정규병 백만에 보급병 52만을 보유한 리안 공작군이 썬더 스톰 마법과 플레임 레인마법으로 수만 명이 죽더니 마지막은 인페르노 마법으로 60만 정도의 병사가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

유효시간이 지나자 갈라졌던 땅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왔지만 죽은 병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전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절대마법의 엄청난 위력에 병사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항복하라, 반항은 죽음뿐이다.”

리안 공작군은 각자 손에 들고 있던 무기들을 내려놓고는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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