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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건국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자 어둠이 스멀스멀 일어나 대지를 뒤덮기 시작했다.
렉스의 병사들도 더 이상 행군은 힘들다고 판단해 야영에 들어갔다. 병사들은 신속하게 군막을 치고, 모닥불을 곳곳에 피웠다. 혹시라도 있을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보초를 평소보다 많이 세웠다. 취사병들은 병사들이 먹을 스프를 끓이기 위해 냇가로 향했다.
큰 냇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병사들이 마실 물은 충분했다.
취사병 30명이 세 대의 짐수레를 끌고 와서는 나무로 만든 물통에 물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투명화 마법으로 준이 공중에서 스르르 내려와 짐수레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취사병들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준이 보이지 않았다.
준은 도자기병 하나를 꺼내더니 나무 물통에 부었다. 검은빛의 액체였지만 준이 마력으로 물을 휘젓자 흔적이 지워졌다.
그것도 모른 채 취사병들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더니 짐수레를 끌고는 돌아갔다.
거대한 솥에 물을 붓고 끓이다가 각종 재료를 넣어 완성했다.
빵과 스프가 준비되자 병사들에게 배식이 시작되었다.
배가 고팠던 병사들은 빵과 스프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끄아아악!”
“으윽! 독이 들었어.”
한 병사의 비명을 시작으로 병사들은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우수수 쓰러졌다. 갑자기 수천 명의 병사들이 빵과 스프를 먹다가 쓰러졌기에 난리가 났다.
마법사 마샬이 렉스의 호출에 달려왔다. 마샬은 6서클 마스터에 올라 있는 마법사로 아케비안 공작이 특별히 렉스를 도와주라고 함께 선발대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아, 어서 오십시오. 마샬 님.”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병사들이 빵과 스프를 먹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 조사를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마샬은 즉시 조사에 착수해 스프에 독이 들었음을 밝혀냈다.
“렉스 님, 스프에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으음, 취사병들이 왜 스프에 독을 넣은 거지?”
“제 생각으로는 취사병들도 스프에 독이 든 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취사병 일부도 독이 든 스프를 먹었으니까요.”
“그럼 누가 계획적으로 독을 넣었다는 말인데, 누굴까요?”
“제가 나름대로 조사해본 바로는 짐수레에 물통이 실려 있었는데, 그 물에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요?”
“예, 취사병들에게 물어보니 스프를 끓이기 전에 냇가에서 물을 떠왔다고 합니다.”
“그럼 그때 누군가 물에다 독을 탔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아직 흉수가 누구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으음, 병사들의 동요가 클 텐데 걱정이군요.”
“일단 독이 든 스프는 모두 버리고 새로 스프를 끓여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모든 식재료를 확인하겠습니다.”
“번거롭겠지만 수고 좀 해주십시오.”
“예,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병사들은 빵도 믿지 못했기에 전투마법사들이 동원되어 독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서야 빵을 뜯어 먹었다. 하지만 다시 스프를 끓여서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지만 거부감이 들어선지 아무도 스프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평소 하나라도 더 먹으려는 병사들이 스프를 거부할 정도이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여러 가지가 들어간 스프를 먹지 않으면 병사들의 체력이 떨어지기에 천인대장과 백인대장들이 나서서 병사들을 끌어 모았다.
전투마법사들의 확인 하에 그제야 병사들이 스프를 배식 받고는 먹었다.
최대한 빨리 샌디 성으로 향하느라 약간 무리한 행군이었고, 빵과 스프를 먹었더니 병사들이 늘어졌다. 대군이 야영을 하는 곳에 적들이 쳐들어오긴 어렵다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보초들을 제외한 보병들은 대부분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준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플라이 마법으로 이백 미터 정도의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마법을 영창했다.
“플레임 레인(Flame Rain)!”
츠츠츠츠!
밤하늘에 갑자기 막대한 마력이 한곳으로 집중되자 명상 중이던 마법사 마샬과 전투마법사들은 천막에서 튀어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엇, 저, 저건!”
“이런, 큰일이다.”
“플레임 레인 마법이야.”
마법사 마샬과 전투마법사들이 경악한 가운데 광범위 화염계 마법이 펼쳐졌다.
쏴아아아!
밤하늘에서 광범위하게 고열의 화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속시간이 보통 30분이나 되는데다가 대량 살상을 하기에 매우 뛰어나고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또한 이 불꽃은 물로는 꺼지지 않는데다가 하급의 마법 방어조차 태워 버리기 때문에 대량살상이 우려되었다.
“크아악!”
“화염의 비가 내린다. 피해!”
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려는지 밤하늘에는 화염의 비가 내려 병사들을 휩쓸었다. 또한 천막과 짐수레도 불길에 휩싸이면서 타기 시작했다.
방패병들은 자신들의 방패를 들어 화염의 비를 막아 보려고 했지만 고열을 동반한 불꽃이기에 방패도 금방 불타올랐다.
렉스의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옷에 불이 붙어 날뛰다가 쓰러졌다.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이 화상을 입으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워낙 광범위 지역에 화염의 비가 내린 터라 피할 곳이 없었기에 피해가 컸다.
그칠 줄 모르던 화염의 비가 30분이 지나자 결국 그쳤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병사들의 살이 익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말들도 많이 타죽었고, 짐수레와 짐마차도 수십 대나 불타버렸다. 화염의 비 마법으로 인해서 약 삼만 여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또한 말과 짐수레, 공성무기 등 모든 것을 포함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마법사 마샬은 비록 6서클 마스터였지만 이 정도의 플레임 레인 마법을 펼치지는 못했다.
7서클에 올라야 겨우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고서클의 화염계 마법이었다.
렉스는 이렇듯 고위 서클의 마법사 한 명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똑똑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렉스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샬 님, 놈의 위치를 찾았습니까?”
“플레임 레인 마법을 펼칠 때만 해도 공중에 떠 있었는데, 혼란한 틈을 타서 사라졌습니다.”
“이렇듯 무서운 마법을 펼치는 자를 하루 속히 붙잡거나 제거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놈은 아주 영악한 자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치한다면 더 큰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저와 전투마법사들이 놈을 찾아보겠습니다.”
“마샬 님,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렉스 님.”
마샬은 즉시 전투마법사들을 이끌고 수색했지만 준은 이미 텔레포트로 샌디 성으로 이동해버렸기에 찾을 수 없었다.
샌디 성 앞 롱바야 후작 진영.
롱바야 후작은 천막 밖에 간이 의자에 앉아서 샌디 성을 노려보았다. 평지에 축성된 샌디 성이지만 해자가 깊고 넓으며, 성벽까지 견고하면서도 높아 공략하기가 쉽지 않은 성이었다.
지금 사기가 떨어진 롱바야 후작의 병사들로서는 공격하기가 무리였다. 롱바야 후작은 아들 레오가 이끌고 오는 지원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관이 은으로 만든 컵을 들고 와 롱바야 후작에게 건넸다.
“후작 각하, 와인이니 목이라도 축이십시오.”
“고맙다, 부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으음, 샌디 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샌디 성의 어떤 점을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어떻게 저렇게 견고한 성을 단시일에 축성한 걸까?”
“정보길드의 말로는 일 년 전에는 샌디 성이 없었답니다.”
“으음, 저렇게 견고하고 성벽이 높은 성을 그럼 일 년 만에 축성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한가?”
“저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졌지만 분명하게 저렇게 축성되어 있으니 믿어야 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노예들을 동원해야 저렇게 단시일에 축성할 수 있을까?”
“수십만 명은 동원되지 않았을까요?”
“엘도라도에서는 노예들에게도 돈을 주고 부린다지?”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노예들까지 돈을 줄 정도이니 얼마나 돈이 많다는 말인가?”
“저희 미르비아 왕국의 모든 귀족들의 재산을 포함해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으하하하…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너도나도 엘도라도를 삼키려고 난리였어.”
“그래서 후작 각하께서도 이곳에 계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다. 응, 저건 뭐지?”
롱바야 후작이 말을 나누다 말고 갑자기 허공 한 곳을 쳐다보자 부관도 그곳을 쳐다보았다.
둘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수백 미터 허공에 무언가 떠 있었다. 처음에는 새인 줄 알았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갈색 로브를 입은 준은 롱바야 후작의 진영을 내려다보면서 손에 들고 있는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이이.
불꽃에 심지가 빠르게 타들어 가면서 연기가 일어났다.
준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얼마 전에 개발에 성공한 다이너마이트 다발로 열 개가 한 묶음이었다.
슈우우우!
롱바야 후작과 부관은 뭘 떨어뜨리는가 싶어 계속 주시했다.
쾅!
폭음이 일어나면서 폭발력에 휘말린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엄청난 폭발력에 구덩이도 생겨났고, 그 구덩이의 흙들이 먼지처럼 주위로 자욱하게 흩어졌다.
롱바야 후작과 부관은 얼마나 놀랐는지 눈이 커지고 입도 쩌억 벌리면서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후작 각하, 엘도라도 놈들의 위력적인 신무기입니다.”
뿌우우우!
고동소리와 함께 롱바야 후작 진영은 비상이 내려졌다.
준은 공중에서 피식 웃으면서 다이너마이트 다발에 다시 불을 붙여 떨어뜨렸다.
콰쾅, 쾅!
폭발음이 일어나면서 롱바야 후작 진영은 난리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라 피하기도 어려웠다.
준은 느긋하게 다이너마이트 다발에 불을 붙인 다음 떨어뜨려 롱바야 후작의 병사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었다.
“저놈을 죽여라.”
“화살을 쏴라, 쏴!”
시시시싯!
천인대장들의 다그침에 궁병들이 화살을 쏘았지만 너무 높은 공중이라서 그런지 화살이 미치지 못했다. 준이 높은 공중에 떠 있는 것도 이러한 화살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전투마법사들이 천막 속에서 튀어 나오더니 떨어지는 다이너마이트 다발을 향해 전격계 공격마법을 날렸다.
파지지직!
전투마법사들의 손끝에서 발사된 번개가 떨어지는 다이너마이트 다발을 맞추었다.
콰쾅!
공중에서 다이너마이트 다발이 폭발했다. 동시에 십여 명의 전투마법사들이 플라이 마법을 펼쳐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준은 즉시 블링크 마법으로 전투마법사 뒤에 나타나더니 내력이 담긴 스트레이트를 먹였다.
퍼퍽, 빠악!
“크아악!”
순식간에 몇 방을 얻어맞은 전투마법사들은 땅으로 추락했다.
전투마법사들이 다시 준을 향해 공격마법을 펼치려는 순간 준이 블링크 마법으로 사라져, 다른 전투마법사 뒤에 나타나 역시 같은 수법으로 공격했다. 그러고는 다이너마이트 다발을 그냥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이번에는 불을 붙여 집어 던졌다.
다이너마이트 다발은 빠르게 떨어지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크악!”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우수수 쓰러졌다. 그사이 준의 손끝에서 갑자기 번개가 내뻗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