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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건국
“와아아아!”
“말벌 떼를 전멸시켰다.”
“다 죽였다. 말벌 떼를 다 죽였어.”
병사들은 결국 말벌 떼에 승리했기에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하지만 아케비안 공작군의 피해를 조사해 보니 무려 만 명이나 죽었다. 특히 보병들의 피해가 컸으며, 병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신병들의 피해가 가장 많았다.
스윽!
전투마법사들의 도움으로 거대한 흙구덩이가 여러 개 만들어졌다.
그곳에 죽은 병사들을 집어넣고는 흙으로 뒤덮었다.
뒤처리는 빠르게 끝이 났다.
한편 렉스는 이번 말벌 떼의 습격도 우연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법사 마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의 소환마법진의 영향으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적의 마법사가 아주 교묘하게 습격을 하기에 병사들의 피해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적의 마법사를 잡으려고 해도 먼저 이것을 눈치 채고 사라져 버리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젠장,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거지?”
“렉스 님, 샌디 성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곳만 점령한다면 일단 걱정 없습니다.”
“나도 그건 알지만 화가 치밀어서 미치겠어요.”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오.”
“마샬 님이 잘못하신 건 없는데 괜히 내가 화풀이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렉스 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니 신경 쓰시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부관, 즉시 병사들의 전열을 정비하라. 신속히 행군해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전열을 정비하라.”
각 천인대장들은 부대별로 병사들을 닦달해 전열을 신속하게 정비했다.
“출발하라, 출발.”
쿠르르르.
짐수레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뒤를 따르던 보병들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뿐이었다. 분위기가 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보병들은 줄을 맞추어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무장한 병사들이 길게 줄지어 행군 중이었다.
이들은 르완 왕국의 페르난데스 후작군으로 후작령을 출발해 유명무실해져 버린 바렌 왕국 국경을 넘어 행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25킬로미터 정도만 가면 엘도라도의 초입이었다.
페르난데스 후작군을 지휘하는 자는 사위인 딕슨 자작이었다.
르완 왕국의 중앙 정치무대에서 제법 실력자로 알려진 자브란 백작의 아들이었다.
딕슨 자작은 이번에 큰 공을 세워 작위를 높이려고 선봉대장을 자처하고 나섰던 것이다.
10만의 병사를 이끌고 황금의 땅이라 알려진 엘도라도를 점령하는 일이라 무척 흥분되었다.
“부관, 엘도라도는 멀었느냐?”
“이제 삼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아직도 멀었군.”
“자작님, 10만을 이끌고 가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하하하, 그것도 그렇군. 정보길드에서는 샌디 성이 견고하고 성벽이 높다던데 사실인가?”
“저도 직접 가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만 성을 함락시키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쨌든 샌디 성 앞에는 지금도 미르비아 왕국의 롱바야 후작군이 주둔해 있다던가?”
“예, 척후병의 보고로는 그곳에서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샌디 성을 함락시키겠다고 제일 먼저 출병한 자들이 아직도 그러고 있다니 한심스럽군.”
“꼭 그렇게만 보시면 안 됩니다.”
“그건 무슨 말이야?”
“롱바야 후작이 직접 선봉대를 이끌고 갔는데도 성을 함락 시키지 못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해서 샌디 성이 방어력이 높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역시 부관이 옆에서 날 이해시켜주니 아주 든든해.”
“저야 자작님께서 잘 되시기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원정만 잘 처리된다면 부관에게도 섭섭지 않게 챙겨줄 터이니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딕슨 자작은 부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딕슨 자작 곁으로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기사가 다가왔다.
“카젠, 무슨 일이냐?”
“자작님, 날이 저물고 있습니다. 야영준비를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벌써 말이냐? 좀 더 행군한 후에 야영하면 안 되나?”
“척후병들의 보고로는 조금 더 가면 야산이 펼쳐져 있기에 야영하기 적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야산보다는 이곳 평지에서 야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부관의 생각은?”
“예, 저도 야산보다는 평지에서 야영을 하는 게 적들의 기습에도 대비할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린 10만이나 되는데 누가 기습한단 말이지?”
“비록 저희가 10만이라지만 기습을 받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하하, 너무 부정적인 생각이 아닌가?”
“자작님, 방심은 금물입니다.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철저하게 경계하는 게 좋습니다. 여긴 페르난데스 후작령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딕슨 자작은 뛰어난 부관이 옆에 있었기에 마음이 든든했다.
“듣고 보니 부관의 말이 맞아.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카젠의 말대로 적당한 장소에서 야영하도록 한다.”
“감사합니다, 자작님. 그럼.”
기사 카젠은 전방으로 말을 몰아 달려 나가더니 각 천인대장들에게 지시했다.
석양이 지고 있을 때, 페르난데스 후작군은 야영에 들어갔다.
모닥불이 피워지고 짐마차와 짐수레를 분산 배치해 경비병을 세웠다.
모두들 각자 맡은 바대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빵과 따뜻한 스프가 배식되면서 병사들이 배불리 먹었다.
딕슨 자작은 부관의 조언으로 병사들을 배불리 먹도록 해주었기에 병사들의 사기가 높았다. 그리고 경비병들을 곳곳에 많이 세웠다. 언제든 적의 기습으로부터 대비할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도 무기를 항상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준은 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투명화 마법을 펼쳤다. 페르난데스 후작군은 준이 공중에 떠 있는 걸 아무도 몰랐다.
준은 페르난데스 후작군의 진영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이제까지 본 병사들 중에서 가장 철저하군. 적의 기습에도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경비병들도 많이 배치했군.”
준은 샌디 성으로 접근하는 각 왕국의 선발대의 수를 줄일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렇게 은근히 관찰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이런 밤에는 맨티스와 스파이더를 소환해 공격하는 게 효과적이겠어.”
슈우우우!
준은 페르난데스 후작군 진영에서 5백 미터 떨어진 곳에 소환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윽, 슥슥!
각종 도형과 룬문자를 빼곡하게 새긴 정교한 7미터의 소환마법진이 15분 만에 완성되었다.
준은 실수가 있는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했다.
“스파이더여, 나의 부름에 응하거라!”
츠츠츠츠.
소환마법진에서 약간의 진동이 일어나더니 순간 멈추었다.
사사삭, 사삭!
소환마법진에서 2미터의 신장을 가진 검은색의 스파이더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밤이라서 그런지 더욱 공포스러웠다.
“스파이더여, 너희의 먹이가 앞에 있다. 가서 잡아먹어라!”
-키키키키.
준의 마력에 응한 스파이더가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페르난데스 후작군을 향해 기어갔다.
스파이더 한 마리를 시작으로 소환마법진에서 마치 폭포수가 쏟아지듯이 엄청난 스파이더 떼가 기어 나와 뒤따라갔다.
준은 흐뭇한 표정으로 스파이더를 바라보더니 그곳에서 순간 사라졌다.
준이 다시 나타난 곳은 페르난데스 후작군의 반대편이었다. 삼백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역시나 그곳에도 소환마법진을 하나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린 소환마법진은 맨티스였다.
“크악!”
“아아악!”
어느새 스파이더 떼가 페르난데스 후작군 진영으로 습격을 했는지 병사들의 비명이 들렸다.
피식 웃던 준은 서둘러서 소환마법진을 완성시켰다.
“맨티스여, 나의 부름에 응하거라!”
츠츠츠츠.
소환마법진이 약간의 진동을 일으키더니 멈추었다.
사사삭, 사삭!
소환마법진에서 순간 신장이 2미터나 되는 초대형 사마귀가 기어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녹색의 물결같이 엄청난 수의 맨티스들이 소환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왔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강자에 속하는 사마귀였는데, 몸집이 이렇게 크니 병사 정도는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맨티스여, 너희의 먹이가 저기에 있다. 가서 잡 먹어라!”
푸드득!
맨티스 떼는 일제히 날개를 퍼덕이면서 날아올라 페르난데스 후작군을 향해 날아갔다.
“크악!”
“아아악!”
갑자기 나타난 거미 떼와 사마귀 떼에 의해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나름대로 경비병을 많이 세워 기습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몬스터가 공격해올 줄은 몰랐었다.
그래도 언제든 방어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페르난데스 후작군은 신속하게 거미 떼와 사마귀 떼를 방어했다.
채채챙, 파팍!
기사들은 오러를 검에 불어 넣어 스파이더와 맨티스를 베어 버렸다. 칼질 한 번에 몸이 두 동강 나면서 녹색 피를 주르륵 흘렸다.
방패병들이 앞을 방어해주자 뒤에 서 있던 궁병들이 화살을 쏘아 스파이더와 맨티스를 죽였다.
창병들은 방패병 등 뒤에서 창을 찌르면서 스파이더와 맨티스가 방패를 부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병사들은 각자 맡은 바대로 움직였기에 피해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도 워낙 스파이더와 맨티스의 수가 많아서 고전했다.
밤이라서 정확한 수를 알 수는 없었지만 스파이더와 맨티스가 각각 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공중에 떠올라 투명화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준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으음, 역시나 페르난데스 후작군 진영이 가장 훈련도 잘 되어 있고, 사기도 높구나. 이런 적들이 위험하니까 충분하게 수를 줄일 필요성이 있겠어.”
치열했던 싸움도 시간이 지나면서 페르난데스 후작군의 승리로 끝이 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스파이더와 맨티스가 죽고 전장에는 수십 마리가 남아 있었지만 몇 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기사 하나가 도약하더니 사선으로 검을 내리쳤다.
슈가각.
-키에엑.
마지막 맨티스의 목을 베어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스파이더와 맨티스의 사체를 한곳에 모아라.”
“서둘러라, 서둘러.”
천인대장들의 지시에 병사들은 짐수레를 이용하여 스파이더와 맨티스의 사체를 한곳으로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한쪽에서는 죽은 병사들을 한곳에 끌어 모았다.
화르르르!
거센 불길이 치솟으면서 스파이더와 맨티스의 사체가 타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치솟았다.
죽은 병사들도 무기와 신발, 각종 소지품을 수거한 후 땅에 묻기보다는 불로 화장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딕슨 자작의 명대로 그렇게 처리했다.
병사들은 죽은 동료들의 화장을 바라보면서 기분이 착잡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뒤처리가 이어졌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피곤에 찌든 병사들은 새우잠을 자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빵과 스프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병사들은 각 부대별로 신속하게 야영했던 물품들을 짐수레에 실었다.
“출발하라, 출발!”
경기병들이 먼저 선두에 나서서 출발했고, 그 뒤를 보병들이 뒤따랐다. 후미에는 짐수레 행렬이 길게 줄을 지어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