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6 / 0284 ----------------------------------------------
제10권 건국
준은 수도 까브에 있는 한 귀족 저택의 정원 바닥에 룬문자와 각종 도형을 새겨 넣었다. 마법진이었다. 정성을 들여서 세심하게 그린 마법진은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었다.
“다 되었구나.”
완성된 것을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이상 없군.”
부우웅!
공중으로 30미터 이상 떠오른 준은 소환마법 주문을 중얼거렸다. 오 분 정도 중얼거리자 소환마법진에 순간 기이한 빛이 번쩍였다. 크기가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붉은 개미 몬스터가 소환마법진에서 튀어나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또 붉은 개미 몬스터 한 마리가 튀어 나오더니 벽 쪽으로 기어갔다.
약 일 분이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붉은 개미 몬스터가 무더기로 소환마법진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본격적인 붉은 개미 몬스터 소환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준은 피식 웃었다.
“후후후, 이제 진정한 붉은 개미 몬스터의 공포가 시작된다.”
쏴아아아!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소음이 일어나면서 붉은 개미 몬스터가 정원을 가득 메우더니 귀족의 저택으로 향했다.
“으아, 이게 뭐야?”
“아아악!”
귀족의 저택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잠잠해졌다. 붉은 개미 몬스터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붉은 개미 몬스터는 귀족 저택을 넘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개미들의 공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붉은 개미 몬스터는 움직이는 물체는 모두 공격해 먹이로 삼았다. 엄청난 수를 보유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퇴치도 쉽지 않았다. 무려 수십만 마리나 되었다.
다섯 시간 정도면 소환마법진이 알아서 소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준에게 더 이상의 구경은 의미가 없었다.
“텔레포트!”
스스슷!
준은 망설임 없이 엘도라도로 순간이동 해버렸다.
“으악!”
“살려줘. 아악!”
한편 수도 까브는 갑자기 공격해온 붉은 개미 몬스터로 인해 혼란이 일어났다. 무장한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붉은 개미 몬스터를 공격했다. 하지만 호락호락 당할 붉은 개미 몬스터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수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공격했고, 병사들의 살을 뜯어 먹었다.
“에잇, 죽어라.”
퍼억!
한 병사가 칼로 내리쳐 붉은 개미 몬스터를 두 동강 내버렸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도 잠시, 넘쳐나는 게 붉은 개미 몬스터에게 포위되어 그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수도 까브의 영지민들과 병사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리안 공작과 루나드 공작은 마법사들을 동원했다. 그들은 화염계 공격마법을 퍼부어 붉은 개미 몬스터를 태워 죽었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아서 다 죽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내다보았다.
리안 공작과 루나드 공작은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마법사와 무장한 병사들을 동원하는 것뿐이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던 붉은 개미 몬스터들은 어느 샌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마법사들과 병사들은 많이 지쳤지만 끝까지 공격을 퍼부어 붉은 개미 몬스터를 전멸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피해는 너무나 컸다. 붉은 개미 몬스터에 당한 피해는 영지민 3만에 병사 9천이었다. 누가 이것을 소환했는지 조사해 보았지만 흉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큰 피해만 입히고 준은 이미 여유롭게 엘도라도로 돌아가 버렸다.
다가닥 다가닥!
말을 탄 기병들이 앞장서고, 뒤에는 무장한 보병들이 행군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르비아 왕국의 롱바야 후작이 이끄는 병사들로 모두 5만 명이나 되었다. 그 뒤로는 수백 대의 짐마차와 각종 공성무기를 분리해 실은 짐수레가 길게 줄을 지어 이동 중이었다. 롱바야 후작의 병사들은 이렇게 엘도라도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곧 엘도라도에 당도한다.”
“모두 정신들 차려라.”
백인대장들과 천인대장의 외침에 보병들은 긴장했다. 곧 엘도라도에 도착하면 전열을 정비해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다. 비록 이동해 오느라 약간 지쳤지만 두 시간 전에 빵을 든든하게 먹었기에 병사들의 사기는 높은 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얼마 후 실개천이 흐르는 곳에 당도했다.
완만한 경사가 진 언덕 위에서 롱바야 후작의 보병들이 전방을 내려다보았다. 작고 그리 깊지 않은 실개천을 넘어가면 사실상 프리맨 후작령으로, 엘도라도의 초입에 불과 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실개천 너머 500미터 뒤에는 나무로 쌓은 높이 15미터의 감시탑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역시 통나무로 만든 건물이 두 채나 있었다. 임시 검문소 같은 곳으로 얼마 전에 신축되었다.
감시탑에서 망원경으로 롱바야 후작의 병사들이 언덕에 나타난 걸 확인한 엘도라도 영지병이 비상 종소리를 울렸다.
땡땡땡땡!
요란한 비상 종소리에 건물 속에서 무장한 영지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미 무장한 상태로 대기해 있었기에 비상 종소리에 즉각 튀어나온 것이었다.
엘도라도 영지병들은 200명으로 모두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으며, 100명은 석궁을 들고 있었다. 나머지 100명의 영지병들은 방패를 들고 있었으며, 석궁병들의 앞에 섰다.
아마도 화살이 날아오면 앞에서 방패병이 막으려는 것 같았다. 또한 병사들의 뒤쪽에는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건 위기에 몰리면 도주할 때 쓰려는 것 같았다.
어쨌든 200명의 영지병들과 이들을 지휘할 기사 한 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전투마법사 2명이 영지병들의 뒤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전투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10명의 방패병이 앞에 배치되었다.
전투마법사 2명 중 한 명이 즉시 마법통신구로 엘도라도 영주성에 보고했다. 엘도라도는 즉시 비상이 내려졌고, 이곳을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롱바야 후작이 손을 치켜들자 기병 천 명이 앞으로 나섰다.
“공격하라!”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천 명의 기병들이 달려 나왔다. 그 소리만으로도 엘도라도 영지병들이 긴장했다.
단숨에 말발굽으로 짓밟아 버리려는 듯 기병들은 속도를 높여 달려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실개천을 넘어 잘 달리던 기병들이 갑자기 고꾸라졌다.
이히힝!
“으악!”
“크아악!”
말과 기병들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 있던 엘도라도 영지병들은 그제야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우하하!”
“킬킬킬. 고소하다, 이놈들아.”
“야 이놈들아, 우리가 그리 만만한 줄 아느냐?”
이들이 웃은 것은 당연했다.
엘도라도 영지병들이 대형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 약 250미터 떨어진 지점에는 깊이 5미터에 넓이 20미터나 되는 제법 긴 해자가 길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전투마법사가 환상마법진을 걸어 놓았었기에 롱바야 후작의 기병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오다가 처박힌 것이었다.
이렇게 해자를 만들어 놓은 것은 적 기병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석궁을 발사하라!”
검문소 대장의 공격명령에 엘도라도 영지병들이 석궁을 일제히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더니 발사했다.
슈슈슈슝!
석궁이 일제히 발사되어 해자에서 우왕좌왕거리는 롱바야 후작의 기병들에게 날아가 격중되었다.
“아악!”
“크아악!”
이히힝.
기병들과 말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우수수 쓰러졌다. 안 그래도 해자 때문에 제법 많은 기병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석궁에서 발사된 퀘럴 때문에 더욱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완만한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롱바야 후작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 이런 젠장. 보병들을 진군시켜라.”
“보병들은 진군하라.”
쿵쿵쿵쿵!
롱바야 후작의 공격 명령에 보병들은 일제히 발을 구르면서 진군하기 시작했다. 앞의 열과 옆의 열이 잘 맞는 걸 보니 평소 제법 훈련이 잘되어 있는 보병들 같았다. 보병들의 선두에는 방패를 치켜든 방패병들이 막아섰다.
롱바야 후작의 군대가 실개천을 넘어 해자로 접근하자 검문소 대장이 크게 외쳤다.
“석궁을 발사하라.”
슈슈슈슝!
석궁에서 일제히 퀘럴이 발사되었다.
엘도라도에서 생산된 석궁은 개량된 것이기에 발사 사정거리가 훨씬 길고 파괴력이 높아진 게 특징이었다. 보통 다른 영지는 활을 든 궁병들이 많은데 비해 엘도라도에서는 이렇게 석궁병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퍼퍼퍼퍽!
“아아악!”
오크가죽에 얇은 철판을 덧대어 만든 방패였지만 파괴력이 높은 퀘럴에는 어이없이 뚫리고 말았다. 방패병들이 이런 실정이니 방패가 없는 보병들은 날아오는 퀘럴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비명이 터지면서 보병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롱바야 후작의 보병 속에는 궁병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궁병들이 활을 쏘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곧 활의 사정거리에 놓이면 즉시 화살을 쏘려고 마음먹었다.
엘도라도 검문소의 대장은 롱바야 후작의 보병들이 파도처럼 밀려오자 후퇴를 결심했다. 어차피 200명의 검문소 대원들로는 롱바야 후작의 5만 대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검문소의 대장은 결심이 서자 즉시 소리쳤다.
“후퇴하라. 후퇴!”
“후퇴다, 후퇴!”
엘도라도 검문소의 대원들은 즉시 준비되어 있는 말에 올라 말머리를 돌렸다.
두두두두!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엘도라도 영지병들이 모두 후퇴했다.
갑작스런 사태에 롱바야 후작은 황당함을 느꼈다. 적에게 타격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엘도라도 영지병들이 그들의 검문소를 너무 쉽게 내어준 것이다.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엘도라도 영지병들을 롱바야 후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계획대로 검문소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기분이 이상하게 찝찝했다.
샌디 성.
엘도라도 영지의 경계에 있는 검문소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성으로, 여기부터가 진정한 엘도라도의 초입이라 할 수 있었다.
이곳을 통과해야만 엘도라도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리상으로 보면 평지에 세워진 성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견고하고 성벽이 높게 축성된 샌디 성이었다.
샌디 성은 엘도라도의 25개 성들 중에 하나였다.
성벽의 높이가 무려 30미터나 되고, 5만 명의 병사들이 주둔할 수 있는 규모였다.
샌디 성 앞에는 깊고 넓은 해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두두두두!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검문소를 지키던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동시에 도개교가 스르르 내려와 해자 앞에 놓이자 이들은 즉시 샌디 성 안으로 들어갔다.
찰슨 성주는 천인대장들과 함께 성루에 올랐다.
망원경으로 전방을 내려다보던 찰슨 성주는 긴장했다. 부관과 천인대장들도 망원경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이들도 즉시 망원경으로 살펴보았다.
찰슨 성주는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부관에게 말했다.
“놈들이 저 멀리에서 진군해오고 있다. 부관, 즉시 전투태세를 갖추어라.”
“예, 성주님.”
부관은 즉시 허리에 꽂아두었던 붉은색 깃발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