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허리케인-246화 (24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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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권  골렘

츄츄츙.

갑자기 골렘 블러드의 손가락에서 기이한 빛이 내뻗어지더니 마르시아의 목과 양손목과 양발목에 빛의 링이 생성되었다.

츠츠츠츠.

다섯 개의 빛의 링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법의 문자라는 룬문자와 각종 도형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는 게 보였다. 그렇게 휘돌던 빛의 링에서 순간 환하게 빛이 내뿜어졌다.

모든 게 환상처럼 느껴졌다.

순간 빛의 링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드래곤 하트가 강제봉인 되었기에 마법은 이제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드래곤 하트가 봉인된 걸 마르시아는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의지를 일으켜도 드래곤 하트에서 전혀 마나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임무를 완수한 골렘 블러드는 마르시아 옆에 서서 양팔을 아래로 내렸다.

그것을 본 글리아나가 마르시아 앞에 내려섰다.

마르시아는 엘프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기에 치욕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의 반항은 죽음이었다.

“이제 현실을 직시했을 것인데 맞나요?”

“으음, 그렇다. 이제 나를 어떻게 할 것이지?”

“예정에 없던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의 옆에서 드래곤의 맹세를 해주어야겠어요.”

“드래곤은 함부로 맹세 같은 걸 하지 않는다.”

“알아요.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어요.”

“…….”

“어떻게 할 거예요?”

“으음, 좋다. 어떤 맹세인지 말해봐라.”

“지금 나는 임신한 상태예요.”

“으음, 뱃속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분명하다.”

“나와 자손들을 옆에서 지켜주세요.”

“자손들을 지켜달라고? 언제까지 말이냐?”

“나의 남편은 머지않아서 왕국을 건국할 거예요. 그럼 당연히 나의 자손들은 왕족이 될 거예요. 천 년 왕국을 꿈꾸니 천 년간만 나의 자손들을 곁에서 지켜주세요.”

“으음, 천 년간이나 자손들을 지켜 달라니 너무 무리한 맹세가 아니냐?”

“알아요. 하지만 드래곤의 긴 세월에 비한다면 천 년은 짧은 것 아니에요?”

“그, 그거야 그렇다만 그래도 너무 오랜 세월이다.”

“조금 긴 유희를 한다 생각하세요.”

“으음, 엘프에게 이런 일을 당한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나도 그래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럼 내가 맹세를 하면 드래곤 하트의 봉인을 풀어줄 테냐?”

“좋아요. 그러나 드래곤의 용언으로 하는 맹세가 먼저예요.”

“좋다. 맹세를 한 후에는 너의 곁에서 생활하도록 해다오.”

“알았어요.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드릴게요.”

“사람들에게는 나를 마법사라 말해다오. 그게 편할 것 같다.”

“좋아요. 사람들에게는 나의 먼 친척이면서 동시에 6서클 마스터의 마법사라 말해둘게요.”

“으음, 그게 좋겠구나.”

글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용언으로 맹세를 시작했다.

“나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용언으로 맹세한다. 오늘 이후 앞으로 천 년 동안 엘프 글리아나의 자손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보호해준다. 이것을 어기면 소멸당할 것이다.”

번쩍!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의 드래곤 하트에서 한줄기 빛이 내뻗어지더니 글리아나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심장에 빛이 스며들었다.

마르시아와 글리아나는 이게 무슨 현상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태아의 몸에 마르시아의 용언 맹세의 흔적이 새겨졌을 것이다.

글리아나가 골렘 블러드에게 눈짓을 보내었다. 그러자 골렘 블러드가 마르시아 곁으로 다가오더니 손가락을 내뻗었다.

츠츠츠츠.

마르시아의 목과 양손목, 양발목에서 다섯 개의 빛의 링이 다시 나타나 휘돌더니 그것들이 빛의 실처럼 길게 늘어나면서 골렘 블러드의 손가락으로 흡수되었다.

그제야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봉인된 드래곤 하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걸 느끼고는 즉시 치료마법을 외쳤다.

“리스토레이션!”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가 외친 마법은 치료마법 중에서 상위에 있는 마법이었다.

번쩍!

마르시아의 몸에서 기이한 빛이 내뿜어지다가 순간 사라졌다.

치료마법인 힐 마법보다 몇 배나 강력한 치료마법이었다.

내상까지도 일부 치료가 되는 마법이기에 당분간 요양하면 내상이 완치될 것이다.

글리아나는 처음부터 의도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드래곤에게 용언으로 맹세를 하게 만들었기에 앞으로 자신과 자손들은 신변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윽!

글리아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골렘 블러드 수고 많았어요. 이젠 들어가 쉬어요.”

스스스스.

골렘 블러드는 빛으로 변하면서 동시에 글리아나의 팔목에 새겨져 있는 핏빛의 눈모양의 마법진 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골렘 블러드가 사라지자 글리아나의 팔목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도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레드 드래곤 마르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마법진을 새겨 넣다니 대단하구나.”

“그래요. 원래는 남편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넘겨주었어요.”

“프리맨 후작 말이냐?”

“예, 그래요. 이젠 영주성으로 돌아가요.”

“앞으로 재미난 일들이 많을 것 같구나.”

“그럴 거예요.”

글리아나가 앞장서고 마르시아가 바로 뒤따라 걸어갔다.

마스제도의 아르메섬.

모래사장에 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해적들로 어수선했다.

“서둘러라, 서둘러.”

“빨리 빨리 승선해라.”

해적들이 갤리선에 승선하자 해적선들이 하나씩 출항하여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스타로열 해적단의 중형급 갤리선 15척과 소형급 갤리선 30척이 순차적으로 출항한 것이었다. 스타로열 해적단의 본거지에서 긴급 연락을 받고는 이렇게 출항하는 것이다.

아르메섬에서 해적선들이 출항할 때 스타로열 해적단의 본거지에서도 대형급 갤리선 한 척과 중형급 갤리선 20척, 소형급 갤리선 30척이 먼저 출항했다. 나머지 배들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전부 출항할 예정에 있었다.

이번에 연합한 크로제 해적단에서도 대형급 갤리선 두 척과 중형급 갤리선 30척, 소형급 갤리선 40척을 출항시켜 아르메섬으로 향하도록 명령했다.

마스제도에서 가장 세력이 큰 오거슨 해적단에서도 즉시 대형급 갤리선 두 척과 중형급 갤리선 30척, 소형급 갤리선 30척을 출항시켰다.

삼대 해적단은 선발대를 보낸 후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전 해적들을 소집해 전투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엘도라도 함대가 자신들을 토벌하기 위해 오고 있으니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그렇기에 해적들의 각오도 비장했다.

촤촤촤촤!

파도를 헤치면서 항해 중인 엘도라도 함대는 롱레바섬에서 치른 해적들과의 전투를 승리해서인지 사기가 무척 높았다.

본격적인 해적단과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해적단과의 치열한 해전을 치러야 했다.

준은 프리맨 2호함의 함교 밖의 벽에 등을 기대면서 얼음이 들어간 과일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시선은 전방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준이 아주 한가하게 보였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신경을 쓰고 있었다.

끼룩 끼룩!

흰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와 준이 내민 손등에 내려앉았다. 보기엔 보통의 흰 갈매기로 보였지만 두 눈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게 준의 페밀리어였다.

“네가 본 것을 나에게 알려다오.”

흰 갈매기는 텔레파시로 준에게 본 것을 전부 알려 주었다.

스윽, 슥슥!

준은 흰 갈매기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아공간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꺼내더니 내밀었다. 흰 갈매기 페밀리어는 준이 내민 물고기를 단번에 집어 삼켰다.

“수고했다. 그만 돌아가 쉬어라.”

스스스슷!

흰 갈매기는 연기가 흩어지듯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잠시 먼 바다를 바라보던 준은 손에 들고 있던 과일주스를 단숨에 비우고는 함교 안으로 들어갔다.

“차고스 선장!”

“예, 영주님.”

“전 함대에 공격준비를 끝마치고 대기하라 일러라. 곧 해적선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통신병은 즉시 전 함대에 공격준비하고 대기하라 일러라.”

“예, 선장님.”

통신병인 전투마법사는 즉시 마법통신구로 통신을 시도했다.

뿌우우우!

프리맨 2호함에서 뱃고동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해병의 대부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비상이 내려지면서 신속하게 전투준비를 마치고는 대기했다.

한편, 아르메섬에서 출항한 스타로열 해적단의 중형급 갤리선 15척과 소형급 갤리선 30척은 엘도라도 함대와 싸우기 위해 최고속도로 항해 중이었다.

중형급 갤리선 미르바호의 선장인 존스는 우측팔목에 착용하고 있는 골드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삼 캐럿 정도 되는 블루 사파이어가 박혀 있는 럭셔리한 팔찌였다. 보기에도 값비싼 쥬얼리였지만 존스 선장이 골드 팔찌를 아끼는 건 아티팩트였기 때문이었다. 모두 이십여 가지나 되는 각종 마법이 걸려 있었다. 실드마법과 플라이마법, 매직 미사일마법, 파이어애로우마법까지 다양했다.

존스 선장이 가장 마음에 드는 마법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이글아이마법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치 독수리가 창공을 날면서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것처럼 존스 선장도 마법의 영향으로 수 킬로미터까지의 거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십 년 전에 존스 선장은 우연한 기회에 이 아티팩트 팔찌를 얻을 수 있었다. 화물선을 습격하여 승선해 있던 한 귀족을 죽이고, 그의 품속에서 이 아티팩트 팔찌를 얻었다.

2서클 마스터에 올라 있는 존스 선장은 그날 부하 해적들에게 약탈한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자신은 이 아티팩트 팔찌 하나만으로도 만족했다. 팔찌 아티팩트는 마도시대의 귀한 아티팩트였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니 마력이 거의 고갈되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존스 선장은 활성화하기 위하여 상급의 마나석을 사용했다. 얼마 전에 여기에 사용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상급의 마나석을 하나 입수하게 되었고, 그것을 잘 간직해 오고 있다가 팔찌 아티팩트에 사용할 수 있었다.

상급의 마나석에 들어 있는 엄청난 마나를 전부 흡수한 팔찌 아티팩트는 잠들어 있던 자아가 깨어났다. 팔찌의 아티팩트가 스르륵 변화를 보이면서 지금의 럭셔리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처음에는 낡고 볼품없었던 팔찌가 지금은 그냥 보기에도 값비싸 보였다.

팔찌 아티팩트의 자아가 깨어나면서 존스 선장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껏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면서 사용해 오고 있었는데, 언제나 위기상황 속에서도 벗어날 수 있도록 팔찌가 도와주었다.

존스 선장은 수평선 끝에 보이지도 않는 엘도라도 함대를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엘도라도 함대를 살펴보았다.

갑자기 존스 선장의 얼굴이 굳어졌고,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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