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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권 골렘
와아아아!
“영주님, 만세!”
포로로 잡은 해적들과 그 가족들은 15만 명이나 되었다. 워낙 많은 포로들이기에 화물선은 포화상태였다. 다행히 마스제도의 각 섬에 정박 중인 고기잡이배들이 몇 척씩 남아 있었고, 해적선들도 남아 있었기에 그 배들도 전격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엘도라도 함대와 화물선을 호위하던 갤리선에까지 나누어 가두었기에 겨우 가능했었다.
이번 해적소탕작전에서 죽은 해병들을 위로하고, 전리품도 나누어 주었다. 해적들과 해적가족들은 전부 분류해 노예로서 각종 공사현장에 투입했다.
준은 글리아나에게서 임신소식을 듣고는 아주 기뻐했다. 또한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와의 대결과 그가 앞으로 천 년간 자손들을 지켜준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준과 대면하게 되자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다. 그러나 이미 서로를 인정하고 있었기에 간단하게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그동안의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준은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를 자작의 작위를 내리면서 동시에 영주성 내성 앞의 빈 공터에 마법사의 탑을 신축했다. 마르시아가 마법으로 간단하게 마법사의 탑을 하루 만에 만들었다.
마르시아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오랫동안 마법사의 신분으로 살아갈 것이다. 언제든 글리아나와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을 곁에서 지켜줄 것이다.
하지만 리안 공작과 루나드 공작의 음모를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으음, 놈들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니?”
“그래도 정보길드의 도움으로 사전에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기에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맞아. 헌트와 하그리에 관한 일처리는 아주 시기적절하게 잘했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냐, 정말 최상의 일처리였어.”
“준, 고마워요.”
“우리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지면 적들을 물리치고 왕국을 개국할 수 있어.”
“알아요, 준.”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참아줘.”
“알았어요. 언제나 글리아나는 준을 믿어요.”
“고마워, 글리아나.”
준은 글리아나의 입술에 키스해 주었다.
저벅 저벅!
준은 다음날부터 200명의 기병들과 30명의 호위기사들을 대동하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영지를 순시했다. 특히 적들이 공격해올 만한 곳의 성들을 중점적으로 둘러보면서 보완점을 알아보고 대책을 마련했다.
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해자를 더 넓고 깊게 설치하도록 지시했으며, 성벽이나 성문도 꼼꼼하게 점검했다. 성벽과 철로 된 성문에는 대방어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기에 물리력에 강했다.
대형 발리스타와 석궁, 퀘럴과 활과 화살이 충분하게 보유하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이렇게 성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의 상태와 무기, 군량까지 파악해 미비점은 보완하도록 지시했다.
준은 엘도라도를 돌아다니면서 며칠간 바쁜 나날을 보내었다.
이제 엘도라도의 방어력은 훨씬 높아졌다.
준은 수도 까브에 한 번 스며들어 흔들어 놓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며칠간 휴식을 취한 후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글리아나에게는 지하에 있는 영주 개인 연무장에서 열흘간 지낸다고 말해 두었다.
은밀하게 그곳에서 빠져나와 상업지구의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준은 갈색 로브를 입고, 텔레포트 마법으로 영주성에서 은밀하게 사라졌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녀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영주가 암행에 나선 것은 아무도 몰랐다.
한편, 로타스 왕국의 팔레인 남작 가족과 그 일행은 엘도라도에서 제공한 10인용 주택 두 채에 나누어 살면서 정착했다. 한 달 조금 지난 지금의 생활은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 팔레인 남작은 지금은 준남작이고, 기사들도 준기사들이었지만 모두들 큰 욕심이 없었다. 팔레인 준남작과 그의 기사들은 그저 조용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엘도라도는 귀족뿐만 아니라 평민, 상인들도 모두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난 한 달간 뱅가라는 정착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엘도라도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팔레인 준남작의 아들 팔레인 폰 레이슨은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으려니까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팔레인 준남작도 허락했기에 상업지구에 작은 상점을 하나 개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레이슨은 특이하게도 옷을 만들어서 파는 양장점을 개업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양장점을 개업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남자가 진출하기는 힘든 분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검술이나 마법에 재능이 없었던 레이슨은 옷을 재단하고 만드는 일이 적성에도 잘 맞고 무엇보다도 이 일을 하면 즐겁고 행복했다.
로타스 왕국에서라면 팔레인 준남작도 틀림없이 말렸을 것이다. 영지를 물려받을 아들이었다. 하지만 새로 정착한 곳은 엘도라도였다. 그렇기에 아들의 양장점 개업을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자신감을 가지고 레이슨은 양장점을 열흘 전에 개업했다. 불과 열흘이 지났지만 제법 소문이 나 상점에 여성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옷을 구입해 갔다.
팔레인 준남작 역시 아무 일 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다 보니까 뭔가 일거리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차밭이었다.
엘도라도에 들어와 정착금을 받았지만 영지를 떠나올 때 가지고온 보석도 상당했기에 자금 걱정은 없었다.
평소에 차를 즐겨 마시고 차에 관심이 많았던 팔레인 준남작은 주택의 뒤쪽 산비탈을 행정사로부터 도움을 받아 싼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차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부인과 기사들이 옆에서 도와주고, 하녀들까지 거들었다. 급할 게 없는 일이었기에 이들은 일을 즐기면서 차밭을 일구었다.
요즘 가장 인기가 있는 블루스카이 차나무를 심었다.
팔레인 준남작의 차 밭일을 돕다보니 샤이나도 상업지구에 상점을 하나 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도라도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돈이 될 만한 일거리가 널리고 널려 있었다. 그래서 샤이나가 생각한 것이 스파였다.
엘도라도는 이제 굶주림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먹고살만해지다 보니 여자들의 미용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었다.
샤이나는 예전에 준의 게르 안에 설치되어 있던 욕조를 사용해본 경험을 살려 욕조를 만들고, 마법사에게 의뢰해 공기방울이 나올 수 있는 마법진과 물이 따뜻해지도록 하는 화염계마법진을 새긴 금속판을 욕조바닥에 설치했다.
여자들이 욕조에서 목욕을 하면 온몸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피부를 좋게 할 것이다.
피부를 관리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마사지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천일염이나 허브식물, 각종과일을 이용한 피부 관리와 마시지사들도 고용했고, 실내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했다. 그렇게 샤이나 스파를 상업지구에 열흘 전에 문을 열었다.
샤이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처음에 샤이나 스파를 찾은 여자들은 호기심에 들렀지만 한번 이용해 보고는 크게 만족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기에 소문이 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손님이 늘어나고 있었다.
마법사를 꿈꾸던 샤이나였기에 머리는 아주 좋았다. 그런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 들었고, 단기간에 대박을 치면서 사업이 성공했다.
과일상점에 우연히 들렀던 샤이나는 길거리를 걸어가는 준과 마주쳤다.
“어머, 안녕하세요.”
“아, 아니… 넌?”
“그래요. 저 샤이나에요.”
마도시대의 팔찌 알렉산드라를 건네준 샤이나를 준은 잊을 수 없었다. 그때에는 어린 소녀로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마주하고 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넌 로타스 왕국에 있어야 하는데 여긴 어쩐 일이지? 관광 온 것이냐?”
“아니에요. 한 달 전에 가족들이 엘도라도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어요.”
“그럼 영지는?”
“이웃 영지인 로베르타 자작과 영지전이 일어나 모든 걸 빼앗기고 추방당했어요.”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곳 엘도라도의 영주라면서 어째 수행원도 없이 혼자세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머리도 식힐 겸 해서 상업지구로 나온 거야.”
“그래요? 어쨌든 반가워요. 시원한 것 마시러 갈래요?”
“그래. 가자.”
준과 샤이나는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과일주스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주로 샤이나가 말을 했고, 준은 듣고만 있었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샤이나가 준은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그동안 여자라고 하면 미의 여신이라 해도 될 글리아나 밖에 없었는데, 첫눈에 반한 것처럼 샤이나가 준의 가슴에 들어와 버렸다. 가슴 떨리는 이런 느낌은 글리아나를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샤이나와 준은 장소를 옮겨 저녁식사를 하고 술까지 나누어 마셨다. 그러다보니 헤어지기가 싫어졌고, 둘은 호텔에 들어갔다. 서로에게 너무 집중하다보니 어떻게 호텔까지 들어온 것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무엇엔가 홀린 것 같았다. 둘은 서로 키스를 나누고는 침대에 누워 뜨거운 밤을 보내었다.
샤이나는 준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마치 운명처럼 두 사람은 만났고, 호텔까지 같이 들어오고 말았다.
새벽이 되자 침대에 누워 있던 샤이나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준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조심조심해서 룸을 빠져나갔다.
그제야 준은 감았던 눈을 떴다.
“으음, 내게는 글리아나가 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자책했지만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여인이었다. 마도시대의 팔찌 알렉산드라 때문에 마도시대의 현자 크라이오튼의 비밀의 장소에도 갈 수 있었으며, 그곳에 있던 엄청난 보물과 골렘들도 입수할 수 있었다.
침대의 시트에는 샤이나가 흘린 피가 묻어 있었다.
“으음, 내가 첫 남자였구나.”
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음의 결정을 했다.
스윽!
커튼을 옆으로 젖히자 눈부시게 밝은 햇빛이 내리 비추었다.
준의 마음처럼 하늘은 푸르고 화창했다.
저벅 저벅!
샤이나 스파라는 상점으로 갈색 여행자 로브를 입은 사람이 들어갔다. 주로 여성 손님이 많았지만 간혹 남자 손님도 들어오곤 했다. 후드를 눌러 쓰고 있었기에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주위에 앉아 있던 여자 손님들은 낯가림이 심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
대답 없이 여직원의 안내로 마사지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가운으로 갈아입으세요.”
“주인 좀 불러주겠소?”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니 불러만 주시오.”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밖으로 나가자 그는 갈색 여행자 로브를 벗었다. 뜻밖에도 그는 준이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는 침대에 누웠다.
똑똑!
노크소리가 나더니 문을 열고 샤이나가 들어왔다. 침대에 엎드려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렇소.”
“무슨 일이시죠?”
스윽!
준이 몸을 뒤집으면서 샤이나를 쳐다보자 그녀는 눈이 동그래졌다.
“허엇, 여, 여긴 어떻게?”
“왜? 오면 안 되는 곳인가?”
“아,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체를 일으킨 준이 샤이나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안았다.
“어머!”
당황한 샤이나였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 안고 있었지만 서로의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
“샤이나, 우리 운명인 것 같지 않아?”
“맞아요. 운명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예, 그래요.”
준이 샤이나의 얼굴을 당겨 키스했다. 샤이나는 이런 곳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이 준에게 향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점점 애무가 짙어지자 샤이나는 준의 상체를 살며시 밀면서 말했다.
“여기에서 이럴 수는 없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최고급 로열룸이 있으니까 그곳으로 가요.”
“로열룸?”
“예, 그곳은 최고급 욕조와 시설이 되어 있어서 아주 좋아요.”
“알았어.”
샤이나는 밖으로 나가서 직원들에게 말하고는 로열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샤이나는 준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헤어진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지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게 샤이나와 준은 남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면서 사랑을 나누었는데, 가장 낭만적인 장소는 무인도였다.
무인도에 3일간 같이 있었다. 게르를 설치하고, 그 속에서 보낸 3일은 준과 샤이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