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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258화 (25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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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권  건국

샌디 성의 찰슨 성주는 아주 통쾌해했다. 특공대가 조직되어 은밀하게 땅굴을 나설 때만 해도 걱정했는데 무사히 귀환했다. 더구나 적들의 식량 천막은 불태웠고, 그 속에 보관되어 있는 군량 일부를 마법주머니 속에 넣어 돌아왔으니 기분 최고였다.

찰슨 성주 곁으로 갈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딕이 다가왔다.

“성주님, 영주성에서 마법통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어서 연결해 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마법사 딕은 주머니 속에서 마법통신구를 꺼내어 찰슨 성주 앞에 내밀면서 마력을 불어 넣었다.

마법통신구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영주성의 마법통신 담당인 마법사 모리스였다.

“모리스 님, 찰슨 성주님이십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찰슨 성주님.”

“반갑소. 무슨 일이오?”

“다름이 아니라 긴급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이곳 샌디 성과 관련이 있는 거요?”

“그렇습니다. 미르비아 왕국에서 20만의 지원병이 출병했다고 합니다.”

“그,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정보길드의 말로는 샌디 성까지는 늦어도 오일이면 도착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럼 롱바야 후작의 병사들을 신속하게 처리해야겠구려.”

“허나 각하께서는 샌디 성을 방어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럼 롱바야 후작의 병사들을 처리하긴 어렵소.”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각하께서 직접 20만의 미르비아 왕국군을 처리하신다 하십니다.”

“각하께서 직접 처리하신다고요?”

“그렇게 전달 받았습니다.”

“알겠소.”

“그럼 저는 이만.”

스스스슷!

마법통신구에서 모리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샌디 성의 찰슨 성주는 걱정이 되어 얼굴이 굳어졌다.

“각하께서 어떻게 20만의 미르비아 왕국군을 처리하신단 말인가? 걱정스럽지만 난 명령대로만 따를 수밖에 없겠구나.”

찰슨 성주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성루에서 롱바야 후작의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겨우 불길을 잡았기에 아직도 어수선해 보였다.

한편, 롱바야 후작에게도 마법사가 천막으로 들어왔다.

“마법사 켈튼, 이 밤에 무슨 일이오?”

“각하, 레오 님으로부터 긴급 마법통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요? 연결해 주시오.”

“예, 각하.”

마법사 켈튼이 마법통신구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스스슷!

마법통신구에 콧수염을 기른 귀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버님, 저 레오입니다.”

“그래 아버지다. 이 밤에 무슨 일이냐?”

“기뻐해주십시오. 지원병 20만이 준비되어 조금 전에 출병 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버님.”

“하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빨라도 십일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하구나.”

“아버님께서 선발대로 나가셨는데 제가 어찌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들아, 네 마음을 이 아비가 어찌 모르겠느냐? 나는 샌디 성 앞에 주둔하고 있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이곳으로 오너라.”

“예, 아버님. 보통 오일의 거리이지만 서두르면 삼일이면 선발대가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암, 그래야지. 네가 오길 학수고대하고 있겠다.”

“아버님, 그곳에 무슨 일 있으십니까?”

“오후에 샌디 성을 공략하다가 실패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성이 훨씬 견고하더구나.”

“역시 프리맨 후작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드는구나. 문제는 조금 전에 특공대가 은밀하게 들어와 식량 천막이 일부 불타 버리는 일이 있었다.”

“예?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래도 아직 보름치 군량은 남아 있으니 걱정 없다.”

“으음, 알겠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는 무리하게 공격하지 마십시오.”

“네가 이곳으로 온다니 이 아비는 든든하기만 하구나.”

“아버님, 삼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래. 알았다. 이만 통신을 끊어야겠다.”

“예, 아버님.”

스스스스!

마법통신구에서 아들 레오의 모습이 사라지자 롱바야 후작의 얼굴은 훨씬 밝아졌다.

“아들이 이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단번에 저 샌디 성을 쓸어버리겠다.”

마법사 켈튼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의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못했다.

안개의 언덕.

엘도라도 영지에서 남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몇 년 전에는 밸리스 남작령에 속해 있었지만 밸리스 남작이 재산을 정리해 수도 까브로 이주해 버렸다. 가신들과 일부 노예들을 이끌고 가버렸기에 그곳에 남겨진 영지민들과 유민들은 그곳을 버리고 엘도라도로 이주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버려진, 아니 방치된 땅이었다.

미르비아 왕국의 국경에서 불과 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

스스스스!

공중의 한 곳이 이지러지면서 무언가 튀어 나왔다. 갈색 여행자 로브를 입은 자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후드를 벗자 얼굴이 드러났는데 준이었다.

“후후후, 안개의 언덕이라고 하더니 역시 그렇군.”

준이 주위를 둘러보니 언덕이 온통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츠츠츠!

기이한 눈빛이 번뜩이면서 언덕을 살펴보다가 언덕에 나 있는 길을 주목했다. 공중에서 안개의 언덕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보던 준은 한참 후에야 땅에 내려섰다.

처척!

언덕으로 올라오다가 꺾인 곳이었다.

시약과 각종 가루를 섞어 만든 마법약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름이 약 칠 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마법진이었다.

“이만하면 준비는 다 되었어.”

공중으로 도약한 준은 백여 미터를 날아가 언덕 위 넓적한 바위에 내려섰다. 목이 마른지 허리에 묶어 놓았던 마법주머니에서 물주머니를 꺼내어 물을 들이켰다.

벌컥벌컥!

갈증이 심했는지 물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물을 절반가량 마셔버렸다.

“아, 시원해서 좋구나.”

물주머니를 다시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천왕대심공이나 운용하려는 것이었다.

쿵쿵쿵쿵!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지평선 끝에 무엇인가 나타났다. 땅이 울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엄청난 수로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레오가 이끄는 20만의 병사들이었다.

무장한 보병들이 종대를 이루면서 길게 이어졌는데 하늘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뱀을 연상시키는 그런 모습이었다. 무장한 기병들도 있었으며, 또한 짐마차와 각종 공성무기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말을 탄 레오 곁으로 부관이 다가왔다.

“레오 자작님, 저기 보이는 것이 바로 안개의 언덕입니다.”

“안개가 많아서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지?”

“예, 그렇습니다.”

“매복이 있을지 모르니까 일단 척후병을 보내 살펴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척후병을 보내라.”

백여 명의 경기병들이 길을 따라 안개의 언덕으로 달려 나갔다. 얼마 후, 길목과 언덕 주변을 살펴본 경기병들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수신호를 보내었다.

그제야 보병들이 안심하고 길을 따라 행군을 계속했다.

틀림없이 바위에 앉아 있었던 준의 모습이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경기병들도 준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투명화마법을 펼치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경기병들은 안개의 언덕 정상에서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츄츄츄츙!

갑자기 공중에 매직 미사일 백여 발이 형성되더니 무방비 상태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경기병들에게 날아왔다.

퍼퍼퍼퍽!

“크악!”

“아아악!”

경기병들은 한 명도 피하지 못하고 모두 매직 미사일에 격중되어 쓰러졌다. 1서클에 불과한 공격마법이지만 9서클 마스터의 마법실력을 가진 준이 발사한 것이라 아주 위력적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수백 미터 떨어진 동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준이 마력장을 형성해 들리거나 보이지 않도록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20만 대군의 선발대가 안개의 언덕으로 들어서자 준이 마법진을 발현시켰다.

츠츠츠츠!

강력한 마력이 뿜어지자 길에 그려 놓았던 마법진이 발현했다. 마법진을 발현하기 전에는 전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지만 일단 시전자인 준이 마법진을 발현시키면 환상이 펼쳐지기에 들을 수도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안개와 뒤섞인 환상마법진은 병사들에게 아주 무서운 환상이 눈에 보이도록 했다.

갑자기 행군하던 병사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무기를 휘두르면서 동료들을 공격했다. 갑자기 병사들이 미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아주 이상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들 병사들의 눈에는 싸워 볼 만한 몬스터인 오크로 보이기에 당연히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채채챙, 파팍!

“크악!”

동료의 무기에 맞아 병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일부 병사들은 가파른 경사면에 나 있는 길에서 굴러 떨어져 중상을 입거나 즉사했다.

말들도 몬스터의 환상에 겁을 집어 먹고는 앞발을 치켜들거나 아님 무작정 달려 나가면서 병사들을 짓밟아 버렸다. 또한 일부 말들은 길에서 떨어져 뒹굴었다.

환상마법진이 새겨진 곳을 지난 병사들은 이렇게 난리였지만 그곳을 지나지 않은 병사들은 평화로운 그냥의 길로만 보였다.

이것이 진정 환상마법진의 무서운 점이었다.

말을 타고 이동 중인 레오의 곁으로 마법사 볼칸이 다가왔다.

“레오 님.”

“무슨 일이요, 마법사 볼칸.”

“앞쪽에 강력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뭐요?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으음, 알겠소. 부관, 당장 행군을 멈추어라.”

“예, 행군을 멈추어라.”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보병들이 행군을 멈추었다. 무엇 때문에 행군을 멈추는 건지 그 이유를 몰라 보병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6만여 명이 이미 안개 속으로 행군한 이후였다.

앞으로 나선 마법사 볼칸의 눈에서 황금색 빛이 흘러 나왔다.

츠츠츠.

병사들은 마법사 볼칸의 마법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지켜보았다.

“으음, 역시 환상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구나.”

마법사 볼칸은 6서클 유저였지만 실전 경험이 풍부한 마법사였다. 보통 실전이 풍부한 마법사는 전투마법사들이었다. 그런데도 마법사 볼칸이 실전 경험이 풍부한 것은 지난 20년간 마법연구에 몰두한 것이 아니라 용병대에 소속되어 의뢰를 많이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자 떠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한곳에 정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롱바야 후작이 마법사들에게는 각종 지원을 많이 해준다는 걸 알고는 의탁하게 되었다.

마법사 볼칸은 앞으로 나서더니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그러고는 마법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마법사 볼칸의 마력이 주위로 퍼지면서 안개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환상이 거두어지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허억.”

“저, 저게?”

수백 명의 병사들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가 일순간 멈추었다. 또한 여기저기에서 부상을 입어 고통스러워하는 병사들과 쓰러져 있는 병사들도 있었다. 말들도 칼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었다.

주위가 온통 참혹한 광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건 이들이 적들이 아니라 동료였다는 사실이었다. 6만여 명이나 되던 병사들이 대부분 다 죽고, 겨우 수백 명만 살아남아 있었다.

분노에 치를 떨던 마법사 볼칸은 환상마법진 너머를 쳐다보았다. 수백 미터 떨어진 안개의 언덕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준과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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